큰아들은 결국 타의에 의해 자신의 가정 곁에만 남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본인의 가정만의 울타리에 갇히고자 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가족과 자신이 꾸린 가정, 모두에서 두루 잘 지내고 싶어 했지만, 그의 바람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만의 오래된 규칙이 있었다.
어머니를 지극히도 사랑한 두 아들들이 따라주었기에 지켜졌던 규칙이다.
“어머니가 오고 싶으면 와야 하고, 어머니가 부르면 가야 한다.”
그 규칙을 잘 따르고 실천하던 큰아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큰아들이 그 규칙을 온전히 따르지 않자, 그 순간부터 그는 배신자가 되었다.
큰아들은 오랜 세월 고통스러웠던 그의 아내의 마음에 공감하고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그들이 자주 불러도 매번 응하지 않는 선택을 해주었고, 집으로의 방문을 막아주었다.
그 작디작은 행동은 큰며느리에겐 숨통을 틔워주는 보호였지만, 그들에게는 권력에 도전하는 반란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큰아들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행동을 배려가 아니라 반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큰아들이 잡은 중심은 단순히 가정의 균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낯선 균형이었다.
머리채를 잡고 흔들듯 자기들 멋대로 흔들고 싶었던 관계.
큰아들은 여전히 그들 가족 안에서 아들로 남고 싶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단단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밀려나고 말았다.
동생은 오랜 기간 동안 먼저 형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일주일에 3~4번 정도 연락하던 어머니마저도 큰아들에게 연락이 뜸해졌다. 그들의 행동은 큰아들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였다.
힘의 불균형이었다.
동생은 자신의 아내를 시댁으로부터 잘 보호해 주었다. 그의 아내가 불편해할 때는 즉각 방패가 되었고, 그 모습을 시어머니는 불편해했지만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형이 자신의 아내의 작은 불편을 살펴주었을 때는 극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곁에 서준 남편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며느리의 곁에 선 남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연대가 부당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유독 큰 아들의 행동은 더 큰 파장이 되었던 것 같다.
큰아들은 그 작은 행동만으로도 괘씸한 놈이 되어버렸다.
큰아들이 부모님 곁에 머물며 행한 작고 큰 효는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작은아들이 행한 작고 큰 효는 늘 보다 크게 칭찬을 받았다.
큰아들 내외에게 돌아오는 말은 항상 “잘 못한다.”였다.
같은 행동도 한쪽은 빛으로 치켜세워지고, 다른 쪽은 그림자로 묻히곤 했다.
칭찬의 편향은 곧 사랑의 편향이었고, 큰아들은 그 속에서 늘 외로웠다.
그 중심을 잡아줄 사람은 어머니였다.
두 아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도 균형을 맞춰주며, 각자의 삶을 존중해 주었더라면 갈라섬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한쪽을 과도하게 칭찬하고, 다른 쪽을 깎아내리는 방식을 택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커졌다.
결국은 두 아들이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가족이 하나로 엮이지 못한 채 척을 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들 사이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서 가족 내에서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한쪽 아들은 "인정받는 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늘 부족한 자"가 된 것이다.
이때 형제는 직접적인 갈등보다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빚어진 그녀만의 논리의 갈등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부모의 역할은 심판자가 아니라 균형 자여야 한다. 어느 쪽도 완전히 옳지도, 완전히 그르지도 않음을 인정하면서, "모두 가족이기에 함께 살아간다"라는 울타리를 지켜야 했다.
큰아들은 지속적인 비교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무력감을 경험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칭찬받을 수 없다”는 좌절은 깊은 상심으로 이어졌다.
동생을 중심으로 가족의 질서를 굳히고, 그의 행동에 긍정적 의미를 덧씌우며 ‘집단 결속’을 강화했다. 반대로 형은 그 집단 내 질서에 미성숙한 인격에 욱하는 성격을 지닌 인간답지 못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작고 큰 효를 다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억울함과 상처를 느꼈을 것이다. 큰아들이 그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며느리 또한 고통스러웠다.
인정의 불균형은 일부 가족들을 더 단단하게 묶는 대신, 누군가는 깊은 고립 속에 몰아넣는다.
칭찬은 때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만, 편향된 칭찬은 날 선 칼이 되어 마음을 베어버린다.
큰아들은 오랜 시간 그 칼날 위를 조심히 걸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곳에서 밀쳐졌다.
그 선택은 괘씸함으로 불려졌지만, 실은 우리 가정의 안정을 찾을 조용한 기회이기도 했다.
큰아들은 효도를 함에 있어 효도라고 정의하지 않고 당연히 자식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는 우직한 사람이다. 본인이 효를 얼마나 행하는지 측정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본인을 낮추고 더 하지 못함에 한탄스러워하는 효자였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이 있다. 아마 큰아들은 가족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쪽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