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도 시댁이 있다.
시어머니, 시동생, 동서, 시누이들, 그들은 어머니에게 과연 친절한 존재였을까?
나는 그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 앞에 서 계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언제나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했고, 때로는 불쾌해 보이는 표정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 모습으로 짐작해 보면 어머니 역시 며느리로서 존중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며느리들은 원래 다 이런 게 아닐까.”
그리고 “내가 겪은 만큼은 나는 나의 며느리들에게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행동은 여느 시어머니들이 취하는 보통의 범위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마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본인의 행동의 정당성을 찾아갔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도 동서가 있었다.
그 동서는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살갑게 다가가고, 어른의 비위를 잘 맞추며, 영특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그로 인해 언제나 어머니는 은근한 비교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본인 큰며느리의 남편처럼 늦게라도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며 아내의 편이 되어준 남편이 없었다.
어머니는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혼자서 견뎌내야 했던 것 같다.
나는 이렇듯 억울하고 정의롭지 못한 동서지간의 문제들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비교로 인해 자연스럽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고, 헐뜯고 괴롭히는 일이 반복된다.
형님 시집살이가 있다고 할 만큼 모진 행태를 보이는 집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구조적 문제는 시어머니의 비교와 차별에서 비롯되는 것이 맞다. 동시에, 동서 간의 다른 인식과 환경도 한몫하는 듯하다.
동서지간의 해법은 시어머니의 태도가 가장 큰 열쇠이겠지만, 차선책은 윗사람, 즉 손윗동서의 태도에 달려있는 듯하다.
때로는 시어머니의 차별에서 우위에 선 동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우위에 선 자의 선택이 결국 그 관계를 결정짓는다.
화해와 평화를 선택하면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지만, 우위에 선 자가 자신의 위치를 악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동서들 간에 드러내지 못한 채 행해지는 공격과 비난, 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쓸데없는 짓일 뿐이다.
그렇게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아버지의 임종 전 마지막 유언은 짧았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큰며느리인 네가 네 동서를 잘 가르쳐라.”
큰며느리도 아직 어리고, 배울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큰며느리를 믿고 맡기셨다. 큰며느리는 감사했고, 미안했고,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당시 동서는 결혼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큰며느리는 그녀를 가르칠 수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녀는 이미 현명하고 지혜로웠다.
둘째, 큰며느리가 동서에게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알려주려 한다면 어머니와, 동생이 틀림없이 큰며느리를 꾸짖고 압박했을 것이다.
솔직히 큰며느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기도 했다.
결국 큰며느리는 애초부터 자신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유언을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
가끔 죄책감이 큰며느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가족 내 불균형과 불공평함을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동서라는 말을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큰며느리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며느리 비교와 편들기가 도를 넘기 시작하자, 큰며느리도 남편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말했다.
“동서는 저렇게 하는데, 나는 왜 그래야 해?”
“동서는 안 해도 되는데, 나는 왜 해야 해?”
이 말을 남편에게 건넬 때마다 큰며느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서를 비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편파적 태도를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큰며느리는 자꾸 동서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실제로 동서는 좋은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그만큼 깊이 있고, 현명하여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큰며느리를 늘 동서에게 존댓말을 쓰며 존중했고, 동서에게 직접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아도, 아랫사람에게서 본받을 점이 있으면 본받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동서는 영리했고,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버텼다.
큰며느리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가까이 지내면서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면, 때로는 협조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감수해야 했다는 것을 큰며느리 역시 경험했기 때문이다.
큰며느리는 10년 가까이 시댁과 겪으며 겨우 터득한 처세술을, 동서는 불과 1년 만에 체득해 냈다.
어머니의 잣대 속에서 그나마 너그러운 위치에 있던 동서는, 며느리로서의 도리 기준을 낮춰 주었다. 그 덕분에 큰며느리는 어느 정도의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동서는 큰며느리의 은인이자, 동시에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더 동서를 들먹이며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큰며느리에게는 고통이다.
핵심 감정은 죄책감, 고통 속에서 느끼는 연민과 이해이다. 동서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편파성과 그로 인해 느끼는 큰며느리 마음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할수록 사이가 좋아지는 것이 동서지간인 것 같다.
큰며느리는 말했다.
“우리 서로 옆집 사람처럼 살아요. 굳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챙기지 말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옆집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설거지를 안 한다고 서운하지 않을 것이고, 그 여자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하지 않을 것이니, 딱 그만큼만 하고 살아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면서도, 지나치게 가까워져 부담을 주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독립적 관계를 우리는 선택했다.
가족 사이에서는 말이 많지 않아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말이 적을수록 갈등은 줄고, 서로를 이해할 여유가 생긴다.
같은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만남으로써, 큰며느리는 자신의 불평등한 위치를 더욱 정확히 깨닫게 되었다.
단지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너’ 였기에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동서를 미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연민으로 품을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그렇게, 조용히 배움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큰며느리는 나중에 우리 아들들이 결혼하면, 지금 동서에게 대하듯 며느리를 대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며,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감사와 존중을 잃지 않는 관계.
그런 태도가 결국 가장 건강하고 오래가는 가족 관계임을, 동서와의 시간을 통해 큰며느리는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