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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Oct 11. 2022

있잖아

있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

  정말로 내가 해결할 수 있을 때 문제가 찾아오나 봐. 마음챙김을 처음 공부할 때는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점점 그 말을 마음 깊이 알게 된다. 올해의 주제는 애정, 우정, 인간관계, 이런 건가 봐.




  올해 들어 친밀하고 가까운 친구관계를 많이 되돌아보게 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여러 관계에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수면에 떠올랐다. 오랫동안 소중히 아껴온 관계, 최근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던 관계. 언제나 친구관계가 어려웠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나 강력해서 상대와 애정을 도란도란 주고받는 것이 잘 안 됐던 것 같아. 너무 좋아하다 보니 150도로 끓고 있는 마음을 친구에게 냄비째 건네보기도 하고, 내가 이 사람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으면 하는 마음도 많았다. 청소년기에는 친구를 붙잡고 "쟤 말고 나랑 더 놀아."라는 말도 꽤 했다. (많이 반성했다.) 그런 행동이 '인간관계에 집착한다.'라고 해석될 때마다 그렇게 화를 냈다. 집착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거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어.


  그러다보니 나는 내 마음이 뭔지도 모른 채로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뭔가 자꾸 다그치게 되니까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서운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가까운 관계에서 서운함이나 섭섭함을 느껴도 '이런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불편할 거야, 싫어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꼭꼭 쑤셔 넣곤 했다. 하지만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고, -프로이트가 했던 모든 말 중에 이 말만 좋아하는 편이다 -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서럽고 속상한데,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치졸해 보여서 한 마디도 못하는 마음. 내 서운함은 마치 지하실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듯 그 자리에 고여 썩어갔다.


  결국 화를 내곤 했다. 의사소통이 서툴던 시절의 나는 그렇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친구를 윽박지르거나 상황을 비꼬는 방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것도 많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중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싫어 베베 꼬아 말하는 바람에 상한 감정은 배출되지 못하고 내 안에 켜켜이 쌓였다. 냉동실 저 안에 처박아두어 꽁꽁 언 채로 천천히 상해 가는 무언가처럼, 내 마음에도 그렇게 초록색 상처가 자라났던 것 같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의 깊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은 더 불편해졌다. 몇 년을, 어쩌면 몇십 년을 꾸깃꾸깃한 채로 이어오던 관계들이 눈에 밟혔다. 풀 먹인 새 옷처럼 깔끔해지진 않아도, 불편한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쌓아왔다면 이제라도 탁탁 털어서 펴보고 싶었다. 메신저를 켜고, 친구의 이름을 검색하고, 시간 나면 만나자는 말을 서슴없이 쳐서 보냈다. 나에게 망설임의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만나자마자 친구는 '오랜만에 본 것 같지가 않네.'라고 했다. 나를 보고 싶었다는 말일까? 우리의 관계를 잘 가져가고 싶다는 말일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묵혀둔 이야기를 꺼냈다. 거의 7, 8년쯤 혼자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말한 적 없었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


  너를 정말로 많이 좋아했어. 아직도 기억나네. 오래전, 우리가 모두 학생일 때 너가 "빈 시간이 생기면 다 널 만나고 있어."라고 말했던 게. 그때는 그게 참 미안하면서도 너무 좋았어. 내가 강요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았지. 가끔 나를 속여도 봤어. 나랑 놀면 재밌으니까 그렇겠지! 하면서.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질투도 화르르 났어. 그런데 친구 사이에 질투하는 게 또 이상해 보이니까 그걸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없었네.


  의도적으로 2, 3년을 연락하지 않았어. 내가 감정적으로 너에게 지나치게 의지, 아니, 의존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거든. 우리가 매일 밤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깔깔거리던 시간이 너무 소중했던 만큼,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너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를 붙잡고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세상 욕부터 꿈과 사랑, 이별까지 그런 이야기를 나 자신과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기도 하고. 물론 너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흔쾌히, 또 즐겁게 들었지만 그냥, 혹시나 싶었어. 관계는 상호적이라지만, 내가 이 관계를 무겁게 잡아당기고 있었다면 힘을 좀 풀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요즘은 마음이 괜찮아. 이것저것 인생에서 물결이 몰아치고야 있지만, 적어도 내가 나 자신한테는 솔직하달까. 그래서 문득,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이 이랬다고 이야기해야겠더라. 그리고 너의 마음이 괜찮다면,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말하고 싶었어.





  숨기는 것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솔직하지만 날카롭지 않게, 비아냥대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나를 속이지 않고 이야기했다. 괜히 '그래도 내가 좀 자랐구나.' 하는 마음도 3번쯤 들었다. 그래도 너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이 5만 번 나려고 했다. 친구는 물을 서너 잔 마시면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내 마음을 더 울컥하게 했다.


  그랬구나. 몰랐어. 마지막 만남이 몇 년 전이어도, 좋은 기억을 가지고 헤어졌다면 그건 좋은 사이라고 생각했어.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의 만남이 오래되었어도, 서로 별로 연락하지 않아도 여전히 좋은 사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걸 나도 알게 돼서, 요즘은 누굴 만나면 일부러 그런 말을 꼭 하기도 해. 너가 그랬구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날 친구는 굳이 "앞으로도 잘 지내자."라는 말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대충 그런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대충 그렇게 믿기로 했다.) 사실 말은 나 혼자 했나 봐. 그래도 이게 몇 년을 푹 고아낸 이야기라서, 몇 날 며칠 속으로 리허설을 하는 바람에 막상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누군가 묵묵히 들어주는 게 이토록 따뜻한 경험인걸 알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정말 상대방은 모르는구나. 내가 나랑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는 내 눈을 가린 채로 몇 년을 보내게 되는구나. 화내고 다그치지 않아도 따뜻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할 수 있구나. 그랬구나,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이 이렇게 다정한 일이구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정말 큰 행운이었던 거야. 나를, 내 이야기를 수용해주는 사람이 내 인생에 이렇게 있구나.




  이젠 정말 이 감정들을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주 중요한 발표를 해치우고 긴장이 풀리는 것처럼, 몸 마음을 옥죄던 것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그래, 내가 많이 괜찮아졌네. 아주 추운 날 따뜻한 실내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노곤노곤하다. 정말 고마워. 너와 긴 시간 동안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싶다. 널 생각하면 웃음이 나거든. 나도 너에게 그런 친구이기를 바라. 있잖아, 이 이야기가 나한테는 정말 큰 도전이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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