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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복이 Jul 20. 2022

"샘은 우리 엄마 같아요."

- 우리 아들이 너처럼 된다는 말이니

수업 시간에 카톡을 주고받길래 집어넣으라고 부드럽게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자기 엄마는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고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면서, 내가 자기 엄마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방금 카톡도 엄마였다며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너의 엄마 같다면, 내가 너의 엄마같이 키운다면, 우리 아들이 나중에 너처럼 된다는 말이냐. 

분명 승진이(가명)는 나에 대해, 나라는 선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라 던진 말이었는데 나는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순간은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는 두고두고 그 말이 생각났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는 1학년 때 승진이의 국어 담당 교사였다. 승진이는 기본적으로 수업 시간을 싫어했고 "아, 재미없어."라든지 "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꺼내는 아이였다. 게다가 그때는 코로나 이전이라 다양한 모둠활동을 했는데 승진이가 잘 참여하지 않아서 모둠 전체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나는 그런 학생일수록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를 함께 협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승진이도 그 정도 타협에 응하며 평화를 지킬 줄 아는 상식과 예의가 있었다. 간혹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친 말이 튀어 나오기도 했지만 마음을 달래주면 금세 사과하며 바로잡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예사롭지 않았다. 교사들이 ‘4반의 조승진 아냐, 샘 수업 시간에는 어떠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교사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증거다. 교사들은 수업에 불성실하고(잔다든가 핸드폰을 본다든가)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 그러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들듯이 말하는 학생을 가장 참지 못하는데 승진이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 더 자극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욕이 튀어 나오기까지 했다. 그해 봄 교내 축구경기에서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욕을 해서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1학년 때부터 논란의 중심이 되는 학생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3년 내내 그 프레임이 이어지기도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사들끼리 공유한다는 학생의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명단을 쓱 보고 “얘는 괜찮아, 얘도 좋은데, 얘는 별론데, 샘, 큰일났다.” 뭐, 이런 식이다. 그럴 바에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승진이의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승진이를 안쓰럽게 생각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셨기 때문에 학급 생활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내 수업 시간에서조차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의욕이 사라져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원인이 무조건 나를 비롯한 교사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태도를 보이든 상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도를 하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가 늘 고민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승진이는 어땠을까. 평소 지켜본 바에 의하면 친한 친구들한테는 다정한데 자기 범주에 없는 애들한테는 경계심이 컸던 것 같다. 세게 보이고 강해 보이고 싶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일단 말을 트고 친구가 되면 처음의 태도는 사라지곤 했다. 2학년 봄 제주도 수학여행 때 일이다. 저녁 식사로 고기 뷔페를 갔는데 모둠별로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세팅된 고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고기가 떨어지면 직접 고기를 가져와야 하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승진이네 모둠 아이들의 고기는 주로 승진이가 가져왔다. 한라산에 다녀오느라 옷을 다 버린 친구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유 옷을 선뜻 내주기도 했다.


수학여행 때 이런 일도 있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한 교사가 승진이를 보고 “네가 조승진이구나.” 했다는 거다. 그 아이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세요!”라면서 따졌다고 한다. 그 교사도 무척 당황했고 그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어쩌면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을 말이기 때문에 방어 시스템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승진이는 결국 2학년 2학기 때 자퇴를 했다. 두 명의 교사와 동시에 큰 갈등을 빚었고 그 교사들이 징계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자기가 이 학교에서 잘 지냈던 선생님은 단 두 명이며, 그게 1학년 담임 선생님과 나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달받고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저는 선생님을 믿었어요."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승진이를 돕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고, 교사에게 심하게 대들었다는 승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퇴가 꼭 나쁜 길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 남을 수 있게 도울 수 있었던 사람이 나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걸까.


2학년에 올라오면서 수업 시간에 만나지 못하다보니 뭘 해주려고 안했고, 뭘 해주지도 못했다. 게다가 나는, “엄마 같다”는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며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아이 엄마 같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아들이 그 아이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승진이를 잘 모르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 문제아로 낙인 찍힌 모습만 알면서 말이다. 결국 나조차도 그 아이를 모범적인 수업 태도를 보이는 애들과 확실하게 구분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걔는 별론데, 샘, 큰일났어"라고 말하는 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교사가 학생들의 부모가 되어 주지는 못한다. 그만큼 사랑할 수도 보듬어줄 수도 없다. 그건 나도 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이고 욕심이다. 

다만 17년이라는 교직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안정감을 주는 교사가 되자는 것이었다. 내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이들에게 내 상황과 감정은 솔직하게 말하되 감정적으로 변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실수를 하면 해명할 기회, 만회할 기회를 주자는 게 내 원칙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학생들은 교사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야 그 다음이 가능한 학생들이 있다. 교사가 나를 무조건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해지는 학생이 있다. 승진이가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다음'은 학생에게만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교사인 나도, 학생을 어떤 학생이 아니라 그냥 학생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학생 마음을 열고, 안심시키고 끝나서는 안되는 건데 그 다음을 잘 이어가지 못했다.


자퇴 결정이 난 후 이미 학교에 안 나온 지가 오래되어 만날 수가 없어서, 승진이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괜찮을 거다, 앞으로 어디서든 잘 지내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네.”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내 문자가 너무 늦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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