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안전, 절제, 질서, 강인함, 유능함.
이 자질을 목표하고 함양하려는 개인 그리고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이 나의 뜻이며 권유가 된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모두 필요한 조건과 자질들이기 때문이다.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다.
나열한 저 조건과 자질 중, 단 하나도 함양하지 못한 사람이 불행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아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거의 전부를 함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공허감에 빠진 어른들을 본 개인적인 경험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향 본능이 있는 사람이기에, 어릴 때부터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어른들을 가까이 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왔다. 거기에서 비롯한 관찰값이 있다.
정규직에 있을 때, 조직의 중역인 남자 어른이 있었다. 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 업무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서는, 말 수가 아예 없는 수준의 어른이었다. 표정도 한결같은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도통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언제 밤샘 근무를 같이 하게 된 적이 있었다. 평소와 같이 업무 현장에는 정적만이 있을 뿐, 업무적인 이야기 외에 오고가는 말은 없었다. 익숙했다.
그러다 별안간 나에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단 한문장으로 내보였다. 의자에 자신의 몸을 깊숙히 기대며 내뱉는 한문장이었다.
이렇게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같다.
그 한 문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뜻이 함축되어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에게는 미모의 와이프가 있었다. 어린 두 딸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메이커 아파트에 중형 세단도 있는 조건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특별한 티도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일단은 이 사람 입이 비로소 트였다는 것에 놀랐고, 그 내용 또한 전혀 예상하지는 못한 것이라 한번 더 놀라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혼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인간의 가장 순수한 표정이었다고 표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내 불우한 환경을 알고서는 물심양면으로 나를 지원해줬던 피 안섞인 가족이 있었다.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은 내가 살던 작은 동네에서는 제일 알아주는 부자집이었다. 친구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어머니 역시 이런 저런 가게들을 하셨다.
친구 아버지는 꽤 크게 성공한 축이라 국회의원 출마 제의를 계속해서 받았지만, 정치를 매우 싫어하셔서 그런 쪽에는 얼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지역 청년회장 정도는 하셨다. 동네 큰 잔치나 행사가 있으면, 항상 그 분이 마이크를 잡으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뭘 잘 못먹고 지내는 것 같으면, 자주 불러다 먹을 것들을 해주셨다. 어디 놀러를 가더라도, 항상 친구와 나를 같이 데리고 다니셨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그렇게 해주셨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고, 친구 아버지는 폭스바겐 세단을, 친구 어머니는 벤츠를 타셨다. 친구와 나는 항상 그 차들의 뒷좌석에서 함께 했다.(나는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내 친부모 간의 매일같은 싸움통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 친구 집에가서 잠을 잤던 적이 왕왕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친구 아버지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항상 힘이 있고, 활기가 찼던 남자 어른이었다. 외모는 꼭 삼성 이건희 회장과 닮은 분이었다. 친구와 새벽 늦게까지 피파 게임을 하고 있다가, 자기 전에 물을 마시러 거실쪽으로 가는 길에 그 분이 베란다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넓은 집 베란다에는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늦은 새벽 그는 혼자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독한 버번을 홀짝이고 있었다. 제법 취기가 있는 상태였는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인기척은 느끼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어린 나이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어른이 굉장한 괴로움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저 두가지 개인적인 경험은 모두 오랜 과거의 일들이다.
지금 이 글이 쓰여지고 있는 현재는 저들이 경험했던 세상보다, 더욱 각박하며 전투적이어야만 하는 세계로 변모했다. 더욱 절제하고 조심해야하며 경쟁적으로 변모한 구조가 되었다. 인프라가 개선되고 기술이 발전하여 편리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그 때의 낭만은 돌아올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때문에 나는 풍요, 안전, 절제, 질서, 강인함, 유능함을 스스로 추구하며, 독자들에게도 권유하고 촉구하는 바이다. 이들은 대부부은 스토아 철학에서 언급되는 주요 자질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감, 위로, 감성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자질들이다.(오히려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다. 차라리 실존주의와 유사하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다 컸으면 제법 직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자 한다. 언제까지고 공감과 위로로 연명을 하려는 관성을 쥐고 있다면, 그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80살 90살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생 전체가 실체가 없는 정신 자위로만 물들게 된다.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90살이 되어 더이상 세월을 되돌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디스토피아는 감상에 젖은 이에게는 갱생의 가능성을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