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세대에 있는 인물 중, 아무 지원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평균 이상으로 치고 올라온 부류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10대와 20대에 워라벨이라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경우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물리적인 위험을 몇 년간 감내한 이들이 많다. 신체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 많다.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나도 그랬고.
이제 이런 건 굉장히 식상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잔소리를 하기 위함은 아니다. 필요한 인지체계를 바꿔보기 위함이다. 시대 상황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찬란한 젊음을 저런 지옥에 산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역행하는 행위이다. 논의 여지가 없다. 저 짓을 하는 것은 그만큼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상적이지 않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관점을 명징히 해볼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세계에서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행위를 하면, 그것은 정상적인 행위이다.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세계에서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행위를 하면, 엄밀히 말하면 사실상 그게 비정상이다.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세계에서는 '부자연스럽고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를 하는게, 오히려 정상적인 수순이다. 앞뒤 그리고 결이 맞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에는 비정상의 머리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들이 수적 우위가 되어 표면적으로는 절대다수가 정상적이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젊고 앳된 나이에 위험 가득한 일터로 가는 것에 대해, 뭐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 차원 높은 관점에서 엄밀한, 명징한 인식을 해보려고 한다면.
내가 말하고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태생적인 족쇄와 결계로부터 물리적인 자유를 쟁취하고자한다면, 그저 공상만하며 인생을 축내고 싶지 않다면, 애초에 희망을 버리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현대에 들어서 서방국가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들어섰다고 한들, 군주제부터 남아있던 신분 상승의 대가는 지금에서도 별 차이가 없다.
조선 시대, 고려 시대, 삼국 시대에 천민이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난을 일으켜야했다. 난이 실패하면, 참수형이 내려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흑인 노예가 목화 농장에서 탈주를 하거나 반항을 하면, 자리에서 총살되었다.(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지독한 형벌이 내려지거나.)
과학 기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속성은 미개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격언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진정한 승리는 희망도, 공포도 없는 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모두에게 이러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나고자란 사람들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비루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강제로 생을 시작하게 되는 운명들이 존재한다.
그들 중에 나와 같은 계열의 종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그들에게 유효한 블루프린트를 주려고 한다. 실효성 없이 사람 시간만 잡아먹는 이야기는 지양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 과정을 똑같이 겪었어서 모종의 동질감이 드는 것이라 분석한다면, 그것도 제법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겠다. 이런 이야기가 대중성이 없어서 돈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것도 맞는 말이라 인정하겠다.
뭐라고 한들, 나는 상관없다. 나는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들에게, 내가 직접 밟아온 가장 최근 세상의 유효한 청사진을 효과적으로 잘 남겨주게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