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최근 구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래서 주식 투자 컨설팅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그에 대한 입장을 쓴다.
결론은 컨설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년 가까이 되는 브런치 작가 활동 간, 스스로의 발전이 있었다. 요즘 들어 방향을 확실하게 잡았다.
나는 작가의 본분에 충실할 생각이다.
작가는 글을 쓴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그에 대한 감사 비용을 치르겠다 하여, 수고비를 벌면 버는 걸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24년 7-8월에 있을 출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인간의 감정, 철학, 주식투자, 사업, 경제에 관한 인사이트는 여기에 담았다.)
강의, 컨설팅을 하면 종래에는 욕을 먹는다. 이것은 마진율이 뛰어나다. 그래서 얼굴과 신상을 팔고서라도 진행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많다.
어떤 사람이든 대중 앞에 신상을 까게 되면, 마녀사냥을 당한다. 이로 인해 내 가족들에게도 데미지가 간다.
나는 그렇게 돈 벌지 않아야 한다. 내 인생 속성은 '침묵의 수호자'이다. 내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대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는 하지 않아야 한다. 신상을 까고 강의와 컨설팅을 한다는 것은 그에 위배된다.
내가 돈돈 거리는 것 같지만, 돈은 수단일 뿐이다. 더 큰 가치가 무엇인지는 내 영혼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전략은 '세이노의 가르침'을 쓴, 세이노 회장님에게서 벤치마킹했다. 나는 그가 나보다 지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유명세에 관심 없기도 하다.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글로만 승부를 낼 수 있다면, 진정한 작가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시간과 분노에 대해 써볼까 한다.
모두에게 시간은 소중한 것이다. 소모성이며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수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인지하는 사람이 있고,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퍼포먼스 수치가 다르다. 사람에 따라 일정 시간마다 토출 해내는 결과물의 양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나의 부모 그리고 형제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나는 조금은 특이한 경우로, 여러 번째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 위험한 일터에서 돈을 벌다 죽을 뻔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땅에 지금의 의식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도 소모되고 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는 '공'이라 칭한다. '없을 공'자로, 원래 있으나 마나 한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반야심경의 주된 내용이다. '알베르 카뮈'는 인생이 부질없는 짓의 연속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강박이 있다. 결과물을 내지 않는, 흘러 빠져나가는 시간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다못해 푸시업이나 달리기라도 해야한다.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나는 본능적으로 승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돈을 버는데 집중한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논하며 익힌다.
그렇게 된 것의 가장 중추적인 재료는 분노이다. 누군가 예의범절의 선을 넘어 나 또는 공동체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내 안에 큰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한 선 넘기의 가장 실제적인 사유는 내가 충분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Violence. 폭력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겠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힘들이 있다. 경제력, 지적 능력, 운동 능력 등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용도를 가지는 것이 경제력이다. 그다음이 운동 능력(물리적 싸움)이다. 그다음이 지적 능력이다.
그래서 저 중요도 순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있다.
미소 냉전시대 당시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했던 말이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합시다. 전쟁과 평화중에서 평화를 고르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곧바로 얻을 수 있는 보장된 방법은 한 가지, 항복뿐입니다.
분명히 어떤 정책을 선택하든 다 리스크가 있지만, 모든 역사의 교훈은 유화정책에 더 큰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계속 포용정책을 편다면, 계속 물러서고 후퇴한다면, 언젠가는 최후통첩과 마주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속박과 굴종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은 삶과 평화가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삶의 어떤 것도 목숨을 내던질 가치가 없다면, 이건 도대체 언제 시작된 것인가요?
모세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파라오의 노예로 살라고 말해야 했습니까?
나치의 진격을 막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분들은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우리의 적에게 이렇게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대가에도 내어주지 않을 가치도 있다. 너희들이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배리 골드 워터의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나는 이 연설이 자유와 평화에 대한 궁극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국가의 입장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가난했던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깨달았다. 덩치 크고 힘센 양아치들과 다퉈보며 깨달았다. 조직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비굴하게 굴복해보며 깨달았다.
각자의 소신은 다 다를 수 있으나, 세상의 순리는 다르지 않다는 관찰을 오래간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직시하게 되면, 지금의 나와같은 삶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발전에만 집중하는 삶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