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and hate - Michael Kiwanuka
https://www.youtube.com/watch?v=w44dlsnJ1no
나 같은 놈이 사랑 타령하는 것이 웃기기는 하지만, 사랑에 대한 글을 잘 안 썼으니 써볼까 한다.
시작부터 말하지만, 나는 사랑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안다.'는 말을 한 것처럼, 내가 가진 사랑 개념에 대해 저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사랑은 논리 그리고 이성과 정반대의 속성이라고 느낀다. 나는 주식투자를 오래간 해왔고, 사업에 관심이 있다. 이들은 논리, 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장 최근에 헤어지게 되었던 여자와의 일들을 떠올려본다. 어느 선까지는 타협을 했던 것 같다. 넘어서는 안될 선은 명확히 존재했다. 예를 들면, 양도소득세 납부 예산을 오버할 만한 소비가 구체적인 기준이었다.
보통의 연애를 꿈꾸는 여자들에게, 이러한 마지노선은 그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전 여자친구도 보통의 여자들보다 소비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저금도 보통의 여자들보다 잘하는 축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의 설명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구체적인 비전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다. 머리 아프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중간 과정은 다 잘라먹고, 표면적인 결론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결론이라는 것은 유한계급에 도달하여,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위상이 된다는, 쉽게 풀어낸 내용이었다.
그녀는 그렇구나 하고 아이돌 노래를 틀고는 사랑스럽게 지지배배 따라 부를 뿐이었다. 나는 그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쳐주며 웃어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를 예뻐했다.
일 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그녀와 헤어진 것이.
그녀도 나도 후회가 없다.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좋게 헤어졌고, 몇 달 전에 안부도 묻고는 했다. 그게 다다. 그녀는 카페를 열었다. 나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밀리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은, 그 기준이 평균보다 엄격하기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견디지 못한다. 나가떨어진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타협이 안 되는 이유는 이렇게 키운 힘을 바탕으로 내 공동체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도를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력을 다하여도 제시간 안에 달성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비전이다. 순수 거지 시작점에서 거기까지 간다는 것은 길고 고되며 외로운 여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균보다는 확실히 강인한 사람이긴 하지만, 나 또한 그런 고통을 느낀다. 접시가 깨질 위험을 감수하며 여러 접시를 한꺼번에 돌리기에는, 걸린 문제가 중대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다른 남자 찾아 빨리 결혼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이성적인 선택이다. 그렇게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붙잡고 있지는 않다.
서른이 되니 연애에 대해서는 조금 알겠다.
결혼은 지금도 정말 모르겠다. 지금 당장, 내가 세운 비전에 도달했다고 치더라도 결혼은 모르겠다. 많은 여자를 만났다고 말하기는 어폐가 있으나, 적게 만나지는 않았다. 그간 많은 것들을 보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 봤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보여지는 20대 후반 - 30대 초반의 여자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다. 마치 세무조사를 나온 것 같은 그들의 찔러보기에 팍 질려버리는 감정을 느꼈다. 커피가 그날 따라 그렇게 쓰고 맛이 없었다. 카페인을 먹는데 왜 피로함이 가중되는 것인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커피를 먹지, 날 잡아먹으려 하지 않았으면 싶었던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라, 나이 어린 아빠를 만들러 온 것 같달까...
내 인생 테마는 수호자이다. 수호의 의무를 뒤흔들만한 위기를 자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자 한 명과 결혼하는 것을 뭐 그리 예민하게 생각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소신이 다르다.
나는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비전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경제 지위 하위 4%에서 시작하여 상위 1%에 근접하겠다는 비전이 어찌 평범한 비전이겠는가.
나는 글에서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고통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중 또 다른 하나의 고통이다. 여자를 위험인자로 인식한다는 것이 때로는 혼자 슬플 때가 있다.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다. 만약,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인생은 이어진다는 점을 반복해서 자각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플레이션은 따라오고 있다. 40%대의 세금 인상이 다가오고 있다. 부모의 준비되지 않은 노후가 따라오고 있다. 선진국 함정에 빠진 한국에는 범죄율이 치솟을 것이다.
속도를 최대화 하기 위해, 전 재산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걸터 앉은 채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매해 세금의 압박이 있을 것이다. 사업까지 한다면, 말도 다했다.
아무튼, 이들을 적절히 처리하여 공동체를 잘 보호하는 것이 수호자의 책임이다.
전 재산의 유동성, 그 중압감은 그림자처럼 따른다. 그러면서도 호쾌하게 지내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잘 모른다고 말해야 하겠다. 그것을 제대로 알기에는 해결해야할 문제거리가 너무도 많다.
그러니 사랑은 딴데가서 들어보길 바란다.
밤이 깊었다. 이만 줄여야겠다. 주말이지만 출근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