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 중에 '헛방'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치면 'miss'일 텐데, '소용이 없더라' 또는 '안되더라' 정도로 설명하면 적당할 것이다.
오늘 글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에 관한 글이다.
나는 매사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시간 약속이 있으면 늦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먼저 책임지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감상적이지 않다. 올바르게 행동하면 할수록 나의 위상이 유리해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길게 보았을 때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상황에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서른이 되었다. 느끼기에 세상에는 혼란스러운 일들 투성이지만, 그중 가장 정리정돈이 어려운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라 생각 든다. 내게 이 문제는 오래되었다. 나름 결론 내린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 자체를 많이 두지 않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새 사람을 보게 될 경우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사람이 자락에 들어오게 될 경우가 생긴다.
이때,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특히나 나는 보통의 캐릭터가 아니기에, 이런 문제가 더 많이 생긴다. 대부분의 이야기 주제에 있어서 평균과는 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깊은 대화도 잘 안된다. 경제와 관련된 주제에 있어서는 첨예하다. 철학, 역사, 종교, 정치체계에 있어서는 그래도 좀 낫다.
보통 사람들은 가요를 좋아하지만, 나는 클래식 위주를 좋아한다. 꼭 '클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를 듣는다.
Red hot chilly peppers의 Dark necessities를 듣는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세계적인 베이시스트의 리프에 감동을 느끼며 고막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Queen의 Bohemian rhapsody를 듣는다. 시작부터 엄마보고 사람 죽였다고 고백하는 가사를 곱씹으면, 무언가 느껴지는 비통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Led Zeppelin의 Babe i'm gonna leave you를 듣는다. 너란 여자를 떠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그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마지막 부분의 기타와 힘찬 드럼으로 표현하는데, 나는 그 극적인 부분에서 소름이 돋고는 한다.
예전에 만났던 과거 한 여자친구는 나보고 노래 틀지 말라고 그랬었다. 그래서 뉴진스의 하입보이인가 뭔가를 잠자코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반 고흐의 유화들을 보면 느끼는 게 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을 멀리 서가 아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붓의 질감이 남아있다. 이것은 수채화가 아닌 유화이기 때문에 볼 수 있다. 유성 페인트가 붓의 질감 그대로 굳어진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보면 고흐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정신적 고통에 자기 귀도 잘라버린 사람이니까.
나는 그 기름덩어리가 붓 끝에 묻어 한 땀 한 땀 굳어지고 짓이겨진 자국들을 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태에서 이 그림을 그렸을지에 대해 공감하고 상상해보고는 한다. 그것에 어떠한 이입이 될 때가 있었다. 때때로 나도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글을 주야장천 써 내릴 때가 있다.
오늘도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보통사람들에게 하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한 마디로, 내 주변에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저러한 정신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철학적 견해를 주고받는 데에 있어서 브레이크가 안 걸리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새 사람이 들어오고, 마음의 정을 많이 준 뒤, 저러한 전반적인 주제에 있어 이질감을 느끼게 되면 에너지가 닳는 기분이 든다. 문화, 예술의 차이에서는 그리 큰 소모감이 들지는 않으나, 책임감 방면에서는 정말로 큰 소모감이 든다. 그래서 감정이 슬퍼지게 된다. 기운이 없어지게 된다.
책임감은 삶의 모든 방면을 아우른다. 다른 사람의 시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돈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건강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책임감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서두에 '헛방'이라는 말을 썼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한다. 그러니 남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 근처에들어왔다면, 어떠한 개선 시도를 빠르게 포기해 버리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헛방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생산적인 활동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것이 남는 장사일 것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듯이.
그리고 이것은 자기 규율의 일환이다. 내게 필요한 일이고,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것일 테다.
그 헛방에 저의 온 에너지를 쏟고
탈진했던 1인 여기 손 번쩍입니다. ^^;
잘 읽고 가요. 고맙습니다.
아이고 좋은 아침입니다
헛방인 것을 알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일인입니다.
포기 바랍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앗 헛방! 저도 이럴 땐 헛방이다 하고 말아야겟습니다!!
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네요.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이 인간관계더라구요.
전부 헛방인 인간관계가ㆍㆍ
뱅커 생활에서 조직 사람들은 어떠셨는지요 궁금합니다
@언더독
은행이라는 조직은 그나마 투명하고 공정하였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불치병 학연, 지연에 의한 인사들이 있었던 것 같았네요.
ㅠㅠ
그랬군요..
헛방이다 오랫만에 보는 고향의 단어네요~~~책임감 있는 모습 멋지십니다~~
고맙습니다
Dark necessities 노래 좋네요ㅎㅎ
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