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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썼다. 담배피고 싶다.

by 언더독 Jun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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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매드 맥스'가 나왔다. 극 중 인물 '퓨리오사'의 관점으로 보는 아포칼립스의 이야기이다. '퓨리오사'라는 이름은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다섯 번째 천사의 이름이다. '퓨리오사'가 나팔을 불자 별이 떨어지고 지옥문이 열린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오늘의 글은 시스템에 관한 글이다. 우리가 사는 게임의 속성에 관한 글이다.





나는 10년간 증권에 투자를 해왔다. 부동산 경매 임장을 다니고 법원에도 들락날락거려 봤다. 장사 수준의 사업을 해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사는 이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래보다 많이 알기도 안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산다.


나는 태어날 때 실퍼스푼을 물고 나오지 않았다. 친부의 파산신청 그리고 개인회생이 기각되었다면, 내게는 20억 이상의 빚이 전가되었을 것이다. 학생 때는 차비나 음식조차 없을 때가 더러 있었다.


요즘 법인 차량의 번호판 색깔이 연두색으로 바뀌었다. 그걸 보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업무용이 아닌 사적 용도로 차를 굴린다는 것이 이유이다. 부자들이 세무사를 기용해서 절세를 하는 것을 보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업주들이 매몰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건비를 아끼는 것을 두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렇게 하는 부자들을 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런 부자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세상은 그 순리대로 계속해서 회전한다.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 춤을 춰야 한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계속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EDM 음악에 강강술래를 추는 사람들이다.


춤이 영 구리다는 뜻이다. 그러면 클럽에서 밴 먹고 쫓겨나는 것이다.





결론은 우리는 최대 효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영생을 살 것처럼 하루를 살지만, 죽음은 지금도 한 발짝씩 부지런히 다가오고 있다. 가족의 죽음도, 친구의 죽음도, 아내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예외가 없다. 


알던지 모르던지 우리는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거나, 해야만 할 운명이다.


게임의 룰에 맞추어 움직이는 부자들을 욕하는 것은 효율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생산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을 찾는다고 한다면, 그런 부자들을 보고 최대한 따라 하는 것이 논리적인 행동이다.


무언가의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 흐름의 큰 파도를 보다 보면 알게 된다. 전 지구적 경제 사건들에게는 휴일도, 휴식도 없다. 365일 24시간 나를 공격한다. 경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두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제는 적군이다. 그들을 우방으로 만들려는 관심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체제와 시스템에는 저마다의 공략법이 따로 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의 공략법은 최대한 일찍부터 최대한 많은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다. 핵심이다. 자산이라고 함은 부동산, 주식, 코인, 동산 등을 뜻한다.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엥겔지수를 끌어올리지만, 동시에 자산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높인다.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버스에 탈 건지는 논리 상 금방 알 수 있다.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고, 알면서도 버스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과 한국 사람들 중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이것을 인지는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관찰을 해보면 어떤 이들 중에는 이를 알면서도 유한계급의 직업 획득에 치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한계급이라는 것은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한 특정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영어로 하면 'Leisure Class'이고 한자로 하면 '있을 유', '한량할 한'이다. 


이들 직업의 특징은 실질적인 생산활동과는 무관한 업무를 한다. 가령 종교, 정치, 전쟁, 스포츠 등의 것이다. 이 직업들은 선사시대 인류의 사냥에서 분파되었다. 사냥에는 '명예'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에, 현대에 와서 분파된 저러한 직업들 속에도 그것이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생산활동과는 무관한 업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다수 인구의 존경과 선망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단히 예민하게 집착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미 기득권이 된 집안에서는 이러한 치중을 해도 큰 상관이 없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인정받는 욕구를 채우는 것이 더 자극적인 쾌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범주의 태생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러한 태생일수록 한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많은 이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죽도 밥도 안될 수 있다는 점을. 


그래서 없는 집안일수록 각종 고시나 로스쿨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리스크를 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서연고에 입성하기 위해 자원을 쏟아붓는 것이 필요 이상의 리스크를 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행위는 '잘 살아보세 새마을 운동'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나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공업 기반을 닦고, 내 다음 대에서 첨단 산업을 해보려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농경 사회에서 다이렉트로 첨단 산업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상식과는 거리가 먼 모험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집단에서는 빈부격자차 벌어지는 것에 분노하여, 체제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매드 맥스는 그러한 아포칼립스의 시기를 잘 표현한 영화이다. 인물들은 식량, 연료, 무기를 득하기 위한 이기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죽어나간다. 전쟁은 일상이다. 비인간적인 잔혹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인류의 긴 역사를 돌아보면, 그 속에는 많은 시스템이 존재해왔다. 왕정, 공화정,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이 있어왔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붕괴했다. 


역사는 제시한다. 결국에는 자본주의만 남았다는 것을.


아무 이유도 없이 이것만 남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구축할 수 없다. 유토피아라는 말의 어원은 'Nowhere'으로, '아무데도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나마 가장 나은 시스템이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집단의 말처럼, 이 시스템을 전복시킨다고 해보자. 그다음엔? 


더 나은 세계가 나타날까. 영화 매드맥스처럼 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점을 알고,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서 공략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캐릭터에 힘을 실기위해 글을 썼다. 오늘도 나는 주식을 모니터 했다. 이어질 것이다.


다 썼다. 담배피고 싶다.

A Fifth of Beethoven

https://www.youtube.com/watch?v=VimNTQ6cU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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