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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만

by 언더독

가장 첫 단계에는, 자신이 일을 한 것에 남이 값을 지불한다.


그다음 단계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제공한 것에 남이 값을 지불한다.


마지막 단계에는, 내 캐릭터 자체에 남이 값을 지불한다.



한 천만장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느 단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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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째 단계까지는 가보았다. 어떠한 서비스 또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해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돈의 교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를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 단계가 되려면, 이 플랫폼에서 주류 작가가 되어야 한다. 최소 1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방법은 없다. 방향은 있다.


가장 먼저 성실하게 써야 한다. 하늘이 두쪽 나도 내 글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문을 연 기사식당에 택시 기사들이 오는 법이다. 이건 방법이 아니라 얼마나 부지런함을 감수하냐에 달린 문제다. 변명은 없어야 한다. 2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변명이 없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글이 뛰어나야 한다. 뛰어나다는 것은 무엇인가. 독창적이면서도 논리적이어야 한다. 실용적이면 더 좋다. 예술적이면 더 좋다. 모든 점들이 섞이며 '언더독'이라는 작가의 고유한 색깔이 강렬히 묻어 나와야 한다. 돈부터 벌자고 이 점을 간과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령 출판사의 원고 각색 압박에 굴하는 것을 말한다. 지겹도록 겪었다.(요새는 그냥 출판을 하지 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불성실한 출판사들에 넌덜머리가 난다. 글이야 사람들이 여기서 공짜로 보면 될 일 아닌가.)


이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모르겠다. 스피드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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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한 말이 있다. 시시각각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본능을 거스르는 삶을 산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본능대로 산다고.


나는 전자에 가깝다. 죽음이 목전에 닥치는 경험을 몇 번 해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이렇게 된다. 내 글을 오래간 보아온 사람들은 안다. 나는 여러 번째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매일밤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며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내 공동체 구성원의 죽음들까지 고려한다. 그러면 알게 된다. 정말로 시간이 아쉽다는 것을. 여유가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일을 하면서도 일을 하고, 자면서도 일이 되게 하고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어떤 악재가 덮쳐도 생산적인 활동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가령 몸이 아파지거나 여자와의 연애 또는 연애 비슷한 것이 끝이 나더라도 생산적인 활동은 멈추는 법이 없다.


이건 뭐를 열심히 한다는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이 관성의 근원은 두려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두려움이냐 하면, 죽기 직전 느낄 끝없는 후회감이다. 교회에서는 항상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예수님 믿으라고 말하지만, 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 가는 건 두렵지 않다.


다만, 내 게으름, 오만함, 멍청함으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아버리는 것은 두렵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잘 책임지지 못한 삶을 산 사실은 죽기 전 되돌릴 길이 없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옆에서 괜찮다 말해줘도, 내가 괜찮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신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이 사고과정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삶에 마지막 들숨 날숨이 있는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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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기 전, 내 아녀자들이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기를 바란다. 사내놈들은 강인한 전사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딸이 있다면 그녀의 타고난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기를 바란다.


내 구독자들은 내 글과 나의 존재로 인해, 그들의 공동체 또한 이와 같은 효과를 누리는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 하나마나 하는 말뿐인 말이 아닌, 실제 물질과 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죽음을 생각하면, 실존의 가치에 대해 논하게 된다.


실존의 가치는 내가 아닌, 내가 고통받아 희생하여 바쳐드는 공동체의 떼깔에서 나온다. 거기서 영혼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행복, 즐거움 찾아 맛집 여행 취미 삼만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이유는 내게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부리나케 땅을 파재껴도 이뤄내기 어려운 목표를 둔 사람에게, 그러한 사람들까지 품어줄 여력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천국도 가지 않을까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주요한 것은 아니지만.


I42QKkJ.png?format=1500w 뭐가 되었든 시간 나면 씁니다. 안나도 씁니다.



White Room - Cream

https://www.youtube.com/watch?v=FslrcIxvu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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