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은 범사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하면, 약쟁이가 되거나 여자놀음을 하다 나락 가기도 하니까.(종종 남자놀음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진실로 의아하다. 남자가 시꺼먼 남자놈이 왜 좋지.)
이것은 역설적이다. 삶을 살고 있을 때, 즐겁고 재미있게 잘 즐겨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리를 즐길 수가 없는 뇌가 되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설계가 된다.
"죽을 때, 후회가 없는 충만한 기분이라도 느껴야겠다."
여기에는 반칙이 적용될 수 없다. 아무리 스스로 자신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정신자위질을 해봐야, 성공한 인생을 살지 못했고 최선을 다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면 자신이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고도 걱정한다. 정말 오늘 최선을 다했는지.
나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명백하게 잘 해결했는지.
그것을 정말로 성실하게 잘 대비해 놓은 건지.
미래의 아내와 미래의 2세에게 책임감 있는 강한 남자의 삶을 살아내었는지.
그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신체적 유산을 모범적으로 남겨주었는지.
벗들에게 의리 있게 살았는지.
인생 살며 거쳐간 고객들에게 실익과 좋은 기운을 준 것이 맞는지.
이런 게 팩터가 된다. 내 인생 만족도를 측정하는.
이렇게 글로만 보면, 멋진 일 같다.
일상에 돌아와 나의 생활패턴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손사래를 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건, 말 그대로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어린애들 소꿉놀이하는 거 마냥 쓰지 않는다. 정말 귀하게 쓴다.
나는 안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횡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다가 갑자기 꼬꾸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거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 봉사를 준비하거나.
그 이외에는 날려먹는 시간이 없다. 걸어가면서도 일을 하고, 대중교통 위에서도 일을 한다. 눈 뜨자마자 시작이고, 눈 감으면 잔다. (엄밀히 말하면, 자면서도 해외주식은 돌아가고 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려면, 정말로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반칙이나 합리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복절인 오늘도 오전에는 일을 했고, 오후에는 글을 쓴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확장되는 범위가 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도 게으른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성실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유는 박스 바깥에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 시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 유의미한 생산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보통의 근로노동으로는 택도 없다.
투자나 사업을 향한 길을 열어야만, 유의미한 생산성을 보인다.
그것을 성공시키기 위한, 확장된 고민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게으르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고민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을 수시로 본다. 내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를 저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내 지식의 지평선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레버리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그것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그것을 감수하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그렇다. 내 뇌 안에서는 이에 대한 수십차례의 시물레이션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하루하루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한다는 것은 나태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모르며, 외면하고 합리화한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명쾌한 오판이다.
내가 증명해 주거나 알려줄 필요도 없다. 세월이 당신에게 증명해 줄 것이다. (이미 많은 인생들이 증명해주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주의 깊게 보지 않을 뿐이다.)
그전에 기회가 있을 때,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한다. 걱정하고 스트레스받고 조급해한다.
이게 이치가 맞으며,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쁘게 감내하려고 한다.
나는 합리화하고 도망치다가 30년 뒤에 후폭풍을 정타로 맞고, 후회의 안주거리를 풀며 한심하게 나무 그늘아래서 막걸리나 까며 장례식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
이쯤 되면 느끼겠지만.
그렇다.
내 글은 어렵다. 내 총회도 어려운 내용이다. 컨설팅은 더 어렵다.
이것은 반증이 된다.
쉽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에는 가치가 거의 없다. 어렵고 힘든 것에는 높은 가치가 있다.
구독자를 늘리고, 서비스 장사를 해서 일단 돈만 많이 벌겠다고 한다면.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 맞다.
생각해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내용을 쉽게 하고 난이도를 더 떨어뜨리면, 내 총회와 컨설팅 대상자는 돈을 못 벌 것이다. 어려운 내용을 다뤄야 고객이 돈을 벌 확률이 높아진다. 당연하다.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결과를 원한다. 과정이 아니라. 과정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내게 값을 지불한 사람이, 결과를 얻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고객이 물질적 이득을 취하고 만족감을 느끼게 되며, 나는 떳떳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