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미국 독립 전쟁을 그린 어떤 영화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당시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노예였던 것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전쟁에 참전하여 일정 기간 이상 복무를 하면 정부에서 자유인의 신분을 주겠다고 약속했기에, 많은 흑인들이 자원입대를 한다.
한 흑인 병사는 이미 군에서 제시한 복무 기간을 다 채웠지만, 다음 전투에도 참가한다. 자신의 지휘관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이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그 흑인 병사 옆에 있던 백인 병사가 이렇게 말한다.
"너 복무기간 다 채웠잖아. 여기서 죽을 필요 없어. 싸우지 않아도 돼."
흑인 병사는 이렇게 말한다.
No. I am here of my own accord.(아닙니다. 내 뜻으로 있는 겁니다.)
My own accord.
참으로 멋진 말이다.
오늘은 자유에 대한 글을 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평생을 생각해 온 사람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루어보려고 한다.
오로지 자기 뜻에 의해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무슨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이다.
그리고 독립이 없는 자유는 반쪽짜리이다. 독립이라는 것은 앞서 제시한 자유의 개념에 외력의 간섭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더 붙는 것이다.
현대인들 중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그리고 독립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다수가 아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사는 맵의 게임은 자본주의 게임이다.
우리가 밟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것' 그리고 '가족을 꾸린 입장에서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것'.
일반적인 사람들이 쾌락을 느껴하는 단순 소비재들에 도파민 역치를 상실해 버린 나 같은 사람이면, 개인이 평생 자유와 독립을 누리는 데에는 3억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재들은 다 마련된다.
단순 소비재에 미련이 있는 사람이면, 필요 자본의 크기는 끝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 쾌락 체계가 맛탱이 갔을 확률이 높다. 나한테는 람보르기니나 몸매 좋은 여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유와 독립이 필요하니까.
그게 더 짜릿하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가지고 싶으니까.
나와 같은 철학 체계를 가지고 가정을 꾸려 가장의 책임을 지려한다면, 4인 가족 기준 10억 정도가 필요하다.
위에 제시한 3억과 10억은 계산을 해본 추정치로, 지속적인 적정 현금흐름 발생과 인플레이션률까지 함께 감안한 결과치이다. 내 식대로 철두철미하게 운용한다면 저 정도면 충분하다.
자유와 독립을 누릴 수 있는 자본의 얼추 크기는 두 가지 상황에 있어서 저러하다.
여기서 10억의 경우, 통계적으로 경제 인구 상위 10% 이내에 들기 시작하는 사이즈이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 무작위 10명이 있으면, 그중 1명 만이 자유와 독립을 누리면서도 가장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와 인물사를 살펴보면, 능력이 출중했던 사람일수록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게 무슨 능력이 되었든 간에, 족적을 남긴 이들이었다면 그러한 공통점이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대표 명제를 만들었다.
저게 무슨 말일까.
쉽게 이야기해 보겠다.
직장인 A 씨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영업부서의 대리이다. 그리고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이 A 씨는 출근하기가 싫지만, 밥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종일 상사의 비위를 맞춘다. 어쩔 수 없이 거래처 접대를 위해 밤마다 먹고 싶지도 않은 술을 따르고, 되지도 않는 천박한 갑의 우롱에도 함박 웃음을 짓는다.
그는 어렸을 적 꿈이 있었다.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는 지금도 밤하늘을 자세히 보고 싶고, 여러 가지 우주 물리 이론에 흥미가 있다.
먹고 마실 것, 텐트, 천체망원경, 천체 물리 이론서 10권, 트럭 하나만 있다면 몇 년을 혼자서 연구해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일 출근하고 또다른 술접대만 없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만이 몇 년째 계속될 뿐이다.
'사르트르'가 이 사람을 두고 말하는 A 씨의 '본질'은 '영업부서 대리'이다.
'사르트르'가 이 사람을 두고 말하는 A 씨의 '존재'는 '천체물리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A 씨는 본질이 존재를 앞서는 삶을 살고 있다.
'사르트르'는 A 씨가 반대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존재가 본질을 앞서는 삶을.
그것이 실존주의이다.
연필은 태어날 때 흑연을 비벼서 종이에 기록을 남길 연필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맞지만, A 씨가 태어날 때는 특정한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값 없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건 '존재'가 알아서 정하고 만들어가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자유가 있으며, 책임이 따른다는 이야기이다.
'사르트르'의 저 대표적인 명제는 자유 그리고 독립과 지대한 연관성이 있다.
이 사람은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L'homme est condamné a être libre.)
유명한 말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자유는 인간에게 불확실성에 기반한 불안감을 주기에, 이를 일종의 형벌처럼 선고받았다고 말했다는 주장이 주된 해석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러한 불확실성을 사랑하며.
한발 더 나아가 그 불확실성을 개척하고 정복하여 새로운 영토에 끊임없이 전에 없던 통제력을 갖추는 것에 엄청난 쾌락을 느낀다.
나에게 자유를 선고받았다는 저 말은.
'너는 자유 없이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이다.'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말로 해석된다.
존재는 실존을 앞선다고 했고, 내 존재가 저러하다.
그러므로 돈과 경제는 내게 대단히 중요한 어젠다이다. 대부분의 여러분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어젠다이다.
다만 아주 간혹가다가 '돈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는.
돈과 부자들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 뉘앙스가 실린, 개인적으로 '절레절레'하게 만드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럼 돈 이외에, 당신이 태초에 함양한 존재를 당신은 정확히 알고 있는가. 부단히 사색하고 노력하여 그게 무엇인지 발견해내었는가.
그러하다면 당신만의 고유한 존재에 기반한 기초 철학의 종류와 대표격 인물, 대표격 작품을 알고 있는가.
그 기초 철학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또 당신의 본질 이전의 존재에 얼마나 그 내용을 적용하고 있는가.
그런 것들은 돈이 아니다.
그러면 그런 걸 잘 알고 또 잘 하고 있는가.
반야심경
https://www.youtube.com/watch?v=fbMKLrPcIcs
< 7차 총회 > "2025.02.20 예약마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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