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하여 직장에서 지난 2년간 단체 행사라고는 뚝 끊겼다가 얼마 전 토요일 이사장님 생신 잔치 겸 전체 회식을 큰 뷔페식당의 룸을 빌려서 진행했다.
실로 오랜만에 행사였고 직원 아이들도 데리고 와도 좋다고 하여 나도 딸을 데리고 참석했다. 식당 안은 스테이크부터 초밥, 각종 해산물까지 다양한 음식들로 즐비하여 눈과 코를 즐겁게 했다.
그동안의 거리두기로 억눌려왔던 억압이 이미 폭발한 이후라 식당은 우리 이외에도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음식을 퍼서 접시를 꽉꽉 채운 뒤 흡입하고 또 넘치도록 담았던 나와는 달리 까다로운 우리 딸은 흰쌀밥에 갈비찜, 치킨 몇 조각을 먹더니 배부르다며 후식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알록달록한 조각 케이크를 먹었다.
어느덧 대부분의 사람이 포만감과 함께 의자 속 깊이 파묻히려는 찰나, 센터장님의 마이크를 잡는 소리로 행사의 포문이 열렸다.
다음으로 교감 선생님 아니 국장님의 말씀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이사장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다 같이 일어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노래와 함께 꺼질 듯 말 듯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촛불 아래로 예쁜 떡케이크가 등장했다.
어찌나 예쁘던지 단순한 케이크가 아닌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케이크 커팅식(?)을 하고 난 후 그동안 우리의 노고에 대한 교장 선생님 아니 이사장님의 훈화 말씀이 이어졌다.
가뜩이나 바쁘게 일했던 날이었고, 밥까지 건하게 먹고 난 후라 이사장님의 훈훈한 말씀은 마치 우리 집 창문 너머 어딘가에서 확성기를 타고 들려오던 정치인의 유세 소리 같았다.
그렇게 현실과 점점 멀어져 가는 귀와 달리 내 눈은 줄곧 한 곳에 멈추었는데 그건 바로 다름 아닌 아름다운 조각 케이크가 칼로 천천히 잘리는 모습이었다.
아마 이사장님께서 직원들에게 나눠주라고 한 모양이었다.
조각이 났을지언정 여전히 고고하고 도도한 자태를 잃지 않은 조각 케이크는 그렇게 접시에 실려 직원들의 테이블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조각이 우리의 테이블로 안착하자 나는 케이크 조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체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명인이나 예술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참을 그렇게 케이크를 쳐다보다가 포크로 한 조각 떼어 입 안에 넣어보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앙금이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 녹듯 사르르 녹아들었다.
그런데 단지 한입 먹었을 뿐이었는데 여태 많은 음식으로 이미 차고 넘치는 배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도저히 더는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아까운 마음에 옆에 앉아 있던 직원에게 권유했더니 그녀도 음식이 목까지 찼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우리 딸도 이미 퐁듀를 초콜릿에 열심히 찍어 먹은 후라 도저히 못 먹겠다며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었다.
어디 다른 데 줄 데가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니 다른 테이블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케이크 조각들은 피카소의 그림 속 사람처럼 사방으로 분산된 채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 같았다.
한때는 거리를 오고 가는 수많은 군중이 감탄의 눈으로 보며 사진으로 담았을 벚꽃이 봄비와 변덕스러운 바람, 속절없이 흘러가는 계절에 의해 길가에 뿌려진 후 천덕꾸러기가 되어 무심히 짓밟히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테이블 위에서 쓸쓸히 쓰러져 있는 케이크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문득 이상한 상념이 올라왔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도 그에 걸맞은 상황이나 장소, 시간에 있을 수 없다면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 없다.
성대한 생일잔치 상의 케이크처럼 장식으로만 쓰이다가 버려질 수도 있다.
그것의 본래 역할은 장식이 아닌 음식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의지와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상황이나 자리, 시간이 본인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했던 시절과 같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이 싫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완벽하게 맞는 일을 찾아 당장 떠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생계를 위해 하는 모든 일이 결코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다만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본인의 성향과 너무나 맞지 않거나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내 인내심의 한계치를 넘어갔다면 그 상황이나 장소, 시간이 과연 내게 적절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리고 그 일이 정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신세한탄만 할 게 아니라 내게 맞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들이고 노력과 투자를 하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버려진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전히 생각에 잠긴 내게 누군가 다가와서 말했다.
"버리고 가긴 너무 아까운데 모아 줄 테니 집에 가지고 갈래요?"
나는 집에 가져가도 먹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 코트에 있을 때 가장 빛나며,
케이크는 배고픈 누군가에겐 여전히 달콤한 유혹이며,
당신은 열정과 시간을 들여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가 가장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