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맛집의 비결
제 N회 라라크루 <갑분글감 포토에세이 공모전>
“부장님. 또요? 거길 또 가자고요?”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작은 탄식이 함께 삐져나왔다. 그런 내 표정은 보이지도 않으시는지. 오늘도 부장님에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하는 강아지처럼 그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게 다 그놈의 콩국수 탓이다. 무슨 얘기냐고?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중국집 말이다.
부장님은 내 점심 동무다. 자칭 나 홀로 점심인(이라고 말하고 자발적 외톨이라 읽는다)인 내게 부장님은 가끔 밥을 함께 먹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평소에는 혼자 밥을 먹으며 책을 보거나 브런치 글을 읽는다. 워킹맘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런 나도 가끔은 점심시간에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주로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발생했을 때가 그렇다. 밥알이 튀도록 한껏 떠들다가 보면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니까.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 속상함을 상대에게 푼 만큼, 상대에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나 역시 두말없이 소중한 점심시간을 희생한다.
부장님이 요즘 좀 힘들어 보였다. 그 마음을 눈치챘는데 다가가는 게 인지상정. 이번 주만 3일 연속으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부장님의 사연을 듣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절묘한 타이밍에 같이 한숨을 쉬어 주고 고개만 끄덕거려도 효과는 충분하다. 어려운 점은 따로 있다. 바로 부장님의 음식 취향이다. 자칭 미식가인 부장님은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한동안은 오직 그 음식만 들입다 파는 타입이다. 듣자 하니 한때 닭백숙에 빠지셨을 때는 무려 3달 동안 그 집에 출근 도장 찍듯 가신 적도 있다고 한다.
부장님이 한 달 전부터 우리 병원길 건너 중국집에서 파는 ‘콩국수’가 맛있다고 말했을 때 이 사태를 예감했어야 했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거부할 수는 없었으리라. 난 결국엔 "다 좋아요."만 말하는 자동응답기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국집에서 생뚱맞게 콩국수가 웬 말이냐고?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 상앗빛 물감을 들이부은 듯한 걸쭉한 콩 국물에 얼음이 신선처럼 동동 떠다니는 서늘한 비주얼! 먹기 시작하면 그릇에 코를 박고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켤 정도로 고소하고 시원하다.
“이 집 콩국수는 진짜야! 대체 어떤 콩을 쓰는지. 요새 이런 콩국수는 어디 가서도 못 먹는다고.”라는 부장님의 지당하신 말씀에 곧바로 무한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딱 두 번까지만. 오늘은 바로 다른 메뉴로 전향했다. 부장님은 콩국수를 흡입하며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사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의 부당함에 열변을 토하셨다. 난 그저 귀를 열고 조용히 해물덮밥을 먹었다.
어느덧 우리의 그릇이 깨끗이 비워졌다.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중국집 사장님이 잠깐만 기다리라며 우리를 불러 세웠다.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가지고 나와 우리에게 각각 건네셨다.
“음식점 하는 게 힘들어서 한동안은 좀 쉬려고요. 다른 사람한테 넘겼어요. 이거 가져가세요. 콩국수 많이 좋아하시잖아요. 이게 그 콩국수 만드는 가루예요. 이 가루하고 물을 1:1의 비율로 섞어서 국물을 만드시면 돼요.”
비닐봉지를 열었다.
‘***식품 콩국수용 콩가루 1kg’
콩국수 맛집의 비법이…. 드디어 풀렸다. 꾸벅 감사 인사를 하고 부장님을 돌아보았다.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얼굴로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부장님이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차. 이러면 곤란하다. 곧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입을 다시 꾹 다물었다. 그럼 내 맘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부장님은 마치 급한 용무가 생긴 사람처럼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는 소면을 사야지. 가족들에게 콩국수를 선보여야 하니까. 차가운 얼음까지 아낌없이 넣은 후에는 다소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고 말해야겠다.
요새, 어디 가서도 이런 진짜 콩국수는 못 먹는다고…. ㅋ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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