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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Dec 03. 2024

우리는 자신을 너무 모릅니다.

아는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사진출처: 세계일보, 최훈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시간이나 장소, 상황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다르다. 본 모습 따로, 가식적인 모습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모두 내 자신이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과 모습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나는 이 개념을 S작가님에게 배웠다. 작가님은 꾸준한 글쓰기의 비결로, 자신이 가진 다양한 페르소나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라고 일러주셨다.



하지만 그 당시엔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나뿐일까? 우리는 자신을 너무 모른다. 직함을 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설명할 길이 하나뿐인 게 문제다. 직업은 분명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라는 복잡한 인격체를 직함 하나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을 수식하는 단어가 직함뿐인 사람은 그걸 잃었을 때 더 치명적이다. 좋든 싫든, 얼마나 헌신했든 상관없이, 60세가 되면 우리는 직장을 잃는다. 그 이후엔 날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왕년에는 ~'같은 말은 아무도 관심 없다.



S작가님은 내게 페르소나를 발견하라고 하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페르소나를 찾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알게 된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O병원 주임 연구원.

털털한 아내를 둔 예민한 남편.

천사같은 러시안 블루 고양이의 집사.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는 작가.

반려동물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가.

운동 가긴 싫지만, 운동을 끝내고 돌아올 땐 누구보다 행복한 자기 계발러.

출퇴근길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해치워 나가는, 꿈 많은 30대 남자.



이제는 나를 설명할 말이 너무나 많다. 모두 글을 쓰며 발견한 페르소나다. 없는 게 아니라 몰랐던 내 모습들이다. 그리고 평생 몰랐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는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이 말엔 나 자신도 포함된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앞으로 만나게 될 나는 또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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