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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Jun 06. 2024

#29. 유아교육이 가장 중요한 이유

교육 잡설(雜說)

#29. 유아교육이 가장 중요한 이유


    현대 교육의 원류는 아무래도 종교에서 찾는 게 여러 가지로 쉽고 빠른 길입니다. 먼저 어느 정도의 체계를 정립한 종교는 교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동시대에 전파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해당 시대의 모든 노력을 결집시킵니다.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신의 대리인이었고 권력자에게는 스승이었습니다. 깨달은 자의 지혜는 모든 종교의 핵심 교리였으며 인류는 이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문자, 음률, 그림, 예식 등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교육의 중요성과 교훈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종묘제례악

    종교, 정치, 경제, 군사 등의 독점의 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비밀을 공유했고 그들만의 방법을 구사했습니다. 간혹 지혜를 접하고 깨달은 소수의 사람은 배척되었고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인류의 단위가 점점 거대해져 가던 시기에 개인이란 존재는 무의미했습니다. 개인은 오히려 인류 집단의 단위가 가장 거대해지던 정점에 그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거시 세계에서 다시 미시의 세계로 전환되는 시기는 인류에게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국가에서 개인의 역사가 중요해지는 시점에 인간은 더 이상의 방법으로는 깨달음을 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그 시대의 폭발하는 지혜를 전하기 위해서 그들은 근대식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권의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에 어쩌면 가장 홀대시 하던 어린이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단순 노동 인력으로 여겨지던 아이들은 미래 국가 경쟁력으로 여겨졌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 아이들은 소모가 아닌 생산의 개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오히려 어른이 현재이고 소모의 주체이며 어린이는 미래이고 생산의 주체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트위스트

    앞서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인의 상태가 어릴 때의 경험과 환경에 기인한다면 당연히 어린이를 좀 더 좋은 환경에 놓이도록 해야 심신의 불완전성을 해소하고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한다면 보다 의미 있는 미래를 담보할 수도 있겠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논리였습니다. 물론 당시 지식으로 결과를 명확히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에 찬 많은 실험이 있었습니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의도는 다르지만 세뇌등 여러 이유로 유사한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히틀러 유겐트(자살 10일 전 12살 소년병 격려 모습)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고 싫어하는 전쟁을 통해서도 인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을 안 하고도 같은 결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용서받으며 발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쟁은 극단적인 신념과 의지의 충돌입니다. 전쟁 후에도 서로의 신념을 바탕으로 빠르게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소모된 인재 복구 노력을 경쟁합니다. 어느 나라는 성공했고 어떤 국가는 실패해서 전 세계 국가 간의 헤게모니가 변화되었습니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본능과 천성처럼 태어나면서 가지는 것이 있고 살면서 얻게 되는 능력이 있으며 이런 역량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유지되거나 변하기도 합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유아는 엄청난 속도로 지식을 습득하고 신체 능력이 발전합니다. 지적 능력과 신체 능력 이분법으로 살펴보면 동물은 태어나면서 신체 능력이 인간에 비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초기에도 신체능력은 홀로 생존이 가능할 때까지 빠르게 상승하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반면 인간의 신체능력은 동물에 비해 더디게 발전하며 모든 에너지를 뇌의 정상적 작동에 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인간의 아이들은 보편적으로 5살 이전에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상당한 비율의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은 아이들은 추론이 가능하고 간혹 뛰어난 기억력과 수리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재주를 넘거나 말을 타고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 묘기를 부리기도 합니다.

6살 꼬마 소림 승려

    여기에서 저는 특화된 능력 발달을 위한 반복적인 교육 보다 먼저 보편적 교육을 통한 아이들의 발달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에는 앞 장에서 언급한 인식과 의지를 가지고 반복과 숙달을 통해 전문가로서 성장합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머신러닝도 데이터, 즉 학습 데이터에 의존해서 반복작업을 통해 모델을 학습하고 발전합니다. 당연히 어떤 데이터로 학습하느냐에 따라 알고리즘의 성능이 달라집니다. 인간도 AI 대비 거의 유일한 능력인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어떤 학습과정을 거치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다른 말로 AI를 이기기 위해 코딩 말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10여 년 전 일본의 유아 교육법인 요코미네식이 일본에서 대유행을 하며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요코미네는 아이들의 보편적이며 탁월한 교육을 위해 기적을 부르는 4가지 현상을 도출했습니다. 요코미네는 아이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의욕이 없는 아이에게 의욕을 주기 위한 방안을 4개의 스위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BS에서 방영한 요코미네식 교육


   

아이들은 경쟁하고 싶어 합니다. 유코미네 유치원에서는 달리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경쟁심을 유발합니다. 달리기 선생님들의 격려는 아이들의 경쟁심을 자연스럽게 기르게 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나이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는 한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맨발로 달리기 시합을 하게 합니다. 맨발로 뛰게 하면 뇌를 자극하는 동시에 정확히 땅을 움켜쥐고 걷고 뛰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계산 능력이 뒤지자 주산을 도입하여 시간을 재는 게임 등을 통해 적극적 경쟁을 유도하며, 수와 친해지고 암산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등 자연스럽게 의욕을 북돋아 줍니다. 아이들은 남보다 잘하고 싶은 욕구가 어른보다 강하다는 생각에 따라 경쟁을 통한 적절한 자극을 주어 아이들이 성장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기계체조에 버금가는 체육시간에, 성장하는 아이들의 임계기(운동신경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신체능력)를 고려해서 한 손재주넘기를 교육합니다. 재주넘기에 실패하는 아이는 울면서도 계속 도전하고 선생님은 그런 아이를 칭찬하고 결의에 찬 아이는 성공합니다. 성공한 아이는 제일 먼저 선생님에게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벽에 부딪혔을 때 인정과 칭찬으로 극복하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기르고 앞으로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은 흉내 내고 싶어 합니다. 피아노 음에 따라 눈을 가리고 다른 신체부위를 두드립니다. 무서워하지 않도록 ‘변신’이라고 말하고 눈을 가리며 소리에만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건반으로 선생님이 소리를 내고 아이들은 따라 합니다. 이런 음감 교육을 통해 악보 없이도 음악을 연주하게 됩니다. 이것도 일종의 임계기를 고려한 학습으로, 음악도 3~5살 사이에 음감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행하는 교육입니다. 이이들은 최종적으로 합주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남다른 음악교육 방법으로, 유아기는 소리에 민감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합니다. 들리는 데로 연주하는 아이들을 보면 모차르트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은 조금 더 어려운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작문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약간 어려운 문장으로 구성된 주제를 정해주고 아이들은 일상과 관계된 이야기를 풀어내고 선생님은 지도만 해줍니다. 좋은 문장은 뽑아서 칠판에 적고 아이들은 선택된 행복에 더욱 열을 내서 글을 씁니다. 2세부터 글 카드를 쓰며 5세까지 평균 독서량이 2,600권에 달한다고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의욕이 없던 아이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니 아이들은 식사준비, 청소, 양치질도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합니다. 지금도 이 교육이 의미가 있는지, 이곳의 졸업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는 논문은 있지만 자세한 후속 보도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곳의 교육방식이 모두 옳고 따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교육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해내는 훈련된 선생님을 만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교육 행위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두뇌 활동은 매우 강력하고 때로는 보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몇몇의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영상을 통해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초능력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천에서 용 난 아이들이 누구의 자녀라서, 혹은 돌연변이라서 특이한 능력을 갖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 결정적 교육을 받은 경우 누구나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5세까지의 기억을 잘 못합니다. 이유는 뇌 발달, 언어 발달, 자아 인식 발달, 기억 압도, 기억 재구성, 트라우마 등 다양한 요인의 복합적 작용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뇌의 해마와 신경이 집중적으로 발달로  아직 기억 시스템이 완비되지 못한 6세 이하의 기억이 제대로 저장되지 못했다는 이유와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시기로 기억이 있어도 언어로 재구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듭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 이론은 상반되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2세 이후 아이들의 뇌에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대충 갖춰지는 임계기 이후에는 학습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가 변화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뇌에 대한 자극은 유아원에서 본 것처럼 지식적인 측면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유아기 신체능력도 평생 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 운동선수의 신체 능력은 크기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각적인 신체능력의 임계기는 6세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뇌와 달리 청소년기까지 발달하는 신체능력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대부분 근육의 양이나 크기와 관계되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청소년기에도 숙련과 더 큰 힘을 위해 반복되는 기술과 근육 운동을 병행해야 하며 20세 전후로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단순히 외국어 능력만 봐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통상 다른 문화권의 언어를 모국어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5세 이전에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뇌에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자극을 주는 방식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보다 몰입을 잘하지만 시간이 짧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쉽게 지치고 포기하며 관심 영역이 자주 바뀝니다. 이런 점에서 요코미네식 교육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아이들이 시나 명언을 외우고 어려운 단어를 척척 암기하며 복잡한 계산을 암산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감탄합니다. 긴 작문을 척척해내고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달리고 체조하는 모습에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가능하다는 사실에는 주저합니다. 교육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도박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정은 하지만 아이들의 좌절과 고통을 인내하기 어렵습니다. 내 아이가 모든 것을 척척 해내는 아이가 아니라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아이가 될까 두렵습니다. 우리 아이는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는 너무나 당연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쉽지만 이런 마음이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비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유아에서 초등과정으로 이어지는 교육 시스템을 다시 살펴야 합니다. 일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가도 최소한 요코미네식 이든 몬테소리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경쟁이 아닌 보편(혹은 독점)을, 칭찬과 인정이 아닌 질타와 무시를, 능동적이 아니라 주입식을, 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맞춤식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인사이트를 키워야 합니다. 인사이트를 키우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아이들에게는 무리한 요구입니다. 모차르트도 5세에 작곡을 하지만 성숙한 음악은 17세 이후가 되어서였습니다. 주산이든 암산이든 빨강펜이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 수에 대한 자신감과 감을 키워야 합니다. 아이일 때 세상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동물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과 육체적 능력만 제공합니다. 단순한 재주넘기와 뜀틀 운동이 아이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실패와 성공, 과정이 주는 행복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삶의 기반을 형성해야 합니다. 


    어리고 말랑말랑한 뇌에 이런 기억을 때려 박을수만 있다면, 이런 행위에서 문득 찾아오는 행복감은 미래에 영원한 도파민을 선물할 겁니다. 구태여 중독 예방에 그 큰 예산을 사용하지 않아도 뇌를 사용할 수 있는 그들의 미래는 행복할 겁니다. 생활 속의 작은 행위에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개인이 아닌 협동의 산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AI 시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유아교육이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작품에서 서양 기숙학교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교육현장을 보여줍니다. 이런 다양한 매체와 개인의 경험이 교육에 대한 편견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더욱이 교육 성과는 입증되기까지 장시간이 소모되고 다양한 환경적 요소로 독립된 결과를 도출하기도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육에 대한 신뢰도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어떤 교육기관, 선생님을 만나느냐와 어떤 제도에서 교육하느냐에 따라 만족도도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살아가는 동안 시류가 변하고 새로운 교육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며 학부모와 학생들을 더욱 곤란하게 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이런 고민은 대다수 선진국에서도 이미 경험했거나 지속되는 고민입니다. 이런저런 이론과 제도가 나오고 있지만 통일되고 확실한 결과가 예상되는 시원한 결론에 도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만 불확실한 시대에도 확실한 사실은 있습니다. 특히 이런 류의 교육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건 교사, 학부모, 학생 간의 강력한 유대입니다. 신뢰를 얻고 유대감을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어렵습니다. 공교육 특히 유아교육은 국가 차원의 지원과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수많은 종교시설 및 기관과 학교에 부설 유아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질의 유아선생님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교육 현장의 공개에서 시작되고 쌓일 수 있습니다. 유아 학습 관련 방송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공개와 확인을 통한 피드백 과정의 중요성입니다.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특정 집단의 아이들을 모아서 그들만의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보살핌이 아닌 경쟁이 주는 행복과 부모의 돌봄이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정신과 육체를 듬뿍 안겨주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나이에 걸맞은 교육과정은 어떻게 보면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적정한 조기교육에 대한 논란이 끝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창의성 교육, 착한 동화 등의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에서 논쟁도 필요하지만 이제 정말 다양하고 수준 있는 다양한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생님의 전문성 향상을 통해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본 많은 대한민국의 많은 교육 전문가와 학부모는 과도한 경쟁과 실험적인 교육방법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조기교육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맨발 달리기나 놀이교육 등 일부를 반영해서 자연과 놀이를 통한 생태유아교육 등이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개된 유아교육은 자연과의 동화가 목적이 아니라 동기(의욕) 유발과 자주성, 독립성의 향상이며 이를 기르기 위해 내적 힘, 학습 능력, 그리고 신체적 힘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경쟁과 성취감을 통한 자존감 향상과 사회성 증진입니다. 관념적인 개념을 교육하기에는 아이들은 보다 명확하고 직접적입니다.  유아교육기관에 돌봄만을 강조하면 아이들의 에너지는 내적으로 쌓이기만 하고 선생님은 관리되지 않는 관리를 위해 에너지를 상실하고 부모님은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정과 격려, 아이와 함께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내는 무조건적인 인내가 아니라 조바심에 대한 초연함입니다. 방치가 아니기 때문에 초연함도 결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인과 아이에게 단순한 수동적 인내, 인내를 위한 인내를 강요하면 안 됩니다. 성인(聖人, saint)들이 인내를 얻기 위해 수련한 것이 아니고 무조건 참기만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몰입하고 성찰하며 번뇌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인내는 행동하고 깨닫기 위해 힘을 키우는 과정이고 이것이 교육입니다.

싯다르타의 고행

    탤런트(Talent)는 일반적으로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을 의미합니다.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단어 "talanton"에서 유래했고 저울과 화폐의 단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것의 가치, 능력, 책임감 등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는 달란트(Talent)를 맡긴 세 명의 일꾼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이 일화는 종교적 상징과 함께 탤런트를 후천적으로 발달시켜야 한다는 명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은 저마다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특출 나고 독특한 달란트 외에도 공통적인 달란트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런 다양한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고 발달시킬 것인가가 주어진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일 수도 있습니다. 응답은 처음부터 올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노력 없는 응답은 없습니다.


     <기적의 유치원>의 저자 조혜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이의 실력을 비교하지도, 서두르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아름다운 나무도 싹을 틔우는 시기가 다르고 꽃을 피우는 시기도 다르다. 언제 아이의 꽃이 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피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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