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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May 06. 2024

#27. 다시 도제식 교육?

교육 잡설(雜說)

#27. 다시 도제식 교육?


    벤치마킹(benchmarking)은 도로 등 공사를 할 때 기준점이 되는 곳에 마킹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도로에 항상 벤치를 만들 자리를 미리 정하는 관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여하튼 지금의 벤치마킹은 대상을 설정하고 그 대상과 비교 분석을 통해 장점을 따라 하고 배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단어를 참 잘 만듭니다. 빅데이터 분야에는 예전에 데이터마이닝(datamining)이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광산에서 석탄을 캐듯이 데이터 서버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발굴한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자고로 역사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가가 단어를 만들고 시대의 언어를 공용어로 선점하는 예가 많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으며 결국은 영어로 수렴했습니다. 한반도는 근대에 대부분의 지식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유입되어 전문용어가 일본어와 영어를 번역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도 일본어로 번역된 후 다시 한글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필자가 학교 다닐 때는 일본식 한자 표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단어만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옆나라고 많은 역사를 공유했다고 해도 다른 문화의 사람이 표기만으로 속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교과서라는 표준화, 일반화된 매뉴얼이 있던 근대는 그나마 좋은 교육환경이었습니다. 과거의 일부에게만 전해지던 지식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체 교육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과서와 많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 도제식 교육은 전 근대적인 낡은 유물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체 교육을 해도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도제식 교육이 펼쳐지고 있는 예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교육 외의 모든 분야에서 도제식 교육은 오히려 강화되고 체계화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현생 인류의 DNA에는 도제식 교육 방식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공교육인 집체 교육과 도제식 교육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전 근대의 교육은 계급, 부, 성별 등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으로 접근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되는 근대 이후에 교육 평등이 주장된 것도 당연합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매우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현대 문명은 모두 근대교육이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은 대륙으로의 이민 초기 청교도인은 자신들의 종교적 사회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학교부터 건립합니다. 미국 힘의 원동력이자 상징이 된 대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바드 상징, veretas(진리)

    또한 도제식 교육은 현대 문명이 지향하는 표준화, 일반화, 보편화 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구습으로 평가 절하되고 활발한 연구가 제한되었습니다. 다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절실함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체 교육은 학교를 가면 누구나 유사한 수업을 받고 동일한 교과서로 공부합니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교육 목표(표면적인)만 달성하면 무리가 없습니다. 더욱이 거부한다고 해도 체벌과 부모님의 한탄 외에는 당장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일종의 규율 안에서 자유가 보장됩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직업인으로 별도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것은 지혜(intellence) 보다는 지식(information) 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제한 사항을 그 시대의 어쩔 수 없었던 문제(언어, 인쇄술 발달 정도)로 생각해 보면 그들의 성과는 놀랍습니다. 그들이 현대인과 다른 점은 절실함이었습니다. 중국 최고의 정사로 손꼽히는 사기(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86)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역사서 편찬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도 한 때는 문장가이자 정치관료였지만 한무제에게 미움을 사서 궁형(宮刑, 남성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고 살아나 불굴의 의지로 글을 완성합니다. 사기는 그의 피로 쓰인 역사서입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집권 세력과의 정치적 경쟁 속에서 협박과 회유를 이겨내고 그들의 신념을 이어나갑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이후 모든 분야의 학자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를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Know Thyself

    이탈리아 피사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어린 시절 수도원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당시 유행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학문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논리실험과 관찰 등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지지하거나 주장하며 당시의 권력자와 대립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합니다. 망원경처럼 다른 사람의 발명을 토대로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천문학을 위해 고배율의 망원경을 집접 설계해서 팔기도 하고 관측해서 지동설을 확인합니다. 최소한 그는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 보다 먼저 지도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 ~ 1543)를 동경한 것처럼 보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지동설(가운데 태양)

    피렌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더욱 극적입니다. 그는 혼외자로 공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14세에 피렌체 베로키오 공방에 들어가 20대 초까지 거의 10년을 교육받으며 화가로 명성을 쌓습니다. 이미 베로키오는 조각만 하고 그림을 다빈치에게 맡길 정도로 신뢰했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화법을 창안하고 정면 초상화를 그렸으며 종교와 인체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자연과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마도 그의 눈에는 당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던 것 같습니다. 

정면, 측면, 후면을 동시에 그리는 화법

    조선의 정약용은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분야도 다양하고 저술한 시기도 정조 사후 유배지에서 구상했습니다. 그의 엄청난 탐구 정신과 저술은 절실함이었습니다. 아들과의 편지에서 폐족을 이야기하며 가문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절실함만으로 모든 일이 가능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는 당시 청나라와 일본의 책들을 모으고 공부하고 읽고 요약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실정과 연구 결과를 비교하거나 첨삭해서 글로 남깁니다. 


    근대식 교육 이전에 인류의 보편적 교육방법은 도제식 방식이었고 세부 노하우는 기록으로 잘 남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국가 비밀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중국의 비단의 재료인 양잠기술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이 독점했습니다. 물론 인접국에는 어느 정도 기술이 전파되었지만 고급 섬유 제품은 여전히 중국이 독점했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16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기술을 따라잡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면직산업이 폭증하기 전까지 중국의 비단 기술은 당연히 국가 비밀이었습니다.


    중국은 화약처럼 국방과 관련된 비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조선과 관련된 것이 각궁입니다. 각궁의 각은 물소뿔을 의미합니다. 물소가 없는 나라의 주력 무기가 그 뿔을 이용한 활이라니 아이러니합니다. 중국은 전략물자인 물소 뿔의 수출을 제한합니다. 현대 미사일 사거리 제한처럼 통제합니다. 도자기는 청자든 백자든 중국을 통해서 기술이 유입됩니다. 중국에서 유행하면 주변국으로 수출되고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청화백자는 백자의 기술보다 표면에 푸른 무늬가 유럽인들을 매혹시킵니다. 그런데 그 푸른 안료는 코발트로 매우 비싸고 수입량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럽은 도자기를 자체 개발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고 연금술사에 의해서 복원되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갑니다. 여하튼 가르쳐 주지 않고 희소하니 비싸고 국산화하기 위해 정보전을 펼치고 치열하게 연구합니다. 지금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개성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영국과 일본은 대륙과 서쪽과 동쪽의 끝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이들은 대륙의 문명이 가장 늦게 도달했고 간절하고 어렵게 도입합니다. 그래서인지 다소 독립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이 두 국가는 대륙의 혼란기에 성장하고 대변혁기를 갖습니다. 새로운 학문에 열광하고 치열하게 파고드는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국가모두 바다를 생명처럼 여겼고 바다를 통해 나아가고 바다를 통제해서 정권을 유지합니다. 거대하고 빠른 배를 만들고 원양을 하기 위해 과학을 발전시키고 무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내전을 치른 나라치고 무기의 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한반도를 통해 제철기술이 유입되었지만 철이 좋지 않고 제련 방식이 발달하지 않아 불순물이 많았습니다. 이런 부족함을 접철 방식으로 극복했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순했지만 실행은 어려웠을 겁니다. 완전한 수작업으로 하던 당시에 칼이 얼마나 귀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여하튼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지고 늦게 전파되어서 그런지 상류사회는 매우 의식적이며 형식주의적입니다.

접쇠 방식

    도제식 교육방식의 또 다른 치명적 단점 중 하나는 중간에 단절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최근 UFC를 초창기와 비교하면 기술이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선수간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이 그렇게 다양한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오히려 단순한 필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결투하면 죽으니 오의(필살기)는 결투 시에만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의는 직전 제자에게만 전합니다. 결국 제자에게 전하기 전에 죽으면 맥이 끊어집니다. 


    비단 사무라이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평화시기가 오래되면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며 기술의 전파나 대응기술이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사사로운 복수를 금지하거나 결투를 금지하는 등의 법률이 시행되면 마찬가지로 나이 든 기술자가 많아져 기술의 전파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런데 사실 최근의 이런 확연한 차이는 TV 또는 저장매체의 발전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스포츠에서 동일하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여기에 점점 한계를 극복해 가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합니다.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결투를 담은 일본 영화 포스터(1976년)

    모두가 잘 이해하지만 전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의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장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먼저 알고 그 지점에서 출발하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 호기심(quriosity)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동경과 같은 스스로 하고 싶은 욕구가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 ~ 1973)는 "Great artists copy, Great arstists steal"이라고 하며 '훔친다'를 법적이 아닌 의지적이며 행동적으로 의미 부여를 했습니다.


    지식을 훔치기 위해서는 보편적 교육으로는 동기부여 수준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도제식 교육은 여러 가지 단점이 있고 모든 분야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도제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암묵지로 되어있는 것을 매뉴얼 등의 표면 지식으로 만드는 작업을 병행해야 합니다. 아마 요즘의 SNS, 블로그, 유튜브 등이 이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적극적인 마음과 지난한 반복과 숙달을 통해 체화하는 의지, 시도를 위한 용기가 버무려져야 어느 분야의 장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습니다. 그냥 내가 마음먹고 시도하면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길과 만나면 그 순간 개화합니다. 어떻게 보면 결여에 관한 개개인의 인식이 성공의 씨앗일 수 있습니다.  


    장영실은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는 많은 천문 과학 기술을 남겼고 장인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기준으로는 천민이었지만 특출 난 재주로 세종대왕에게 각별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세종은 그에게 명나라 유학을 통해 선진 천문기술을 배워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천대받는 그를 환대하고 기꺼이 가르쳐줄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당시 명나라의 천문과학은 국가 기밀이었고 보안시설이었습니다. 장영실은 관련서적을 모으는 한편 기계를 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과 교류합니다.

자격루

 그들은 장영실의 거듭되는 부탁과 의지를 높이사서 딱 한 번 밖에서 당시 명의 물시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장영실은 기계를 보고 온 후 나름 상상한 한 내부 작동 방식을 서둘러 기재한 후 조선으로 복귀합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중국의 <천문지>와 알 자자리의 <정교한 기계장치의 지식서>를 바탕으로 정교한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게 됩니다.

알 자자리의 코끼리 시계

    장영실의 과학은 몰입과 의지의 결과였습니다. 천문과학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세종의 뜻과 일체 된 본인의 사명을 통해 수없이 많은 반복 상상실험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스치듯 본 단 한 번의 이벤트로 기술을 구현해 냈습니다.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안경원을 하던 한스 리퍼세이(Hans Lippershey 1570~1619)가 1608년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깝게 보는 안경의 전매권을 등록하고 돈을 번다는 소리를 듣자마다 망원경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천체를 직접 관찰해서 이론을 실증하고 싶어 몸부림치던 중에 망원경의 아이디어를 들은 겁니다. 그는 개량을 거듭해서 당시 최고의 배율을 자랑하는 망원경을 개발하고 태양의 흑점 등을 관찰합니다. 그는 상상 속의 우주를 실제하고 관측 가능한 영역으로 옮겼습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훔친다는 표현에는 절실함이라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목적으로 습관처럼 반복하는 행위와는 구별됩니다. 반드시 저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수업을 듣는 학생과 그저 멍하니 수업 시간을 지키는 학생과는 시간의 상대적 질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도제식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개인차에 따라 성과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렇다고 성격이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좋고 그름을 판단해서 사전에 상황을 조성하는 방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운에 맡겨야 합니다. 영웅이 역사를 만들었는지 역사적 상황이 영웅의 탄생을 종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메디치가의 명문가, 황제, 평판에 대한 갈망이 예술에 대한 투자를 만들었고 수많은 장인들은 밥벌이가 해결되는 순간 그간 갈고닦은 엄청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예술적 승화를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도제식 교육은 몇 세대를 영유하지 못합니다. 교육 당사자와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보다 덜 고되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결여가 채워지면 변화는 오히려 체제에 역행하는 행위가 됩니다. 천재들이 살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근대국가는 도제식 교육의 여러 폐단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보고 근대식 교육으로 전환시킵니다. 남은 곳은 수공예를 하는 몇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여러분도 알겠지만 현대의 부가가치는 바로 수공예를 하는 곳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이런 분야도 프랜차이즈로 쉽게 변하지만 최근에 도제식 교육에 대한 관심은 이런 기계적 삶에 대한 반동인지도 모릅니다.


    스포츠계는 아직도 도제식 교육의 흔적과 낭만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이곳도 점차적으로 근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근대화 교육은 절대로 AI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도제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도제식 교육에는 인간의 실수, 실패, 노력, 환희 같은 감정이 담깁니다. 그 시대와 사람들의 역사가 담깁니다. 스토리가 없는 시대의 인간은 너무도 메마르고 황폐해집니다. 자연과 동화되기를 원할 때 사막보다는 숲을 선호합니다. 미래 시대는 도제식 교육의 장점을 어떻게 살리면서 모두에게 공정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가입니다.


    사실 스포츠뿐 아니라 어떤 공부도 단 한 번에 터득하고 행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자도 가죽끈이 떨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읽고 익히기를 강조합니다. 일고, 듣고, 외우고 되새김을 반복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완전히 체화하고 불현듯 실천할 때 비로소 유전자에 약간의 새김이 일어나고 후대에 전달할 정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공부 잘 하기는 어쩌면 너무도 단순해서 평범해 보일지 모릅니다. 뜻을 세우고 반복해서 익히고 실천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와 새로움과 주변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공부를 할 때도 중요합니다. 자 모두 함께 파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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