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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Apr 15. 2024

#25. 몰입과 메타인지

교육 잡설(雜說)

#25. 메타인지     


    “중국 허베이 지방의. ‘헝수이(衡水) 고등학교’는 중국 최고의 신흥 명문학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격정교육’ 덕분에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해 입시에서 수석 합격자를 싹쓸이하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격정교육’의 핵심은 바로 ‘뼛속까지 마음을 다지고, 키우고, 붙잡아 두는 일’에 집중하는 것. 공부하는 일에는 ‘마음’이 가장 우선이고 중요하다는 진실에 대한 강력한 확증이다.”     

헝수이 고등학교 일과표

    1996년 서울대 인문계열 수석 합격했고 2003년 사법시험을 합격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승수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서평 중 일부입니다. 이 서평에서는 우리가(남도 아니고) 공부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조건’도 ‘머리’도 ‘학습법’도 아닌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공부 성취와 상관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변수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면 생각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에 부합합니다. 과거 중고교 입시가 있던 시절과 학력고사 시기에는 이런 개천에서 용 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농어촌 등의 사회자 전형 없이도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하는 동네 천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시도 유명 학교에 특별반을 유지하며 지역의 지원을 아낌없이 하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인재가 그 지역으로 돌아오면 좋겠지만 강제하기 어려웠지만 어디에서든 지역을 잊지 않는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입니다. 다만 경험상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은 이상하게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여하튼 단순한 정신력은 아닙니다. 뜻을 세운 수많은 사람의 뜻이 지금도 우주 공간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먹기’는 언제나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단순한 ‘마음먹기’ 변수는 감성이 아닌 ‘지능지수’ 등과 더 관련이 높습니다.      


    마음을 먹고 뜻을 세운 어떤 위인도 꼴등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공부를 할지 어떻게 분야에서 성공할지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건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공부하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많은 것이 변했을 시기입니다.     


    헝수이 고등학교도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습니다. 주변의 성적이 좋은 학생을 싹 쓸 이 한다는 혐의였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부정이 있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 의심이기도 합니다. 과거 명문고등학교는 연합고사를 보고 대학처럼 지원하고 치열한 경쟁으로 선발된 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이미 완성된 사람들이었으며 내신 반영이 적었던 당시에는 한 학교에서 서울대를 100명 이상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교 평준화 이후에이들 사립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이 답답했을 겁니다. 이전의 학생들에 비하면 설명해야 할 것도 많고 진학지도도 복잡하고 학내 갈등도 많아졌을 테니까요.    

  

    헝수이 고등학교의 마음가짐과 격정교육이라는 특수한 교육법이 주요한 것일까요? ‘마음가짐’은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정신승리’와 비슷합니다. 어떻게 보면 유학적 사고가 근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먹고 정신을 집중하는 등의 관념적 사고는 실체가 모호합니다. 교육은 실체가 모호한 이상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실체적 이어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우리는 실학자들을 뒤늦게 재평가하며 유학의 관념적 허위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100년간 비난받던 그런 모습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고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했고 성적관리를 위해 예체능을 비롯한 모든 분야를 경험했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도 부모님이 관리하고 군대와 회사까지 부모님과 함께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은 교과서만으로 공부했고 독립적으로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공부와 관련된 가장 큰 변수는 집중도입니다. 종교의 시대 이래로 인간은 의식을 집중하면서 난관을 극복해 왔습니다. 인간은 자연 세계에서 차상위 포식자인 독수리나 치타가 고속의 기동 속에서 먹잇감을 잃지 않고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집중력에 찬탄을 보내고 닮고 싶어 했습니다.     

 

    실제로 독수리의 시력이 4.0~5.0으로 좋으며 원추 세포가 풍부한 망막을 가지고 있어서 황반까지의 길이가 길고 깊어, 사람보다 볼 수 있는 시야가 넓고 먼 곳에서 정확하게 물체를 감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수리는 이런 시력을 가지고 오로지 목표(target)에 집중합니다. 이런 극도의 집중 혹은 집중상태 등을 몰입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백만 년이 지나도 자연 진화로 도달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당연히 날 수도 없습니다.     

독수리의 시야

    심리학에서 몰입이란, 자의식이 사라질 만큼 어느 것에 심취한 것을 의미합니다.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Mihaly Csikszentmihalyi, 1934~2021)는 몰입(flow)의 전문가입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머릿속의 생각과 목표, 행동 등 모든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몰입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게 해 주며 무아지경의 경지에 빠진 채로 자신의 정신적인 역량을 대상에 100% 쏟아부을 수 있도록 합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몰입하면 몇 시간이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는 시간 개념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자신이 몰입하는 대상이 더 자세하고 뚜렷하게 보이며 몰입 대상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가지고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실로시빈(psilocybin)’을 매개로 유사한 상황을 겪기도 합니다. 환각버섯(psilocybe mexicana)의 추출물인 실로시빈은 진균독이자, 환각제입니다. 이 물질이 든 버섯을 섭취하면 환각, 정신착란, 지각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이 환각버섯을 섭취하여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버섯이 환각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실로시빈(Psilocybin)이 정신장애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향정신성 물질이 기존 약물에 비해 효과적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고대의 신녀 등은 다양한 약물(soma) 등을 이용해서 몰입 상태로 신탁을 시행했습니다. 집단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우거나 일정한 음률을 노래하고 경전을 낭송하였습니다. 몰입을 위해서 훈련과 향, 약물, 소리 등의 다양한 보조수단이 동원되었습니다. 더 빨리 더 자주 몰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로시빈이 함유된 버섯인 Liverty cap

    사람에 따라 적게는 인생에서 몇 번밖에는 경험하지 못하지만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를 거친다면 그 보다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몰입을 알고 있는 일부 교수들은 몰입할 일이 생기면 거의 일주일 전부터 정신적인 준비를 시작해서 이후 일주일 이상은 두문불출하면서 내내 매달린다고 합니다. 다만 몰입은 개인의 역량을 고려하고 대상의 난이도가 낮아야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몰입 현상은 학습과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단시간에 혹은 빠르게 흡수할 수 있지만 반대로 관심이 없거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몰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몰입의 대상에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성보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학자는 감정이야말로 뇌가 기억하는 전부라고 단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몰입하는 상황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짐승들의 사냥처럼 무사들은 전투에 몰입하는 순간 승리만을 갈구하게 됩니다. 몰입하는 순간 적의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몰입의 순간은 뇌가 한계를 극복하며 아드레날린이 나오며 뇌의 과부하를 해결하고 RPM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야구 선수 중 타자도 어느 순간 공이 느리게 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며 약초 꾼이 땅만 보며 다니다 정신 차려 보면 혼자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경우, 전투에서 총과 칼을 맞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뒤늦게 쇼크사하는 경우, 복합적인 수학 문제를 풀 때 몇 시간이고 한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도 유사한 현상입니다.  

    

    한편 몰입으로만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기본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인지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구가 한창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인간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으로써 인간 자신의 인지 활동에 관한 지식과 조절 능력이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바로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한편 공자도 이런 날을 예언했습니다. <논어>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메타인지를 논했습니다. 자신을 안다는 의미에 관한 사색의 중요성을 주장합니다.    

  

    메타인지를 구분해 보면 서술지식, 절차지식, 전략지식 등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자신이 학습하는 분야에 대해서 지식과 능력을 서술할 수 있는가, 어떤 일이 발생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이해한 정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지식 습득을 위해 취할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가 등입니다.      


    그동안 메타인지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부분은 어떤 것을 암기할 때 좀 더 암기하기 쉽도록 다른 요소를 접목시켜서 암기력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노래로 만들어서 암기하거나 스토리를 만들어서 연상 작용할 수 있도록 외우는 방법은 일타 강사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연상법은 메타인지의 부분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메타인지는 교육 분야에서 오랜 시간 논의 되었지만 연상법 말고 크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실체가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메타인지는 기계가 인간을 넘을 수 없는 영역 중 하나이며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직접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AI의 발전속도는 측정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비영리 단체 FLI(Future of Life Institute)는 공개서한을 발표해서 AI 연구를 6개월 지연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물론 선언적이지만 GPT4.0, 4.5 이후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반영된 일들입니다. 인공지능에 관한 규제 목소리가 관련 회의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며 디스토피아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칩니다.      


    그런데 다행히 뇌과학자들은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영역이 메타인지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면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해답을 얻고 그 해답에 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사고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메타인지는 단순 반복 암기방식이 아닌 스스로 학습한 내용을 복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면서 효과를 내는 학습 과정입니다. 단순한 반복 학습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장단점을 고려한 학습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뇌는 이 과정을 거치며 보다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직관력을 얻고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지름길을 찾아갑니다. 마치 바둑기사가 대국 후에 자신의 패뿐 아니라 상대의 수도 함께 복기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실패와 성공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아이큐(IQ)는 정해진 수준까지 성장하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아이큐 검사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재검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메타인지는 후천적 환경요인도 매우 강해서 훈련을 통해서 크게 향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학습에선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후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더 나은 학습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가 메타인지 능력입니다. 또한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업가나 직장인의 성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인 메타인지는 정도가 낮으면 쉽게 좌절하고 스스로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못해 실수를 반복하게 되지만, 메타인지를 이해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인정하며 타인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힘들고 두렵습니다.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가능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수행하면서 반복해서 해결해 나가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과학적 합리성이 이렇게 하루의 삶에 구체성을 띄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턱대고 읽는 만화책도 물론 재미있고 삶의 활력도 되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만 스포츠 만화를 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소개글과 영상을 본 후에 선택해서 읽고 잘 모르는 부분은 GPT를 통해 확인하고 별도의 기록을 하며 독후감까지 작성한다면 만화책이라는 콘텐츠에서도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그의 저서『순수이성비판』등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주체(主體, subjekt)인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칸트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성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감각기관(경험)은 세상의 일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고, 이성(선험적 이성)은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지식 확장에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성을 통해 해석된 세상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그는 감각기관(경험주의)과 이성(합리주의)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합니다. 즉,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선천적, a priori) 종합판단’을 이야기합니다. 칸트는 이러한 인식론적 관점을 "주관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주관주의는 인간의 인식이 세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주관에 의해 형성된다는 입장입니다. 인간은 대상을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 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입니다.      


    칸트의 주관주의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paradigm shift)을 시도했습니다. 칸트는 주체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서 주관의 중요성을 부각했습니다. 칸트의 주관주의는 뇌과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뇌는 인간의 인식과 사고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뇌의 구조와 기능은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뇌의 시각처리 영역이 손상된 사람은 시각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뇌의 언어 처리 영역이 손상된 사람은 언어를 이해하거나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칸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뇌의 구조와 기능은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뇌(감각)를 통해 해석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뇌과학에서 뇌의 역할 중 하나로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신호를 인식하고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인공지능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결국 뇌는 감각기관의 통합기능이 주 역할이고 이성적 판단은 다른 영역이라면 뇌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떤 의미 일지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국 어쩌면 단순한 지능과 뇌의 일부 기능이며 AI보다 뒤떨어질지 모르는 뇌의 단편 기능에만 이제는 더 이상 기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희망, 용기, 인내, 사랑, 기쁨, 슬픔, 행복 등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 등이 결합된 보다 복잡한 메타인지가 필요합니다.      


    이런 메타인지를 통해 창의성이 발휘되며 이들의 특성은 근대교육에 적응된 인류에게는 평범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때로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기존의 교육제도에서는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이론이 놀라운 것이지만 이것이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기존의 과학 패러다임과 무척 달라서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도서관에 있는 위인전집 중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 보면 거의 90% 이상 확률로 청소년기가 불우하거나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결여되었고 자족하거나 멈추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들러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메타인지가 높아지는 후천적 진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완전한 몰입을 이루어 냅니다. 몰입은 결국 평범을 탁월로 변화시킵니다. 신, 의식, 약에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뇌의 힘으로 몰입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시간도 정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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