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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Apr 01. 2024

#23. 학교가 트라우마면 거부하자

교육 잡설(雜說)

#23. 학교가 트라우마면 거부하자    

 

     트라우마(trauma)는 그리스어로 "상처"를 의미하는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원래는 의학에서 신체적 상처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19세기부터는 정신적 상처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정신적 상처(psychological trauma)와 육체적 상처(physical trauma)로 구분하기도 하며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는 외상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정신적 상처입니다. 원인이 되는 외상적인 사건으로는 신체적 폭력 등의 학대, 자연재해, 전쟁 등이 있으며 특히 자연재해나 전쟁과 비교할 때 항거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폭력(아동학대,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등)에도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반복적인 악몽이나 플래시백 현상과 불안, 공포, 분노를 느끼고 표출하게 됩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트라우마가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를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상처로 정의했습니다.     

 

프로이트

    그는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 정신이 불안을 느끼지만, 이 불안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을 억압하여 무의식에 저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억압된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작용하여, 다양한 정신적 장애를 유발하고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발현한다고 프로이트는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억압된 기억을 회상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정신분석이라는 치료법을 개발했습니다. 정신분석은 환자와 치료자가 자유 연상, 꿈의 분석, 저항의 해석 등을 통해 환자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치료법입니다.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는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로이트의 연구는 트라우마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를 너무나도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가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연구에서는 트라우마가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법인 정신분석은 너무나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정신분석이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만들어 신화와 역사를 재해석한 이도 그였습니다. 한편 그의 이론은 범죄를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범죄심리학적 접근법의 근거가 됩니다.      


    물론 범죄는 개인의 심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의 원인을 지나치게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범죄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범죄심리학적 접근법은 범죄자의 심리적 문제를 치료하여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죄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심리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범죄자의 심리적 문제를 치료한다고 해서 모든 범죄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범죄심리학적 접근법은 범죄를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접근법이지만, 그 한계점들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프로이트의 제자이며 친구이자 동료 연구자였던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트라우마에 대한 프로이트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융은 프로이트가 트라우마를 너무나도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주장했으며 트라우마는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요인일 뿐이고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융도 트라우마에 대해서 프로이트와 유사한 주장을 합니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정신적 균형을 깨뜨리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자아를 위협하고,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은 프로이트의 완강하고 견고한 성에 작은 정원을 만드는 정도의 주장이었습니다. 


    융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를 너무 부정적인 경험으로만 보지 말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약간은 아들러의 생각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융의 트라우마에 대한 다른 해석은 치료의 영역에 하나의 벽돌을 쌓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억압된 무의식을 탐구하고 의식화하여 내적 힘을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체화'(individuation, 또는 자기실현)라고 하는 자신의 신화를 추구하는 과정을 구상했습니다. 융의 트라우마에 관한 주장은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않은 치료법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집단 무의식)의 영역으로 확장시켰으며 트라우마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콤플렉스를 처음 주장하는 등 심리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편 그는 인도 요가, 장자 등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아 무의식과 호접몽(胡蝶夢)을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내향성(Introversion)과 외향성(Extraversion)의 개념을 처음 주장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트라우마에 대한 프로이트와는 많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특히 성)가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단지 한 가지 요소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들러

    아들러는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경험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러는 트라우마가 현재의 삶에 부정적이라도, 그 트라우마에 부여하는 의미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트라우마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해서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그는 프로이트와 융과 비교할 만큼의 대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이며 열등감과 보상 이론으로 교육 심리학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성격 형성에 유전, 환경적 요인의 영향은 인정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주관적 선택에 따라 창조된다고 확신했고 열등감은 모든 정신병리와 문제행동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인간은 어떤 부분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따라서 열등감은 개인을 더 높은 수준으로 자기 발전하도록 동기유발하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갖도록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실패하면 병적 열등감에 빠져들 수 있고 열등감의 원천에는 기관열등감(organ inferiority , 器官劣等感), 과잉보호, 양육태만이 있습니다. 물론 그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신봉자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트라우마와 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만 개인심리학의 중심 개념은 열등감이고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교육심리학 관점에서 학생의 부적응 행동 이면에 깔린 잘못된 목적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올바른 지도 전략을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일본과 대한민국에서 유행한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 심리학의 일본식 해석판입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현상의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교육과정에서 조절 가능하다고 본 점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들러가 동양의 아이들 양육 문화를 특별히 상정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양에 비해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고 스스로 낮추는 양육 방식이 아들러 심리학이 조명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들러 심리학은 양육 단계부터 경험적으로 축적되는 심리 변화 양상과 개인의 심리에서 사회 문화 심리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는 그야말로 현대적 용어입니다. 사실 전쟁과 집단 학살, 인종 청소, 정치 구조, 사치 등의 거의 모든 사회 문화적 현상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살펴보면 모두 트라우마가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과거 역사적 인물들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행동의 원인을 찾는 작업과 성격 유형에 관한 추정을 하곤 합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합니다. 결국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공포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겠고 이런 연구가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모르고 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안심은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연구의 목적이 안심하기 위한 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결과론적 해석 말고 최근에는 개인과 사회(민족)의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치유해서 비운의 결과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많은 연구자가 히틀러와 그의 나치 정권에서 자행한 홀로코스트를 그토록 연구하는 이유이며 천황과 일본 제국주의가 왜 그토록 이중적이면서 잔인한 식민지정책을 폈는지 분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범죄인에 관한 심리분석을 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결과론적 분석에서 더 나아가 이런 범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혹은 잠재적 범죄를 관리할 수 있도록 트라우마를 치유하거나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쉽게 결론적으로 말하면 트라우마 극복 방법은 처음부터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신기루(murage)를 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꿈을 해석하고 최면술을 쓰며 뇌를 해부하고 약을 투입하면 트라우마의 원인을 발견하고 환자도 트라우마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트라우마는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인정하고 화해하며 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래 전뇌화 기술이 진화하고 핀포인트로 뇌를 조절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인공관절 바꾸듯이 기억도 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직 뇌를 수술하거나 약을 먹는 것으로는 외과수술과 달리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달을 가는 첨단 과학시대에도 무속인을 찾고 점을 보는 유사과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근대국가 이래로 대규모 전쟁과 재난 등으로 사회적, 개인적 트라우마가 연구되었습니다. 대도시의 발달은 사람들이 과밀하게 되었고 인구의 밀집은 결국 여러 문제를 낳게 됩니다. 특히 각국에서 시행되는 근대교육과 군대의 발달은 한 편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과도한 질서를 요구합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한 곳에서 모여 교육하던 학교에서는 순응과 부적응하는 학생들이 공존했습니다. 빠른 성장기에 있던 우리나라는 변화하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정말 학교에서 벌어지는 많은 불합리한 일들을 정말 몰랐을까요? 모를 수도 있고 모른척할 수도 있습니다. 음모론에 의하면 정보당국은 <1884>에 나오는 빅브라더처럼 세상 모든 일을 알고 있었고 뒤에서 그림자처럼 그들의 조직을 이용해 세상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빅브라더도 아니고 전위조직도 없기에 학교와 주변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해킹하기 전까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신 내린 무당처럼 학교에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든 알고 있을 거라 여기고 문제도 해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건이든 결과부터 역추적하면 어느 정도 원인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형사사건에서도 입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범행 동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의 뇌는 이유를 100가지도 더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상상력에는 윤리 의식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력한 트라우마는 때로는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하며 아예 그 사람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와 반대되는 이유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사건의 원인만을 추적해야 합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있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 원인은 공부하지 않거나 잘못된 공부습관입니다. 그러나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다거나 친구와 놀고 싶거나 도박에 빠져서, 또는 이성과의 사랑 등, 이유는 수천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원인은 공부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에 지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성과의 사랑을 이유가 아닌 원인으로 착각해서 헤어지게 하면 공부를 더 안 하고 사랑도 깨지고 슬퍼서 술도 먹고 몸도 안 좋아지고 도박에도 빠지다 결국 음주운전으로 감옥에 갑니다. 그렇다면 이유를 무시하고 인과 관계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요즈음은 상담사 전성시대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심리 상담사에 대한 법적 근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 인권과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담사의 역할은 말 그대로 상담이지 의료진이 아니며 모든 일에 정답을 제시하는 만능은 아닙니다. 상담만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는 있어도 해결하거나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본래 트라우마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카타르시스를 경험해서 트라우마가 해소된듯해도 이미 각인 강화된 기억, 트라우마는 변하지 않고 무의식에 억압될 뿐입니다. 인류는 상담사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점성술사, 역술인 등의 무속인, 종교인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무속인들을 찾는 이들은 시대나 국가를 불문하고 최고 권력 상류층입니다.      


    상담의 대가는 내용의 중대성과 위험성과 비례했고 자자손손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미래도 없는 평민들은 사주팔자가 불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내세 신앙의 종교가 필요했고 그들에게서 위안과 안식을 제공받고 대가도 공양으로 충분했습니다. 기독교의 십일조는 대가를 표준화한 대표적 종교 발명품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노벨상감이고 이그 노벨상의 대표적 사례는 면벌부입니다. 여하튼 호모 사피엔스는 농경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편을 나누고 우두머리를 세웠습니다. 우두머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결정의 대가는 욕망 충족 아니면 죽음이었습니다. 의사결정의 두려움은 지금도 연구되고 있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DNA에는 두려움, 공포를 느끼는 기재와 함께 회피 기재가 동시에 설계되어 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의 두려움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의사결정으로 초래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합니다. 의사결정은 권력자만 할 수 있는 일이면서 모든 이들에게 파급되는 엄청난 중압감이 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중압감은 실패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겠지만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만큼 도파민을 자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의사결정을 남의 손에 맡길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역사적 인물 중에 남의 손에 의사결정을 맞기는 자들이 간혹 등장하는데 빌런보다도 평가가 좋지 않은 이유가, 어떤 이유로든 선택하는 이보다 어물거리는 인간 때문에 문제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결과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일이 동시에 찾아오고 개인의 영역에서 국가의 영역으로 확장되면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회피 기재가 발동할 수밖에 없고 고대(그리고 현재도) 권력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신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입니다.      


    애초에 인간이 구체적인 신의 개념을 만들었다면 신에게 묻는 행위도 일종의 퍼포먼스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 개인도 큰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 이미 수립한 자신의 계획과는 별도로 신의 뜻을 물어 결심을 더욱 강화하거나 계획을 다소 수정하는 등 조심해서 추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해도 신과 소통한다는 사람의 조언이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들의 조언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과학적 근거가 없기도 하며 소피스트처럼 때때로 다르기도 하지만 자기 확신이 필요한 내담자는 본인이 듣고 싶은 말만 귀에 들어옵니다.      


    일종의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 작동합니다. 결국 자신의 의사결정과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제삼자의 객관적 평가를 듣고 싶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인은 최소한 현재까지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상담자였습니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상담의 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내담자에 대한 비밀 유지는 현재 상담의 원류를 제공합니다. 이런 비밀 유지 맹약은 내담자들이 종교인에게 트라우마를 포함한 각종 은밀한 부분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기도나 염원하는 제목과 세부 내용을 사전에 제공하거나 격정적인 기도를 통해 자신의 정보를 전합니다.      

고해성사

    종교행사는 일종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상담 프로세스이기도 합니다. 의복을 정제하고 동일한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전을 함께 읽고 음악으로 감정을 고조하고 설교를 통해 감화받고 동조하며 격정적 기도를 통해 신과 소통하고 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평안을 얻고 웃으며 헤어집니다. 일종의 유대교 성전에서 지내던 제사를 간략하고 쉽게 편곡한 것입니다. 종교행사에서는 급격한 정화 작용이 일어나며 뭔가 해결된 듯한 시원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해소된다면 매주 교회를 가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 만들어진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지 않으며 무의식의 영역으로 침잠합니다. 아동 심리학자가 아이들의 이상 행동을 상담으로 해결해도 트라우마는 더 깊어지거나 다른 트라우마로 변질되게 됩니다. 그래서 상담사가 하는 역할은 개인이나 사회가 트라우마를 정확히 이해하고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않도록, 내담자가 계속해서 직면하도록 이끌어 조금씩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정신분석학자가 동일하게 지적하는 것은 억압, 왜곡, 상처 입은 정신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홍수가 날 때 댐의 물을 조금씩 사전에 빼서 담수량을 조절하지 않아 한 번에 터지면 어떤 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는 어느 날 제자의 ‘세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목숨과 몸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같은 질문에 독화살을 맞은 사냥꾼의 비유를 들며 어디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날렸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사냥꾼을 치유하는 게 먼저라고 하며 실존에 대한 해결이 우선됨을 이야기합니다.      


    독화살을 맞아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이유가 문제가 아니라 사냥꾼이 죽어가고 있는 결과에서 필요한 것은 화살을 맞았다는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유는 언제든지 밝힐 수도 있고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공자에게 귀신 섬기는 일과 죽음에 관해 묻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사람을 섬기는 일도 잘하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 섬기는 일을 잘하겠느냐?, 삶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며 일축합니다.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공자는 잘 알지 못하고 규명할 수 없는 일에 평생을 매달리고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를 준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약성경에는 이와 관련된 예수의 설교가 너무 많아 생략하겠습니다. 성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신화에 얽혀있는 인간의 숱한 욕망이 신들마저 파멸로 몰아가고 이런 신화에 빠진 민중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그리고 영혼에 각인된 공포와 죄의식이 현실을 부정하고 피난처만을 찾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너뜨리는지 말입니다.     


    프로이트와 융은 트라우마, 꿈, 성에 관한 생각이 달라 결별했습니다. 또한 아들러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며 다른 길을 갑니다.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그들은 현대 정신분석의 고전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많은 연구가 진행된 지금 살펴보면 이들 세 명의 주장이 또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 원인과 결과의 차이만 있을 뿐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관점과 외과적 수술이나 약물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이 현재 정신의학, 뇌과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은 여성에 대해 깊은 편견이 있었고 사회주의자였던 아들러조차도 여성의 남성 지향적 행동에 대해 비판합니다.      


    당시 시대상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프로이트는 여성 혐오적인 비하 발언과 남근에 관한 주장의 반동으로 페미니스트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여아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버전인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를 주장한 융은 프로이트에게도 비난받았습니다.     


    비판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신과 육체의 성숙하는 시기인 아이의 발달 과정 연구에 대한 열정과 결과로 그들이 남긴 유아 발달 과정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깊은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아들러는 죽기 전까지 아동 교육 심리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이후 1912년에 사회주의적이고 교육적인 이념을 강조하는 개인심리학회(Society for Individual psychology)로 창설하였으며 1차 대전 참전 후 오스트리아에서 학생과 부모가 상담받을 수 있는 아동상담소를 설립했습니다.      


    그곳에서 부모교육, 부모상담 프로그램, 교사교육, 집단상담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습니다. 아들러의 아동상담소는 혁명적인 시도였으며 전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갔고 아들러 본인도 순회강연을 다녔습니다. 그는 다른 전문가들이 상담 상호과정을 직접 관찰하여 배울 수 있도록 많은 청중 앞에서 집단치료와 가족치료를 하는 모의실험 상황(demonstration)을 시행했습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그의 죽음 이후 쇠퇴하였다가 2차 대전 이후에 그의 동료와 제자들을 통해 재조명 받았습니다. 아들러는 다양한 양식의 정신병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적 관심과 민주적 가족구조에서의 자녀 양육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아들러는 출생 순서에 따른 각 인물이 지니는 일반적인 특성에 대해서도 논하면서 맏이와 둘째, 막내나 외동 등의 특성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권력에의 의지도 아들러는 창조적 에너지를 위한 긍정적 활용 측면에서 니체와 달리합니다. 그의 사상은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이 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자녀양육, 결혼 및 가족치료, 학교상담, 인간관계 개선, 부모교육 및 부모상담 등 수많은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는 1987년에 발표했습니다. 시골 초등학교 5학년 한 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밝힌 것처럼 흔한 성장소설이며 학원 소설이고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학교폭력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과 집단 괴롭힘에 대처하는 완전한 해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고 더 무서운 건 그동안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난해해졌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합니다.      

우리들이 일그러진 영웅 영화

    학교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일진이면서 공부도 잘하는(대리시험) 석대와 그 패거리가 서울에서 전학해서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병태를 회유->왕따->순종->셔틀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석대의 악한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석대는 단순히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선생님과 동료 등을 이용한 다차원적인 폭력을 구사합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이런 권력에 순응하고 동조하는 친구와 선생님들이 그려집니다. 특히, 석대의 문제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자세도 복잡하면서도 미묘합니다. 그들은 지금껏 추앙하던 석대의 비리가 적발되자 교육자로서 석대를 대하기보다는 이 사회에서 문제아만 덜어내면 본래의 평화로운 목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념에 집착하는 교육 현장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교육 현장은 늘 시간이 부족하고 선생님은 행정 관료화되었고 학생들은 언제나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인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선생님입니다. 일반 공교육에서의 성과를 성적으로만 이해한다면 학교를 지탱하는 각 주체 간의 괴리감은 점점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 소설 마지막은 여러 버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결말이든 병태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래의 모습은 과거 초등학교 5학년에 머물러 있으며 그것은 깊은 트라우마로 심연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병태의 삶 속에서 항상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처음부터 만들지 말거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열쇠(해결의 실마리)를 같이 봉인해야 합니다.      


    약간 식상하지만 폭력이 행해지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위안, 애정 어린 관심 등의 어떤 행위가 뇌에 같이 각인될 때, 설령 그 트라우마가 나중에 난폭한 모습으로 발현하거나 조짐이 있을 때에도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이렇게 이 사회에서 내가 힘들 때,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고 도와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관계적 신뢰를 만드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식상하고 한편으로는 더 끔찍한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와 학생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이 영화는 학원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한 전통 있고 보수적인 남학생 학교에 이 학교 출신인 새로운 국어 선생님 키팅이 부임합니다. 그는 자신을 시 제목인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부르게 하며 파격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명대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너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의 정신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키팅선생님이 학창 시절 활동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라는 고전 문학 클럽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고, 자기들도 학교 근처 동굴에서 선생님처럼 같은 클럽 활동을 할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이 클럽 활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당연히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엇나간 행동들을 엄하게 다스립니다. 대부분 영미권 사립학교가 그렇듯이 명예-절제, 충성-겸손 등을 삶의 가치로 여기며 특히 이 미국 사립학교는 이민자였던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절제와 인내 근면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교육하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한 학생이 아버지의 바람을 무시하고 허락 없이 시작한 연극 활동이 들통나고 아버지의 꾸지람과 강요를 견디지 못하고 총으로 자살하게 됩니다. 당연히 희생양이 필요했고 키팅이 학교를 떠납니다. 학생들은 자기들을 위해 진정한 교육을 선사했던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에 하나, 둘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어떤 교육이 진정한 교육일까요? 이 학교에는 많은 선생님이 있었으며 명문 사립학교답게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유명 인사 선배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틀렸다고 영화는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10대는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시기입니다.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기인 10대를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포기하라는 교육방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근대국가는 국민에게 똑같은 교육을 해서 기계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군인의 교육훈련과 유사한 교육이 학교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이런 스파르타식 교육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 후 패망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위정자나 권력자들은 국민의 다양성이 두렵고 자유도가 높을수록 불안해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독재 국가에서 우민화 정책을 적용한 이유도 권력 기반을 다지고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파르타와 플라톤도 이점을 고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이 엄격하고 규율화된 교육이 때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런 집단 교육의 학교에서 키팅 선생님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만나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만남이 단순히 기분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다면 다행이지만 섣부른 배움으로 현실에서 벽을 마주하게 되면 결국 무의식에 감추고 다른 기성세대보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억누르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학생들과 선생님을 제외하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학교 문을 개방하고 벽을 낮춘다고 해도 또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군에서도 장교들은 병사간에 작정하고 벌어지는 내밀한 일들을 신고나 사고가 있기 전까지 알기 어렵습니다.      


    폭력은 잡으려 할수록 물고기처럼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며 점점 은밀해지고 잔혹해집니다. 공권력 같은 훨씬 더 큰 폭력으로 본보기를 보여도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명예가 훼손되거나 폭력에 대해 사적 복수를 하거나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결투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명예를 가장한 사적 복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장엄한 결투는 본래 전쟁에서 대장전, 일기토에서 유래하니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아닌 평시에는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방법이 없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결투를 신청합니다.      


    신이 결투의 결과로 정당성을 입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마저 있었습니다. 결투가 곧 재판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현대로 접어들며 각국이 법으로 금지하고 기독교 국가들은 종교적으로 제재를 가하면서 19세기 중후반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민주주의가 법의 시대임을 보여주는 여러 잣대 중 하나입니다.      


    결투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지만, 평시 결투는 서양이 압도적으로 많이 시행합니다. 심지어 대리 결투자도 있었으며 결투를 하는 방식과 무기 선택 등과 관련한 매뉴얼(매너)이 존재하는 등 현대 스포츠가 결투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서양의 결투 문화에서도 미국의 결투는 정말 진지합니다. 동부 이민, 원주민과의 전투, 독립전쟁, 서남부 개척시대 등의 피의 역사와 콜트라는 권총의 개발로 가장 오랫동안 결투가 남아있었던 국가였습니다.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살던 시대에는 변호사, 언론인 등이 글과 토론으로 모욕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링컨도 쉴즈라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결투하게 되었고 다행히 당일 취소되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링컨은 일생의 결심을 하는데, 절대로 타인을 조롱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온통 결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가족과 재산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이민자 특유의 강한 생활력이기도 하면서 국가 권력이 국민을 지켜주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만연했던 결투는 총이 정밀해지고 결투 결과에 대한 두려움, 의료기술의 발달 등의 이유로 결투를 회피하거나 아예 결투까지 가지 않도록, 링컨처럼 언행을 조심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너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됩니다. 서양의 매너는 타인을 배려하며 타인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인사, 악수, 식탁과 식기배치, 이야기 주제 등 모든 손님 접대에 대한 매너를 체계화합니다.   

   

    설령 학교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사적 폭력을 가하는 방법으로도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어도 감정적으로는 시원하게 복수하기를 원합니다.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어도 낮은 수준의 트라우마를 갖게 되기 때문이며 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어도 도의적인 책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넷플렉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열광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날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지켜주지 못했던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와 함께 정화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가해자에게 너무나 유리한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의 폭력은 너무도 은밀해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대다수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주고 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간의 노력과 예산이라면 최소한 학교 안에서 폭력이 없어져야 합니다.      


    행복을 측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도 측정할 수 없으므로 지금 어린 학생들이 겪는 고통을 어른들의 시대와 비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이 미래 불확실한 성공의 대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직면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데, 인내만 한다고 어떻게 좋은 미래가 펼쳐질까요?      


    더욱이 체면과 남의 눈치를 보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하는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모른 척 귀 닫고 눈감고 공부만 하면서도 잘 살았지만 스마트폰의 시대는 너무도 개방적입니다.      


    범죄는 고의(故意dolus),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 dolus eventualis), 불가항력(不可抗力, force majeure) 등 의도와 관계없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냥 학교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 번쯤은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한다고 인정하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인정하면 다음은 대응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자꾸 없다고 하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고 인과 관계의 왜곡으로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와 대결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에 도달했던 국가들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했는지 살펴보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역사 등 모든 것이 다른 국가를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벤치(bench) 자리에 마킹(marking)만 해보는 정도로 지평을 삼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엄청난 해결책이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도 교육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선진국이고 자부심을 가질만합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산업시대, 근대국가 교육에서는 국가 총력과 국민의 인내와 추종으로 산업일군을 양성했고 사회 전 분야에 고른 엘리트층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국가가 고도로 성장하고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필요한 인재와 역량을, 다양성만큼이나 많아진 갈등을 관리하며 확보할 수 있는가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변수로 인구, 급속한 출산율 저하가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양육,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의 문제로 결혼을 꺼리고 이어서 당연하게도 출산율 저하의 영향으로 인구 절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규율과 법,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국가 총력전이 필요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열등감과 자존감이 문제라면 각 분야의 능력을 키우면서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트라우마라면, 가령 폭력이 원인이라면, 선생님에게 이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의 심리상태,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합니다. 다만 아이들의 문제를 처벌로만 하는 경우에 문제는 노정되고 결국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고 반사회성을 띌 경우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도 선진국처럼 많은 상담소를 운영하고 인터넷망을 이용해서 사이버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일까요?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출산율과 같은 인구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살률은 행복지수의 또 다른 측정 변수 중 하나가 돨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과 왕따 문화를 경험했고 이에 따라 자살예방 관련 예산만 우리의 100배 이상을 지출하며 학교 교육을 대대적으로 개혁했습니다.      


    그들의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나라와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입니다. 강도 높은 고입, 대입 시험은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하루 종일 내달리게 했고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반복했습니다. 사회복귀는 늦어지고 고학력자들은 직업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느 국가나 그렇듯이 기성세대와 갈등도 높았고 기업은 젊은이들의 능력을 개탄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사회단체는 이런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학교 교육을 꼽았습니다. 일단 일본은 수업을 대폭 줄이고 대입과 학교 교육을 분리했습니다. 또한 이키가이(生きがい)라는 일본인 특유의 가치관도 강조했습니다.     

 

    이키가이는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는 거라고 하며 일종의 자기 회복 운동이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정신 고양 운동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움받을 용기>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일본은 언론에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총력을 기울인 결과 사교육은 줄면서 공교육으로 흡수한 결과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수업만 참여해도 졸업이 가능했고 대학 입학과 회사 취업이 가능했습니다.     


    학력저하 문제도 대두되었지만 여전히 일본은 전 세계 수학, 언어, 과학 등의 학력 평가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걱정했던 것은 학력 저하가 아니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저하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일본의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학력, 자발적 실업자가 많을수록 사회가 불안해지고 더불어 고령화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자살률 증가를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각 종교마다 자살을 방조하기도 하고 성전을 촉구하기도 하며 금지하거나 파문하기도 합니다. 종교 때문에 자살을 안 하기도 하고 스스로 죽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자살을 미화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추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하거나 이승이 저승보다 낮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죽음의 선택이 더 좋은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의식적인 행동이든 집단 무의식 속에 있는 공포 때문이든 이미 그런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본은 전국 시대를 거치며 할복 문화가 생겼습니다.                


    이들의 할복은 일종의 자살로 전쟁에 지거나 영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행했습니다. 일본의 할복은 다소 형벌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이묘나 무사가 책임을 지고 다른 이들을 대표해서 죽는 경우가 있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무사도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며 찬미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에 메이지 정부는 법으로 금지했지만, 지사나 군인들은 할복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할복의식

    자살의 원인은 다양한 각도로 많은 학자에 의해서 연구되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상상력, 뇌의 진화(신피질)에 따른 이상 현상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살의 트리거(Trigger)로 지목되는 여러 변수들을 분석하고 논문도 많이 나왔지만 1897년에 나온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의 <자살론>이 최초이자 최고의 명저라고 생각됩니다.      

에밀 뒤르켐

    그는 자살이 철저하게 사회적인 현상이며 원인 또한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현대에는 여러 트라우마 등에 의한 정신적 상태에서 시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유를 논의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측면은 알기도 어렵고 그렇기에 논의 자체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여하튼 그는 자살의 종류를, 개인이 사회와 고립되고 대치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살하는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 개인이 사회에 지나치게 밀착해 있어 사회를 위해 자살하는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 사회 규범이 통째로 흔들리면서 그 여파로 개인의 가치관이나 기반이 무너지며 개인과 사회가 괴리가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 아노미적 자살과는 반대로 사회의 규율이 필요 이상으로 심할 때 발생하는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로 구분했습니다.      


    물론 이런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 자살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다만 뒤르켐의 주장대로 개인이 속한 다양한 사회(가족, 학교를 모두 포함)에서의 고립감이 느껴지고 삶에 대한 연속된 회의(懷疑)가 자리 잡은 경우에 개인적인 이유가 극대화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자살의 이유는 알 수 없고 우리는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이 원인보다 시급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복잡하고 오랜 기간 축적되었을 자살의 이유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보다 급한 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여러 행위입니다. 자살 징후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어 철저하게 징후자를 관리해야 합니다. 자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해야 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직접적 원인이 되는 폭력과 학대의 가해자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이것은 사후약방문과 같습니다. 아무리 법정 최고형을 한다고 해도 근절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 시스템이 가정, 학교, 사회 폭력, 학대에 대한 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판단하고 사고해야 합니다.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에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암울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모르면서, 그들 내면의 병이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모르면서 사회를 신뢰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들러가 주장한 트라우마가 열등감만 있다면 우리는 극복의 에너지로 열등감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위인전집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많은 위인의 어린 시절 삶이 평탄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위인의 심리분석도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결손 가정이거나 가난했으며 어려서 독립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열등감을 에너지로 더 좋은 삶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서 성공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열등감을 기반으로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며 돈을 벌 수도 있고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인생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이었는지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어떤 이는 삶의 끝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고 도움을 준 참다운 스승을 만났다고 하며 어떤 이는 사재를 털어 학교를 보내주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고도 합니다. 아쉬운 것은 아무리 공교육, 의무교육이 확대되고 교육 평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상대적 부족함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가족, 학교, 학원, 국가가 같은 목적으로 연계된다면 폭력과 학대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예체능은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학부모가 전문 학원을 찾아가거나 학원이 캐스팅하기도 하며 일단 선발된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책임집니다. 일반 교과과정과 예체능뿐 아니라 전문적 교육을 병행합니다.      


    또한 연습생 시절 여러 변수로 재능 있는 학생들의 중도 탈락을 막기 위해 각종 심리 상담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러니 과학고나 자사고, 특목고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경쟁률이 더 높습니다. 이렇게 예체능도 과거 스파르타식, 도제식, 폐쇄적 교육방식에서 민주적이며 공개적이고 맞춤식 교육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런 환경에서 K-문화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도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학교 교육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업 시간 단축하고 학생들에게 단순 암기보다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개별 교과에 대한 수업 시간은 줄이고 종합 학습 시간은 늘리는 이른바 ‘유도리(ゆとり, 여유)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자율 학기제나 창의력 교육처럼 학력 저하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다만 일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학교 교육과 입시의 연계성을 고려해서 혁신적인 개혁을 단행합니다. 바로 2020년까지 입시교육제도를 폐지하고 국제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도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적용하는 학교를 늘려가고 있는 단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교육계에서 논의 중입니다.     

 

    여기서 IB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본이 2002년부터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2020년 IB 도입을 위한 청사진을 2013년에 내놨으며 그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결국에는 도입했으며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국가가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고 교육이 이를 어떻게 뒤 받침 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시간을 두고 흔들림 없는 예산 반영과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이 부럽습니다.      


    앞서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근대화의 상당한 비율로 모델국이 일본이었습니다. 미국을 모델로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유럽은 너무 멀고 중국과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니 일본이 딱이었습니다. 우리가 반백 년 넘게 모델로 삼은 일본이 갑자기 교육체계를 전환한다고 합니다. 일본이 교육개혁을 발표했던 2002년 다음 해에 일본은 자살예방법을 발표합니다.      


    현상을 진단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국력을 결집해서 방향성을 가지고 추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국가입니다. 당장 우리나라 선생님들의 관료화를 막아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더 이상 행정관료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는 선생님을 노동자로 간주하고 행정업무 등으로 선생님을 통제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노동자로 분류한다면 선생님은 감정노동자입니다. 선생님은 학생, 학부모, 학교 조직에 둘러싸인 섬 같은 존재입니다. 완전한 존재이기를 원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우리의 동년배입니다.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관리해서 전 국민의 건강한 미래를 고민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선생님에게 제 자식을 맡기는 우스운 상황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트라우마를 먼저 관리해야 합니다. 학교별 편성과 임무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하며 교육 당국의 알아보기식, 학교에 자율권을 대폭 양도하고 큰 틀에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명확한 역할 분담도 필요하며, 입시와 공부를 불리하는 일본 같은 개혁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의하면 무의식에 억눌린 트라우마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발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을 애당초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거의 불가능합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는 아마도 인정하고 사는 것일 겁니다. 즉 일단 발생한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평생의 지병처럼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발현되는 양상 중 가장 걱정스러운 게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한 폭력입니다. 또한 특이한 케이스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나타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도 일반적으로 타인을 향해 처음 해보기 전에 자신이 당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 행위를 가스라이팅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자아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뇌의 방어 기제는 더 숭고한 가치를 부여해서 타인에게 전달하여 스스로에게 안정을 제공합니다. 집단 히스테리로 분류하기도 하는 집단학살, 집단자살 등은 전혀 다른 맥락이기도 하면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비슷합니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주도자가 있고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고 싶은 다수가 존재합니다. 주도자는 다수에게 물질적, 정신적 명분과 대가를 제시하고 이탈자에 대한 가혹한 린치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세뇌합니다. 결국 내부로 향하던 에너지가 밖으로 향할 때 집단 학살의 모습을 보이며 반대로 확장을 포기하고 내부에서 폭발할 때 집단자살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에 의한 범죄는 심리적 지배 욕구와 지배당할 때 오히려 안정감을 갖는 심리를 이용해서 벌어지는 범죄로 사기보다 치밀하고 악랄합니다.     


    일단 생긴 트라우마는 잘 관리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지병 하나쯤은 있습니다. 저도 요로 결석이 있는데, 신경을 안 쓰면 한 번씩 재발합니다. 고통 지수가 출산과 비슷하다고 하고 계속되다 보니 저도 만만치 않은 전문가가 다 됐습니다. 의사들은 저에게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물 많이 먹고 뛰는 운동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의사 말대로 살면 고혈압 등 웬만한 병은 다 고칠 수 있습니다.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당뇨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현재 많은 이유 중 하나가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과 관련 있습니다. 당뇨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합병증이 더 무섭습니다. 옛날에는 당연히 항생제 등이 없었으니 시름시름 앓다 죽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 상태로도 오래 삽니다.      


    트라우마도 평생을 관리하며 함께 살아야 하며 일종의 병으로 주변인들도 알게 해야 합니다. 반복적인 이야기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예방입니다. 결석도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게 귀찮고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발병하면 그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예방 접종처럼 덜 아플 수 있도록 관리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사주팔자, MBTI, 혈액형에 열정을 쏟을 때 자신의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것도 알아가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가난이라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가난의 트라우마는 부자를 공격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트라우마는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년~ 1883년)는 일부러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정말 가난한 삶을 자처했으며 자식들도 가난으로 죽습니다. 열렬한 지지자이자 친구였던 엥겔스(Engels, 1820년~ 1895년)가 없었다면 다 굶어 죽을 판이었습니다.    

  

    공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비천(卑賤)한 스토리의 보유자입니다. 그는 3살 때 명목상의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 안징재가 곡부로 이사하여 홀로 공자를 키웠습니다. 공자는 사생아(정식 혼인 관계가 아니었으며 어머니가 무녀였다는 설도 있음) 였기에 공 씨 집안에서 부친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모친마저 눈이 멀어버려 생활 형편은 더욱 나빠졌으며 그의 나이 16세에 사망합니다. 이 결과 공자는 어려서부터 거칠고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 곤궁하고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사생아였던 공자는 귀족으로 인정받는 것이 필생의 목표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무사였지만 공자는 글로서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사 흉내를 내며 놀았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종교 의례·제도·관습 등에 밝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공자도 무속인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유학이 예법을 특히 중히 여기고 맹자 어머니가 세 번째 이사에 만족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자에게는 특별한 선생은 없었다고 하지만 동시대에 살았던 노자를 찾아가서 배웠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공자는 대략 열다섯 살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여, 서른 살에는 학문의 기초가 섰고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섰다고 이야기합니다. 강태공(姜太公, 주나라)은 가족의 가난과 비난을 극복한 몇 안 되는 선비의 표상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보면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위대한 사람을 낳을 수도 있지만 대물림되는 가난은 트라우마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런 허기짐은 부자가 되어도 평생 따라다닙니다. 모든 것을 가난 탓으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한다면 접시 물에 익사하는 형국입니다. 너무 많은 일들에 왜라는 질문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다면 몰라도, 설령 그렇더라도, 직업 외의 시간에는 스스로 놔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학교 다니는 게 트라우마라면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100% 적합한 공교육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을 늘려도 1:1도 아니고, 헬렌켈러와 설리반처럼 선생님과 학생이 정확히 일치할 확률도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 천운이 내 아이에게 떨어지기를 기대기보다 스스로 선택하는 길도 나쁘지 않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지 않습니다. 어떤 공부든지 공부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강요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학교 교육만이 정답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만 놀지 말고 혼자여도 좋으니 자신만의 밈(meme)을 위해 살아간다면 트라우마도 춤을 출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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