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스산함이 물러갈 무렵, 몽롱하던 정신이 다시 혼미해졌다. 희미하게 울리던 전화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받을까 말까 몸을 뒤척이다가 전화를 집어 들었다. 0000ㅅ ㅏ ㅏ ㄷ ㅏㅏㄴ 라고 써져 있는 것 같은데 잠결이라 잘 안 보인다. 모르는 번호지만 아들이 군복무 하는 부대인가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화기에 귀를 갖다 댄다.
"여보세요~"
"000 가족 되시나요? 여기 0000부대인데요. 아드님이 갑자기 사망하였습니다!"
아들이 군대 입대한 지 2달이 되었다. 훈련소에서 기본 군사훈련을 잘 받은 뒤, 바로 자대에 배치되어 1달 여가 지나가고 있다. 아들이 군대 간 뒤로, 1주일에 한 번씩 저런 꿈을 아침에 꾼다. 꿈속에서 놀라며 울음을 참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다행히 꿈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그냥 꿈이다. 악몽 같은 꿈. 식은땀이 흐른다.
간혹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다가 기분나쁘게 일어나곤 하는데, 아들이 군대 입대한 뒤로는 저런 꿈을 꾼다. 어머니가 사고사 하신 뒤로 내가 더 예민해진 듯 하다. 오늘도 군대에서 아들이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여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많으니 군대에 자식 보낸 부모라면 다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괜한 걱정에 별 꿈도 다 꾼다고 했다. 나도 다녀왔고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이 다녀왔으며 지금도 건강한 청년들이 군복무 중이지 않은가! 청춘을 바치며 국가수호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모두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여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인내할 줄도 알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매사에 활발한 아들이 군생활을 잘할 것이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가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꿈인 줄만 알았던, 그냥 꿈으로만 끝났으면 좋았을 일이 진짜로 일어났다. 어제 아침 뉴스에 경기도 모 사단에서 자대배치 1달 된 일병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새벽 6시, 군부대에서 부모한테 전화를 하여 '아들이 죽었다'라고 했단다. 그 부모는 '뉴스에서 보던 일이 왜 저한테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고 했다. 그 부모에게는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일텐가! 멀쩡하던 아이가 대체 왜? 어제까지 아무렇지않게 소통했던 아이가 대체 왜? 그 부모도 '이게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부모에게 그 전화가 꿈이었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이었다.
군대에 자식 보낸 부모로서 그 뉴스가 남일 같지 않았다. 비통했다.
훈련소 기본군사훈련이 끝나고 후반기 교육 없이 바로 자대에 간 아들은 아직 이병이다. 뉴스 속 사망한 군인은 후반기 교육을 받은 후 자대에 배치되어 일병이 되었나 보다. 내 아들은 그나마 집 근처 부대에 배치된 게 다행이긴 한데 둘 다 경기도의 부대이고 둘 다 방공대대 소속 신병들인 게 공통점이다. 아침 뉴스를 보면서 내 꿈이 뉴스로 나오는 게 너무 이상했고 두려웠다. 다행히 내 자식 얘기는 아니구나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다가 바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망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고인이 된 일병과 그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최근 아들과 카톡 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일과시간 이후에 아들이 카톡으로 말을 걸면, 아무리 바빠도 바로 대답하려고 애쓴다. 아들이 한마디 하면 세 마디 써주고 딸아이들한테는 오빠톡에 말대꾸해 주라고 시킨다. 부대 내에서 신병한테 잘 대해준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아들은 자대전입 한 달 만에 군단장배 태권도시합에 나가기도 하고 선임들과 외출 후 볼링시합을 하는 등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종종 집에 가서 실컷 자고 싶다며 투정톡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집밥이 먹고 싶고, 바깥사람이 보고 싶고, 집침대가 그리운 법이다. 아빠도 겪어봐서 안다.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즐겁게 생각하면서 살거라...' 아빠가 매일 아들에게 건네는 톡이다.
엄마들은 안 가봤으니 몰라서 걱정되고 안쓰러워하며 아빠들은 가봤으니 알기에 걱정하고 불쌍해한다. 내가 잘 버티었으니 너도 잘 버틸 거라고 자위하며 아빠들은 내심 자기 마음을 아들에게 잘 표현하지 않는다. 군대에 자식 보낸 모든 부모들의 모습이요 마음가짐이리라 생각한다. 수류탄투척훈련과 가혹한 군기 잡기 행위로 사망한 훈련병들 소식, 암기강요와 따돌림 등으로 사망한 신병소식이 들릴 때마다 두렵고 분하며 애가 탄다. 간부들의 고충도 잘 알기에 초임간부들의 사망뉴스에도 애도하며 걱정한다. 왜 우리 젊은 청춘들이 군복무 중 생을 마감해야 하나! 왜 남은 유가족들이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건가! 아쉽고 황망할 따름이다.
군대문화를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까, 나쁜 간부와 선임들을 처벌해야 한다 등의 토론과 논쟁거리는 잠시 제쳐두고, 오로지 우리 자녀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군복무를 하면 좋겠다.군대에 들어갈 때는 나라의 부름이었으니 군대에서 나올 때도 나라의 부름 따라 늠름하게 가족들한테 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부모들 걱정하지 않게 국가와 군관계자 모두 젊은 청년들을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
그리고 부디, 군복무 중 황망하게 생을 달리 한 청춘들과 유가족들 힘 빠지게 하는 소리나 행동들을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