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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Oct 20. 2024

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 함께 외쳐보는 주문. 괜찮아....

같이 일하는 친구가 출근하는 아침에 시 한 편을 공유해 주었다. 단체톡방에 갑자기 시 한 편이 올라와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요즘 제일 '핫'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강님의 시였다.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세 명의 자녀들 중 막내아이는 어렸을 적 성격이 남달랐다. 첫째 아들은 너무 온순했고 둘째 딸아이는 약간 신경질적이었지만 친화력과 집중력이 뛰어났다. 두 아이들은 양육에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셋째 딸아이는 다른 집 막내들처럼 활달하고 귀여웠지만, 가끔 비명을 지르며 울어대는 통에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세 명 아이들을 모두 키워주신 어머니도 막내의 앙칼진 울음과 저항의 몸짓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평소엔 너무 사랑스럽다가도 갑자기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울기 시작하면 1~2분이 지나며 엄청난 비명과 악에 바친 소리를 질러댔다. 나도 아내도 할머니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게 너무 힘들어 아내가 화장실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같이 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애 셋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 한 명을,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힘에 겨워할는지, 지금도 이때를 반추하며 초보부모들의 애씀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앙칼지게 울던 아이도 30분 정도 가만히 놔두면 제풀에 지쳐 울음을 멈추긴 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가 쉬어갈 때쯤이면 아이는 화풀이를 그쳤다. 그 덕에 지금도 막내의 목소리는 다소 허스키하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약 30여분은 가족 모두들 고생을 해야 했고 힘든 시기가 몇 번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앙칼지게 울던 막내를 안아주게 되었다. 안아주었던 건지 내 팔의 힘으로 아이를 제압하려 했던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이는 온몸으로 발악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손톱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할퀴며 주먹질을 하기도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를 꽉 안고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의 저항이 줄어들고 울음소리도 작아졌다. 무언가 큰 해법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 막내가 비명 섞인 발악을 할 때면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높이도 맞추었다. 아이의 저항 시간은 점차 20분, 10분, 5분 이렇게 줄어져 갔고 어느 순간, 막내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도 크게 울지도 않았다. 그렇게 육아의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 가족의 추억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성격과 기질이 있다.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유아기의 아이들이 자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그땐 이유 없이 울고 소리 지르고 몸부림친다.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기분이 나빴을 수도, 그냥 그러고 싶었을 수도 있다. 왜라고 물어보면... 그냥, 울지요.. 가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의 시를 통해서 막내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주면 금방 지나갔을 시간이었다. 아이한테 화내기 전에, 같이 짜증내기 전에 더 빨리 괜찮아하고 안아주었더라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주었다면,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면, 아이도 더 빨리 울음을 그치고 우리 가족도 더 빨리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이제 사춘기가 한창인 막내딸이기에 눈도 잘 안 마주치려 하고 대화도 자기 기분에 따라 했다 안 했다 한다.  안아 주기엔 훌쩍 커버려서 언제쯤 다시 내 품에 꼬옥 안아보려나 싶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안아줄 시간이 온다면, 괜찮아 괜찮아라며 등을 토닥여 줘야겠다.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나도, 아내도, 우리 가족과 같은 육아의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것 같아 반갑다.


이래저래 어려운 시대에, 이유 없이 화도 나고 갑자기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르지만,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까? 웃음과 사랑으로 나아갈 길이 생기지 않을까? 힘들더라도 서로를 "괜찮아! 괜찮아!"라고 위로하며 격려해 주는 가정과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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