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탈없이' 산다는 것
엄마들은 각각 그들의 성격, 경험, 신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엄마는 자녀의 안전과 건강, 교육, 진로, 인간관계, 미래.. 생각할수록 그 미래라는 것이 두렵다.
이것뿐이라면 다행이지 자식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안녕, 경제적 안정을 생각해야 하는데
정말 그런 것들을 생각할수록 걱정을 넘어선 두려움이 앞선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자식 생각을 하면 걱정과 두려움이 한가득이다
나는 두 아들의 엄마다. 아들을 가진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은 또 있다
특히나 아들은 어릴 때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아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첫째 아들이 3살 때였나. 친구와 키즈카페를 방문한 날 나는 아들을 잃을 뻔했다.
다 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문을 나서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향한 곳은 4차선 도로 쪽이었다.
내리막길이 있는 곳이라 내달린 순간 가속도가 붙었다.
아이는 점점 멀어져 가고 나는 가지고 있는 짐을 내 던지고 뒤쫓았다.
거의 구르다시피 내 몸을 내던져 아이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 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다.
내 몸은 4차선 도로 한복판에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주저앉은 내 옆으로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내달려서 아이를 안은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어떠한 종교도 갖고 있지 않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아들의 돌발 행동은 정말 두려운 것이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이들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아이가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자라준다면 내 간이고 쓸 게고 다 퍼 내 주리라는 심정을 그날 느꼈다.
그 이후로도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발목이 삐거나
또는 전염병으로 아프거나 할 때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욕심을 내 버리고 두려워한다.
두려움
엄마가 되고 나서 받게 되는 최고의 벌은 아이가 잘못될까 봐 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 무서움과 두려움을 겪었다면 이를 떨쳐낼 방법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 두려움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막을 방법만 생각할 뿐이다.
'평화로운 어느 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한 오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고 흐뭇함에 미소가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울리더니 곧바로 내 눈앞의 놀이터가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사라진다.
주위는 곧 소란스러운 비명소리로 가득해지고 내 눈앞은 아득하기만 하다.'
깜짝 놀란 가슴을 부여지고 자다가 일어나 보니 새벽 4시..
내 옆에는 소중한 내 아들들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밤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악몽이었다.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면서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바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나.
바로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은 아까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지극히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자유를 잃고 부모를 잃기도 했다.
이런 안타깝고 슬픈 일이 지구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도 38선을 긋고 길고 긴 휴전 상태이다.
얼마 전 북한의 울릉도 미사일 도발 사건을 보면 막연히 맘 놓고 전쟁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도 불안하지 않은가
나는 새벽 4시에 땀이 흥건한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그저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한때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처절하고 비참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것이 내 꿈이었을 정도였다.
평범하다는 것은 풍족하지 않지만 결핍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 이상 그 이하의 수준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하다는 것이 사실상 제일 어렵고 요즘말로 모든 일에 평타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다.
단군이래 돈 벌기 제일 쉽다는 지금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결핍에 힘들어하고 평타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나는 그래서 '평범한 것' 그것이 제일 어렵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엄마가 된 이후로 매 순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것에 좀 집중을 하기로 했다. 그 수준이 다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것은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부족하지 않으면서 과하지 않고 내 그릇에 물이 넘치지 않는 정도를 말한다.
우리 아이가 건강하다가 갑자기 독감이라도 걸려 며칠을 끙끙 앓고 열이 난다.
그 와중에 나는 아이에게 공부하자고 밀어붙일 수 있을까?
그 것은 평범한 것을 밀어 내는 나의 욕심이다.
아마 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빨리 낫고 회복하기를 바랄 뿐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건강해지면 '공부해라''이거 하면 안 돼''저거 하면 안 돼' 수많은 잔소리와 제약을 걸며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그랬다.
부모이기에 내 아이가 잘 되는 마음으로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나는 결정 내렸다.
하지만 빈도를 좀 줄이면서 아이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르 주지 않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성장시킬 수 있을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큰아들이 겨울 방학을 맞이하고 2학년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1학년 때 했던 것들을 복습을 하고 2학년 것을 조금 선행을 해두려면 사실 2개월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는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마냥 방학을 '뭐 하고 놀지'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나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아들과 함께 방학계획표를 만들고 하루일과와 일주일 목표 등을 설정했다.
내 기준에는 전혀 빡빡하지 않은 계획표였지만 아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다시 계획표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아이가 본인이 만족할 만한 계획표를 세웠고 2달의 긴 시간 드문드문 계획에 맞춰하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그러면 어떠랴. 별 탈 없이 방학을 잘 끝내고 2학년이 되었다.
'별 탈 없이'이 부분이 중요하다.
나는 사실 완벽주의자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그것이 잘 수행되지 않았을 때 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불안증까지 더해온다.
나는 이게 내 장점이면서도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것을 내가 부모가 된 후에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계획을 세워놓고 나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나는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아아들에게 잔소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잔소리와 나쁜 기운을 온전히 받아내고 참아야 하는 것은 우리 아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마음으로 주문을 외웠다
"별 탈 없이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
아이에게 계획표를 만들게 해 보자.
스스로 자기 일과를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 상승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계획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해도 핀잔을 주지 말자.
건강하게 내 눈앞에서 살아 있고 웃어주고 장난 쳐주는 아이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인데도 종종 부모라는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아마도 내 자식이기에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나의 소유물로 생각이 되어서 욕심을 부리게 되니 말이다.
그 욕심이 결국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안 봐도 상상이 간다.
그저 욕심을 더 부리지 말고 지금 아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해 주자. 아이가 엄마말에 잘 따라주고 계획을 잘 이행해 준다면 무한 사랑과 폭풍 칭찬으로 아이의 기를 팍팍 살려주자.
말을 듣지 않고 엄마 맘을 몰라준다고 아이를 탓하게 되고 내 아이로 인해서 분노라는 감정이 만약에 스멀스멀 올라온다고 하면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자.
"별 탈 없이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되뇌면 거짓말같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정말이다. 며칠만이라도 해봐라.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내 아이를 보는 마음도 차분해진다.
만약 내 아이가 옆집아이와 자꾸 비교가 되고 남보다 늦은 것 같고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어딘가 내 성에 못 미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는 없길 바란다. 남의 아이와 비교하는 생각과 행동은 내 아이를 파괴하는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생각해 봐라.
내 아이는 당신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인 나와 내 남편 (또는 와이프) 책임을 지겠다고 맹세하고 결정해서 이 세상에 나온 위대한 생명체이다.
그러니 깔보지 말고 내 인생에 찾아와 준 것에 감사해하고 독려해라.
그리고 책임져라. 부모는 자식을 책임질 의무를 무조건 가진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책임질 의무가 없다. 원해서 당신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다. 그저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효도해야 할 명분만 가질 뿐이다.
그리고 내 아이를 보면서 조급해하지 말아라.
존재함에 있어 감사하고 사랑해라.
그것만으로 충분히 우리 아이는 좋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혹여라도 내 자식이 나중에 자라서 나를 책임져 줘야지 하는 상상과 생각은 버려라.
부모인 내가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렇기 때문에 부모인 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식과 함께 진화해야 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