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어쩌다 마주친 둘만의 시간- 1
휴가 기간의 이틀을 아파서 침대에서 보냈다.
'아까운 내 휴가...'
그동안 제대로 못 먹어서인지 허리둘레가 작아진 게
거울을 봤더니 흠 뭔가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내심 청초한 듯 여리한 듯 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난 좀 아파야 하나?'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컨디션 좀 어때요?"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다시 얼굴이 발그레 올라왔다.
깨달았다. 나는 그를 굉장히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이틀 내내 잘 먹지도 못했죠.. 지금은 좀 어때요?"
"아...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
꼬르륵...
눈치 없는 뱃속 시계가 울렸다.
"훗."
그가 내뱉은 그 훗이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음. 나가서 뭐 좀 먹어요. 먹고 싶은 건?"
"맥주 시원한 거!"
"읭? 맥주? 아파서 누워있었던 사람이?"
"지금 괜찮다니까"
"흠.."
"아 나 지금 밥은 모르겠고 그냥... 음.. 바다 보면서 시원한 맥주가 너무 당겨"
"와하핫~~ 진짜.."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로 내 말이 재미있어서 그런가?
"진짜 진심으로! 맥주!"
"진짜 재밌다 누나~ 근데 지금 해가 져서 바다는 잘 안 보이네"
진짜로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헐..언제 이렇게 밤이됬데.."
"아. 다른 분들은 근처 몰에 놀러 나가셨어요. 이 강사랑 유 강사도 같이"
"아... 그럼 리조트에 아무도 없는 거?"
"음.. 우리 둘만 남았네요"
"그쪽은 왜 안 나갔어요 같이 나가 놀지.."
"나요? 누나 혼자 있는데 내가 어딜 가요"
'뭐야.... 두근거리게..'
차르르 파도소리가 울렸다. 식당에 앉아 멋쩍게 바다만 바라봤다.
"일하는 아떼(종업원)들도 귀가했어요. 진짜 우리 둘만 있어요"
싱글 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로 신난마음인 건지. 들뜬마음인건지
아니면 내가 들떠있는 건지.
그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흠. 맥주는 여기~흠.. 맘껏~ 드셔도 되긴 하는데... 아니다. 너무 많이는 말고 아팠으니까.
흠.. 근데 안주는 뭘 드셔야 되지?"
"은근히 걱정해 주고 챙기는 거 그거 아무한테나 다하죠?"
"응? 아무 나라니요~ 소중한 고객님인데?"
"아... "
'난 또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건지...'
내 눈치를 본 건지 그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소중한 고객님이고 ~누나는 특별하니까"
"특별? 아니 뭐.. 내가 왜.."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내심 뭐라고 말할지 기대했다.
"음.. 누나의 첫 경험을 함께 한 사람. 나도 첫 경험을 같이 했고~"
"?! 첫 뭐?!!"
'아 뭐야 뭔 말을 하는 거야!?'
"왜 얼굴이 빨개져요?"
"아니~ 난 뭐 첫 뭐 ~ 응!? 그러니까 너랑 내가 뭐 첫 키스 뭐 이런 것도 아니고 뭐 응??"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입이 아무 말 잔치를 내뱉었다.
'아 뭐야 미쳤니? 내입아 그만 좀 다물라고~!'
"훗.. 뭐라는 거야~ (웃음)"
"첫 경험이죠~ 누나의 첫 다이빙~ 그리고 나도 강사로서 첫 가이드"
..............
숨 막히는 적막이 조금 흘렀다.
"아... 응? 내가 처음이었구나?"
"응 사실 그전에는 이론 강의만 맡았었어요. 강사 자격 딴지 얼마 안 되었어서"
"아.. 그랬구나.. 난 또.."
"아 근데 실전 다이빙은 수없이 했으니까 내 실력을 의심하진 말고? 그때 봤죠?"
"응... 알지 알지~ 아유~ 뭐 잘하던데?"
나도 능청맞게 대답은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발그레진 볼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진짜.. 근데.. 누나 뭘 생각한 거야?"
괜스레 웃음이 나서 나도 모르게 훗 하고 웃었다.
꼬르륵.... 또다시 눈치 없게 배시계가 울렸다.
"일단.. 뭐 좀먹게요. 아 라면 끓일까요? 내가 또 라면은 기가 막히게 하죠"
능글맞은 그의 태도가 이제는 싫지 않았다.
"왜요? 못 믿어요? 씁.... 한번 맛보면 진짜 못 잊을 텐데~ 이거 못 잊어서 여기 또 올 텐데?"
"뭘 못 잊어?"
화르륵.... 내가 뭘 상상을
얼굴이 빨개져 나도 모르게 두 뺨에 손을 올렸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 올라오는 열.
둘만 있어서인지 올라오는 이 텐션.
'그래. 둘만 있어서 그래. '
"응? 뭘 생각하는데? 라면~ 라면 말하는 건데"
"아~ 으응 알지 라면 나도 라면 말하지~"
어색하게 답하고는 아 이게 아니다 싶어 얼굴을 돌렸다.
후~~
뜨끈한 라면에 맥주 한 모금
진짜 살 것 같았다. 이틀을 못 먹고 누워만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그리고 그가 앞에 앉아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게 된 것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이 텐션은 언제부터였는지.
"흠~ 좋다. 오늘 날씨도 좋고. 파도 소리도 좋고. 누나 컨디션도 좋고"
"오 꽤나 감성적이네? 날씨에 파도 소리에."
"그런가? 내가 또 한 감성 하지~"
의식에 흐름대로 흘러가는 둘의 대화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둘을 에워싼 공기가 차갑지고 덥지도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