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이 들어왔다 2

39. 그와 그녀의 사정

by 작가이유리

[브런치북] 연하남이 들어왔다-1 (brunch.co.kr) - 연하남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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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정)

우리 앞에 두꺼운 벽이 서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린 그 벽을 뚫고 소통할 수 없는 서로의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상상했다.

벽을 수없이 밀었지만 너무 높고 강해서 끝까지 우린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끝내 끝이 나 버렸다.


허물어야 할 벽이었지만 나는 그걸 깨부수지 못했다.

거짓과 오해라는 벽에 막혀 나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곳까지 숨어버린 몇 마디 말을 꺼내 그 입술에 담아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가지마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에게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거짓과 오해로 주저앉아 버렸고 그 벽은 그대로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그는 그쪽에 머물렀고 나는 이쪽으로 와버렸다.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의 사정)

진실을 제대로 말해 줘야 했다.

그녀 앞을 가로막은 벽을 허물어야 했다. 나는 끝까지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끝내 끝이 나 버렸다.


허물어야 할 벽이 있었지만 나는 그걸 꺠부수지 못했다.

거짓과 오해라는 벽에 막혀 나는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곳까지 숨어버린 몇 마디 말을 꺼내 내 입술에 담아

그녀에게 가지마라고 했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모든 거짓과 오해로 주저앉아 버렸고 그 벽은 그대로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나는 이쪽에서 그녀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그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진아와 소민은 아침 일찍 리조트를 떠나기로 했다.

일정을 아주 꽉 채운 다이내믹한 휴가라 생각하는 진아였다.


빵빵~~~

허름한 택시가 그녀들 앞에 섰다.


-마닐라 KY 호텔 플리즈


마닐라에 도착한 둘은 곧장 호텔로 향했다.

리조트를 떠나기 전날 마닐라에서 5성급으로 유명한 호텔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원래는 그저 그런 호텔에 잠시 머물다 근처 관광이나 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휴가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보내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꽤 호화로운 호텔로 잡아 제대로 호캉스를 즐겨보려고 전날 술기운에 저지른 그녀들의 호화로운 일탈이었다.


그래서 마음은 들뜨고 신나야 했는데 어쩐지 택시 안은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의뢰로 진아였다.


- 시골에 리조트여서 그런지 진짜 허름하고 낡고… 지긋지긋했네.

아 그래도 다이빙은 좋았어 네 덕분에 자격증도 따고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진아는 잠깐 리조트에서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바다 앞 선베드에 누워 그 따스한 햇빛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곳. 반짝이는 바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반짝이는 신비로운 바닷속... 그리고.. 민재가 항상 옆에 있었다.


선베드에 누워 여유를 즐길 때도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내 옆에 있었고 신비로운 바닷속을 탐험할 때도 든든하게 그가 옆에 있었다.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손을 놓지 않았다.


해파리에 쏘여 몸져누워 이틀을 정신이 혼미한 상태일 때도 그가 내 옆에 줄곧 있었다.

뜨거운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주었다. 따끈한 수프로 내 몸도 녹여주었다.

그가 길고 예쁜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만지면서 간지럽힐 때 낯설었지만 달콤했던 그와의 kiss

그와의 달콤 씁쓸한 추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만. 그만 생각하자'


소민은 침묵을 지키다 진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 그렇지?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맞지?


-그래~ 훗…


'아마도 다시는 없을 내 인생의 가장 여유롭고 파란만장한 날 들일 것이다.'


몇 분 뒤 호텔 앞에 도착했고 점점 둘은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다.

호화로운 로비와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였고 여유로운 필리핀의 색다른 분위기가 한껏 느껴졌다.


‘그래, 남은 내 휴가는 멋지게 끝내야지’


럭셔리한 룸에 안내되고 진짜로 마음이 녹아내렸다.


소민이 연신 방을 구경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야~ 역시 돈이 좋긴 좋다~~ 그지?


-인생 뭐 있냐~! 화려하게 살자 우리 엉?


우선 룸서비스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하고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맘껏 수영을 즐겼다.


‘이거지 진짜이게 휴가지…’


호캉스를 즐기고 있던 나른한 오후 … 룸에서 간단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애주가 인 소민은 역시나 잘 아는 와인들을 시켜댔고 끝까지 럭셔리와 화려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대충 시켜 우리끼리 뭔 와인이야 맥주면 되지


-야~ 그래도 휴가의 마지막이다! 와인 마셔줘야지~~ 응?


마지못해 진아는 소민의 모든 응석을 받아들여 줬다.


한잔.. 두 잔.. 가벼운 화이트 와인부터 깊고 진한 적포도주까지 휴가 다운 휴가라며 즐기고 있었다.


-사실말이야. 나 이강사랑 잤다?


뜬금없는 소민의 고백이었다.


-어?!


-사실.. 너도 눈치챘겠지만 나 그 사람 보려고 간 거였어 거기


대충은 알고 있었다. 소민의 마음이 있는 건지 누구를 보러 간 건지 말이다.


-이거 타투 그 사람이랑 같이 한 거잖아


그러고 보니 손목에는 이상한 타투가 있었다


-이거를 그 사람이랑 합치면 하트 모양 되는 거야. 힛.. 웃기지?


-헉.. 뭐야 그런 거였어?! 그건 또 못 봤네


-못 봤겠지~~~ 너는 암튼 예리한 편은 아니야


-치.. 뭐래 너 그 사람이랑 … 뭐 있는 것 정도는 알겠더라


-이번에 가서 그 사람 마음 확실한지 보려고 했는데….


-했는데?


-아닌 것 같더라고 …. 그 사람이랑 함께 여러 번 밤을 보냈지만..


………..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야


-그…이 강사랑 언제부터였던 거야?


-흠… 사실 결혼 정해지기 전부터?


-헉 뭐야 그렇게 오래됐다고?


'소민의 결혼 준비가 시작된 건 어림잡아도 1년 정도 된 듯한데.. 그런데 그전부터 알고 지냈었다니'


소민은 언제부터인가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뻔질나게 필리핀을 들락거렸다.

진아는 그저 호사스러운 친구의 취미 생활이겠거니 했었다.


-사귀고 있던 거였어?


-아니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자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관계지


-그게 뭐야…. 그래서 넌 결혼은 어쩔 건데?


-결혼? 해야…겠지? 그 사람 나 붙잡지도 않는데…. 근데… 아무것도 정리가 안 돼..


- 얘 좀 봐~ 큰일 날 소리 하네! 어느 한쪽이든 마음 정리를 해야지!


-마음정리.. 필요하지 …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건데..


소민은 순식간에 심각 해져 갔다.

분명 결혼을 앞두고 그 사람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할지 말지 결정도 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은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 사람 마음을 얻는다는 거 그거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뒤섞는 건 쉬워도 진심을 내어 보인다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근데 너 박강사랑… 민재.. 걔랑 완전 끝인 거야?


소민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진아는 아직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말이다.


-끝? 뭔… 시작을 했어야 끝이라는 게 있지..


-너랑 뭐 있었잖아? 아.. 난 분명히 느꼈는데 너네 둘 사이


-그래 뭐.. 있었다 쳐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잠시 잠깐..


-걔는 잠시 잠깐이 아닌 것 같던데? ….

사실.. 이 강사 통해서 듣긴 했는데.. 너한테 말 안 하려고 했거든


-야.. 그럼 하지 마


-야.. 근데 … 내가 그 리조트를 뻔질나게 다녔거든. 거의 1년을 말이야.

박강사 하는 거 보면 여자들한테 진짜 철벽이었거든? 근데 이번에 너랑 있을 때 말이야.. 뭐랄까... 걔 시선이.. 계속 너를 보고 있어.

걔가 농담도 잘하고 약간 사람들한테 스스럼없긴 하거든?

근데 또 어떻게 보면 … 거기 직원이니까 그러는 거고.

근데.. 들이대는 여자들한테는 철벽을 치고 … 한 번은 진짜 나한테 부탁하더라. 누가 지한테 관심 보이는 말 들으면 여자 친구 있다고 둘러대 달라고.. 자기가 말하면 안 믿는 다면서 말이야.

여자들이 좀 들이대야 말이지. 아 맞다! 그래서 그때 제이한테 그런 거야 걔 여자 친구 있다고.




……….


- 너.. 왜 그렇게 열심히 걔 실드 치는 건데?


소민의 끊임없는 설명에 진아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아니 그니까 그 키스 얘기도 말이야. J 걔가 그냥 꼬리 치려다 실패한 거야~ 지가 입술 갖다 대고 키스했다고 지랄… 으유..”


-키스가 아니라고?


-아유.. 바보야 그니까 그게~ 그냥 고것이 혼자 입술 박치기 같은 거 한 거라고!

그날 밤에도 들어대니까.. 영화 보다가 그냥 지 방에서 나와버렸데. 그리고 유 강사 방에서 잤다더라


- 이제 됐어. 그게 사실이어도.. 너 통해서 듣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민재 씨도 아니라고 말하긴 했어..


- 그래? 그럼 뭐가 문제야? 아니라고 했다며 그럼 믿어줘야지


- 믿어. 그 사람 말 거짓말 아니라는 것 정도... 지금 알 것 같아.


- 야…. 너 아직 걔한테 맘 있는 거지? 맞지?


……….. 니 얼굴이 지금 딱 그래!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했다. 진아의 마음은 아직 그곳에 남겨져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떡할까?

아무 말도 다시 하지 않고 리조트를 떠나버린 진아였다.


- 오해였 건 뭐였 건... 박 민재라는 사람과 인연이 아니란 이야기야.


- 아쉽다... 너네.. 꽤 어울렸는데..


- 훗.. 그래?


- 민재....아깝네 꽤 괜찮은 남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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