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호텔 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 리리~~
누군가 찾아왔다는 프런트의 연락이었다.
그였다.
두근.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고?’
진아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소민을 보았지만 소민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니.. 넌 걔 연락처 차단해 버리고.. 믿을 데는 나 밖에 없었겠지….
걔 마음먹고 온 거 같더라. 진짜 집요하게 너 어디 있는지 물어봤어. 나는 졌고~~
소민이 지난 밤, 민재와 통화한 것을 회상했다.
“ 소민누나! 진짜 나 이대로 진아 누나 보내면 진짜 진짜 후회할 것 같아! 부탁이야 있는 곳만 알려줘.. ”
"민재야.. 진아는 진짜 마음 정리 한 것 같아.. 네가 이런다고 달라질 애가 아니야.”
“ 내 마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 좋아하는 마음에 책임을 지라고 했어. 이강사 님이.. 좋아하는 여자 마음에 들이면 절대 못 잊는다고..
나요.. 이강사 님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
“준이 오빠가.. 후회한데?”
“누나 가고 나서 … 술만 마시고 있어요...."
“하…. 진짜 나 진아가 알면 나 죽어. ”
“누나가 말해줬다고 절대 말 안 할게요 “
-하…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해~!! 바보야 등신아~~ 사람 마음 얻는 거 쉬운 거 아니라고…. 그리고..
너네 둘... 흠 뭐 제법 잘 어울린다고 ~헤헷
진아는 벌떡 하고 일어섰다.
‘옷을 다시 갈아입을까?'
그 원피스가 어딨더라...
훗.. 웃긴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니.
진아는 아직도 여전히 민재가 보고 싶었다.
카디건을 대충 걸치고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로비로 향했다.
그가 상기된 표정으로 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림새는 리조트에서보다 훨씬 깔끔하고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리조트에서는 항상 내추럴한 모습에 다이빙용 슈트를 입은 것만 봐서 그런가.
정돈된 그 모습에 또다시 진아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얀색 셔츠가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진아의 심장은 문제가 있었다.
'무심하게 대할까? 차갑게?
아니면… 따듯하게 맞이할까..'
하지만 진아의 첫마디는 마음과 반대로 움직였다.
- 웬일이야 여기까지?
-아.. 다행이다… 내가 안 오면 다시 못 볼 것 같아서
-그야.. 뭐 내가 리조트를 갈 일이 없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니다 싶어서… 그렇게 오해하게 한 채로 보내기 싫어서
……….
-그러니까 누나 내가 변명 같은 거 하려고 온건 아니고 … 그냥 얼굴 보고 말하고 싶어서
-됐어. 우리가 무슨 사이도 아닌데.. 하… 그니까 그게 오해라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고,
달라질 것도 없고
-……….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하.. 우리 사이에… 진짜 아무것도 없어?
-뭐가 있어.. 키스 한번 한걸, 큰 의미 부여하는 거 촌스러워.
내가 한 말.. 잊어줘.
진아는 마음과는 반대로 입이 움직였다.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 차갑네..
둘 사이에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소민의 말대로 놓치지 않아야 할까.
아니면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놓쳐야 할까.
'그런데 현실? 그게 뭔데? 대체 무슨 벽이 가로막고 있는 건데? 오해라는 벽? 아님..그의문제일까'
-그다지… 그렇지도 않아. 너한테 차갑지도 … 뜨겁지도 않다는 말이야.
'마음에도 없는 말..'
………..
-후…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아의 차가운 태도에 민재는 조금 주춤거렸다.
'변덕이 심한 여자로 보일까?'
진아는 오히려 자기가 뱉은 말에 그가 상처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머뭇거리는 민재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 이거… 줄려고… 사뒀었는데…
그의 손에는 은색 팔찌가 들려있었다.
그건 지난번 시장에 들렀을 때 진아가 들었다 놨다 여러 번 했던 그 팔찌였다.
-어.. 그건…
-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실 마지막 날 주고 싶었는데
‘나 주려고 그때 샀다고?’
- 진아 누나..
따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 이름.. 낯설었지만 진아는 마음 한편이 지릿하게 저렸다.
- 우리 다시 볼수 있어?
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 이제 3개월 뒤면 다시 한국 가는데 기다려줄래?
-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 우리 아직 서로 끌리고 있잖아 아니야?
- 근데 난…
- 누나가 아니라고 해도 난 안 믿을거야.
나는 그때 들은말 아직도 생생하니까.
주체 못 할 만큼 내가 좋다는 거. 지금도 유효한 거라고 생각할게.
이렇게 나 만나줬잖아.
구차한 거 알아요. 근데.. 근데 이렇게라도 보고 싶은 거 어떡해.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선수도 아니야. 그래요 나 연애 많이 안 해봤어요. 그래서 서툴 수 있어
내가 조금 표현을 못했을 수도 있어. 질투심 유발? 맞아요 그딴 거 했어요. 후회하고 있어요.
근데.. 난 내가 당신 좋아한다는 그 마음에 책임 지려고 온 거예요.
……
내가 갈게요.
지금은… 지금은 누나 돌아가야 되니까.. 어쩔 수 없지만.. 누난 누나 자리에 있어요 내가.. 꼭 갈게요.
………
민재는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 쏟아 내었다.
진아는 리조트에서의 마지막날 계단에 있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계단에 앉아있는 둘. 진아는 민재의 어깨에 기대 잠깐 졸았다가 살짝 눈이 떠졌다.
민재는 여전히 진아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고 뜻밖의 고백을 하고 있었다.
-누나.. 난 사실 말 못한거있는데...나 여자랑 스킨십 하면 발작 같은 게 일어나요.. 예전부터 그랬어..
근데.. 제이하고 키스라니.. 말이 안 돼....
당신이 너무 좋아서.. 잡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서툴러서 미안해요...
근데 그거 알아요? 누나 어깨.. 머리.. 손을 만져도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누나 입술...
하..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아무렇지 않아. 근데.. 그런 여자를 내가 어떻게 놓치겠어요..
내 욕심이라고 해도..변명할 여지없어.
근데..이건 확실해. 내가 당신 미치도록 좋아한다는거.
진아가 듣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민재는 자신의 진심을 다 말했다.
하지만 진아는 모든 걸 다 듣고있었다.
'내가 정신이 멀쩡할때 그 말을 들었다면..'
진아는 팔찌를 만지작 거렸다.
- 잘.. 가…
'우리가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진아는 다시 한번 그의 고백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운명을 믿기로 했다.
잘 가 한마디에 민재는 힘이 쭉 빠졌다.
뒤돌아서 가버리는 진아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조심히...잘가요..
진아는 돌아서 나가는 민재를 불러 세웠다.
- 강사님!
‘!?’
진아는 천천히 민재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았다.
- 꿈속 같았어. 도저히 현실감각이 없는 그런 거 말이야. 지난 며칠은 나한테 그런 꿈 같았어.
그런 기억이야. 고마워...
- 꿈… 같았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난 이제 내 현실로 돌아가야 되고
‘이건 분명한 거절이다.’
민재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 좋은 기억이라고도 하지 말지…
'차라리 오해한 채로 보내야 했었나? 내가 쓰레기가 돼도 말이다.'
날이 흐렸고 장맛비는 쏟아지고 민재는 펑펑 울었다. 마치 어린애가 된 듯이 말이다.
'실연이라는 게 꽤 아프다. 아니 많이 쓰리다. 이걸 내가 과연… 이겨 낼 수 있을까?'
민재는 꽤 오랫동안 호텔 밖에서 발걸음 더 떼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아디오스 ' 7월의 어느날 그렇게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