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2
한국에 있는 애들로부터 주기적으로 오는 연락이 있다. "야 나 연애한다" 그러면 그냥 "축하해"로 답장을 하고 만다. 그냥 남의 일에 무감각하기도 하고 나도 한 명의 학생으로서 연애를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애"나 "사랑"이란 단어들은 되게 신기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분위기와 영향을 준다. 한편으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포근해지고,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은 빵집에 들어갔을 때 그 빵 냄새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그와는 반대로 이 단어들은 고통과 슬픔도 모두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15살, 중2 되기 전 겨울방학과 중2 후반, 딱 2번에 연애경험이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깐 확실히 연애를 하는 애들도 많았고 썸을 타는 애들도 많았다. 썸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데, 썸의 뜻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남녀 사이가 연애하지 전에 느끼는 불확실한 감정"이라고 표현된다. 이미 알고 있는 뜻이긴 했지만, 썸에 대해선 계속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 의문은 미국에 와서 더욱 극대화되었는데, 미국인들의 연애에는 고백이 필수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연애와 썸에 구분은 보통 고백이다. 그래서 고백 전에는 썸, 그 후에는 연애라고 칭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인들에게 연애와 썸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썸의 기간도 불확실하며 자기가 정할 수 있는 거면, 썸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중학생이 되니깐 연애를 하는 애들이 더 많아진걸 확실히 느꼈는데 내가 2학년이었을 때는 우리 반의 나를 포함한 연애하는 커플이 3쌍이나 있었다. 애인이 있었던 애들한테 애인을 어디에서 만났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교나 학원에서 만난다고 답한다. 당연히, 학생이기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지만 그거 때문에 가끔 애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진다.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연애를 하는 애들은 보통 정해져 있다. 남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여자애나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애들은 한정되어 있기에 연애를 하는 애들만 계속 연애를 한다. 그래서, 가끔씩 친구의 전 애인과 연애를 하게 돼서 갈등이 생긴다. 내 주위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친구의 애인이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택의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선택의 관한 이야기는 내가 고민을 상대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인데,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닌 현실을 알려주고 2개의 보기를 주는 것이다. 그 후 결정은 상대방이 하게 내버려 두는 건데, 나에게 자신이 친구의 전 애인을 좋아한다는 고민을 하면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네가 그 사람이랑 연애를 해서 얻는 행복이 더 클 거 같아, 아니면 네 친구와 사이가 서먹해지거나 안 좋아져서 느껴지는 슬픔이나 손해가 더 클 거 같아?"이다. 인간관계에서 '손해'라는 단어를 쓰는 건 너무 계산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정 앞에서는 가끔 계산적이 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고민으로 인해 생각이 많아진 머릿속에서 딱 2가지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냐 우정이냐' 같은 간단한 가치판단의 문제이긴 하지만 사랑은 간단한 판단도 복잡하게 한다.
내 대답을 듣고 결국 그 사람과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그냥 한다. 자신의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하는데 미래를 위해선 더 현명한 선택이긴 하지만, 좋아한다는 감정 앞에선 미래는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학원 끝나고 잠깐 만나거나, 주말에 만나는 식으로 연애를 이어나가게 된다. 카페에 가서 음료수 마시면서 얘기하거나, 공원에 앉아있거나, 가끔씩 홍대나, 신촌에 가서 노는 거와 같은 연애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연애를 바라보는 이 세상의 시선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부모님까지 말이다. 모든 부모님이 그런 건 아니지만 내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의 부모님이 자기 자식의 연애를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나도 첫 연애 때 부모님에게 연애하는 걸 들켜서 혼났던 경험이 있다. 그때 부모님의 이유는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였다. 그 후에 한 다음 연애는 부모님에게 안 들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숨긴 다고 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건 알지만 설득을 해도 통하지가 않았기에 내가 선택했던 방법이었다. 부모님이 아닌 어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학생이 공부 나하지 무슨 연애야' 같은 생각을 가진 어른들도 많이 봤다. 학교 선생님들도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물론 내 2번째 연애에는 선생님들도 별다른 간섭이 없긴 했다. 나와 그 당시 내 애인 모두 학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성적도 열심히 챙긴 덕분이라고 느낀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게 있다,
'내가 내 할 일을 열심히 잘하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뭘 하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 드라마들이 학생들의 연애를 많이 표현하는 덕분에 생각이 바뀐 어른들도 늘어난 거 같다. 대표적으로는, "그해 우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리들의 블루스" 모두 고등학생의 연애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의 연애도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애도 하나의 경험이고, 그 속에서도 많은 걸 배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애인이 힘든 기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도 있고, 고민을 털어놓을 중요한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행복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게 해 주기도 하며, 어쩌면 연애와 헤어짐 속에서 동기를 얻을 수도 꿈을 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