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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 Aug 29. 2022

기초가 더 힘들어

집중력 찾아오기 프로젝트

월요일이 되었다.

전 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전혀 월요일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파워 백수. 남들 일할 때 바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눈은 일찌감치 여섯 시에 떠졌지만 활동 반경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한 시간 반을 보냈다. 가족들이 모두 출근을 한 뒤 그제야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주말 내 술을 마셔서 그런지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기신기신 나갈 준비를 했다. 출근할 때는 항상 입던 원피스 대신 위아래 운동복을 입고 에코백 대신 노트북과 도시락을 넣을 책가방을 멨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지난주에 가지 못한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비를 뚫고 도착했다. 이전에 리모델링을 한 번 해서 그런지 몇 년 만에 온 도서관은 낯설기만 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프런트가 있어 열람실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도서관에서는 열람실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지하 주차장 위로 1층부터 4층까지 있는 도서관은 1층 어린이 도서관/카페/휴게실, 2층 자료실, 3층 자료실/컴퓨터실, 4층 자료실/식당/매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 곳이나 빈 곳에 앉아서 이용하면 된다는 말에 우선 3층에 있는 컴퓨터실로 향했다. 이미 노트북을 가져온 터라 회원가입까지 하고 컴퓨터를 이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지난번에 못 들은 면접 강의를 들을까 하다가 오늘은 코딩 테스트 관련 강의를 듣자 생각하고 프로그래머스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자바 관련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강의를 구매했다. 수강료를 지급하고 확인이 진행되는 동안 무료 강의인 '자바 입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강의 부분은 그냥 지나가고 중간중간에 있는 실습 문제만 풀면서 넘어갔다. 50문제 정도 되는 기초 문제를 다 풀고 나서야 중급으로 넘어갈 걸 생각했다. 50문제를 푸는 동안에도 세 문제 이상을 집중하지 못해 여러 카톡 단톡방들을 돌아다니고 결혼 관련 정보들을 알아봤다. 어찌 됐든 문제는 다 풀었으니 마지막 기출문제 하나를 풀고 집에 가야겠다.


중간에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4층에 있기 때문에 짐을 다 놓고 올라가서 먹고 내려올까 하다가 짐을 다 챙겨 올라갔다. 식당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음식을 팔고 매점이 함께 있는 곳이었고 하나는 따로 외부에서 싸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마련해놓은 공간이었다. 사실 다이어트 식으로 도시락을 싸오긴 했지만 매점이 있다는 말에 컵라면 작은 거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매점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분식 관련 음식을 파는 식당과 같이 있다 보니 과자, 음료 종류만 판매하고 있어 그냥 나와버렸다. 쳇.


3층으로 다시 내려가기 귀찮아 4층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남은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벌써 네시가 다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뜻밖의 전화가 왔다. 


엔지니어 부서장에게 전화가 왔다. 결론은 내가 내일 채움 공제를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게 신경 쓰여 고민한 결과 과천에 있는 한 고객사에 상주 개발 직원으로 계속 회사를 다니면 어떻겠다는 권유였다. 내 입장에서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말에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작 실업급여는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회사 입장에서 큰 피해를 입을 거 같아 거절하더니 이건 무슨 권유인가 싶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와 함께 회사를 다녔던 직원들께 이 사실을 얘기했다. 나보다 더 회사를 향해 욕을 하고 화를 내주는 모습에 잠시 동안 좋은 제안인가 싶어 흔들렸던 사실조차 부끄러웠다. 그렇게 용기 내서 말한 퇴사를 겨우 이런 제안 하나에 흔들리다니. 그렇게 콧대 높게 세워놓은 줄 알았던 자존심에 살짝 스크레치가 나는 듯했다.


원래는 이런 글을 쓰려고 한 게 아니고 나의 또다시 쓰이는 자바 입문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놈의 회사가 나의 휴가날에도 편하게 놓아주질 않는다. 실업급여나 달라고.


** 도서관에서는 오후 2시 5시에 코로나 방역 방송이 나오고 창문을 죄다 열어놓는다. 너무 춥다.

** 열람실이 따로 없다 보니 아무 데나 그냥 앉을 수 있어 자유롭다. 그리고 너무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고 이따금씩 1층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 여섯 시까지 있으려고 했지만 너무 춥다. 글을 마치면서 갈 준비를 해야겠다. 내일은 구매한 자바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강의를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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