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퇴사한 지 3개월 하고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적당히 놀면서 적당히 게으르면서, 그러면서도 꾸준히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동안 불어난 살로 인해서 맞지 않게 된 면접 복장을 옷장에 쑤셔 박고 저렴하지만 그래도 예의는 차릴 수 있는 면접복도 새로 샀다. 사실 회사에 내놓는 내 이력서를 열심히 꾸미지도, 잡힌 면접에 대해 열심히 준비하지도 않았다.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만... 그냥 게을러서인 것 같다.
적당한 위치의 적당한 인원 규모, 그리고 적당히 내가 원하는 복지를 갖춘 회사를 찾기란 어려웠다. 시장이 어려워진 탓도 있겠지만 내가 찾는 회사는 누구든 적당히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일테고 몇 년 전보다 배는 높아진 경쟁력을 뚫고 지나갈 용기도,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 변명이다. 지원 과정에 시험이 있으면 그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 넘겼고, 경력을 원하는 회사에게 그 경력에 해당하지만 그만큼 역량을 보여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면접에서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애를 낳을 계획이 있을 거 같은 (물론 당연히 있지만) 여자라고 비칠 거 같은 막연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임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막상 회사를 입사한 뒤 얼마 안 가 휴직을 얘기할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임신 계획을 미루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안 될 이유만 줄줄이 얘기한 탓에 누군가는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놀고먹고 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 입사해서 적당히 일 하면서 적당히 돈을 벌고 싶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나도 그냥 내가 날로 먹고살고 싶은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요즘에는 아예 취업과 관련해서 찾아보지 않고 있다. 어딘가에 이력서를 넣어보지도 않고 있고 관련 공부를 하고 있지도 않다. 똑같이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앉아 있더라도 이력서를 수정하거나 면접 갈 회사에 대해 알아보는 대신 소설을 읽어나 폰 게임을 주로 한다. 그냥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에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파워 N인 만큼 별의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세상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적당히 공부를 했고 적당한 대학을 적당히 졸업했으며,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서 적당히 일을 하고 적당한 돈을 벌었다. 주어진 일을 적당히 마무리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했을 뿐 그게 고된 일인지 쉬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사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 버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 생각하니까,라는 기준으로 등 떠밀려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내가 더 낫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합리화한 것도 있었다. 어쩌다 운 좋게 전공 따라 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작이 좋았고, 그보다 시작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애써 나보다 시작이 좋았거나 시작이 좋지 않았음에도 과정을 열심히 밟아가서 나를 추월한 사람은 무시했다. 그저 내가 더 낫지, 하는 생각만 하고 살아왔다.
나는 생각보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예전보다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지만 사실 아직도 그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것 같은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나에게 적당한 삶이란 남들에게 비쳤을 때의 적당한 삶이었기 때문에, 그에 미치지 않은 쉬운 길을 택했을 때 따라오는 남의 시선들이 아직은 스스로 당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여전히 고민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 이긴 하지만, 이러다가 또 생각 없이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있고 다음 달에도 여전히 소파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제 집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튼 다음 달에도 글을 쓰고 싶어 진다면 다시 돌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