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기억의 숲에서>
기억의 신호등을 세우자.
언젠가 기억의작가로 불리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 리뷰를 올린 적이있다. 거기서 작가는 '우린 헤어지기 위해서 함께 한다'이 비슷한 말을 한거 같다.
어찌보면 인간의 삶은 평생을 기억과의 동행일지도 모른다. 나를 해한 이에 대한 원망스런 기억, 공정하게 나를 대해준 고마운기억, 기타...
노년기 가장 달갑지 않은 손님은 아마도 '치매'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잠식하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선별적 기억퇴행같은 걸 겪는 환자도 있는듯하다. 그게 아니어도 대부분은 오랜 과거일은 기억해도 최근것을 기억해내지 못하는것이 일반적이다.
기억을 잃는다는건뭘까? 그건 어떤 심정일까?하면 정작 치매 당사자는 그걸 그리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에겐 현재가 전부고 현재 내게 반응하는 세계가 다이기 때문이어서는 아닐까. 엄마가 치매를 앓다 가셨는데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스러워 한 적은 없던걸로 기억된다. 엄마는특별한 케이스, 즉 악성 치매여서 대신 정신분열 증상이며 행동을 보였지만...
기억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만큼이나 복잡하고 예민한 거 같다. 기억중 가장 잔인한건 '트라우마'계열의 그것이 아닌가싶은데, 이 용어는 식상하다시피 널리 사용되고 알려져서 부연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어릴적 우리집은 비록 가난했어도 전화만은 일찍 놓았다. 그렇게 앞서가던 문명생활?을 하던 차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 잠깐 전화가 없는 그 사이 학교에서는 비상 연락망을 짠다며 집전화번호를 적어내라는 요구를 했고 난 공란으로 내야했다 그걸본 담임은 '아무개는 어떻게 연락하지 전화가 없어서?'라고 대놓고 떠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며칠후 또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그것도 미소를 머금은채. 난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반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것만 같아 관계들마저 소원해졌다.
그 담임은 등단한 시인 김 아무개였고 자기 시집까지 출판한사람이었다. 진정 내가 안돼서그랬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심코 혹은 아무렇지 않게 그리 해댄것이라고 본다. 아니면 일부러 상처를 주기 위해서라든가...그런 취향의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무슨 시를 쓴다고....이 기억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생생하다. 털려고 해도 털어지질 않는다.
일례를 든것뿐이다. 나이들면 이런것들에 연연하지 않을거 같지만 내 경우는 더더욱 예민해지고 날카롭게 반응한다. 아마 덕이 덜 쌓여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타인을 함부로 대해서 그것이 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도 난 기억의 숲을 종일 헤맬것이다 .브런치 글을 올리는것도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고 그밖의 일과 모두에서 나는 수시로 기억의 힘을 빌려야 한다.
우리 기억의 거리에 신호등 하나쯤 세우는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어느정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싶다. 내게 해로운 , 나를 잠식하는 기억은 영원히 스탑시킨다거나 그 역은 자주 파란불을 줘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달릴수 있도록 하는 그런 신호등 하나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