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누구나 한번쯤 있었을 경험담이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해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리지가 않았다. 응? 배터리가 다 됐나? 하고 다시 시도했더니 한 2,3,밀리 열리다 마는 것이다. 엄마가 또 안에서 체인을 걸었구나,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피곤해죽겠는데 집에는 못들어가고 이게 뭐야,라며 툴툴대면서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또 주무시는군....하고는 한 10여분을 기다리는데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혹시 엄마가 돌아가신건 아닌가,하는 느낌. 순간적이었지만 왠지 그게 기정사실처럼 여겨져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지방에 사는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전화를 해보겠다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는 엄마의 휴대폰이며 집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 안에선 아무기척도 없었다. 이어서 언니는 내게 전화해 심각한 목소리로, 너 일나가기전 엄마 어떠셨어? 라고 물었다. 당시 엄마는 치매 초기였지만 특이한 행동은 보이지 않아, 그냥 그랬지 보통처럼, 이라고 대답했다. 언니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러기를 한 30여분 계속 했다. 아마도 언니와 나는 전화만 수십통을 걸었으리라. 그래도 매정하게 신호음만 울릴뿐 고대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을수 없었다. 닫힌 문 앞에서 그렇게 난감해하기도 처음이었고 엄마가 돌아가신게 거의 틀림없다는 생각에 아무도 없이 홀로 눈을 감으신게 너무나 가슴 아프고 죄스러웠다. 그러고있는데 도어락 위에 붙여진 조그만 광고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열쇠전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래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로선 일단 전화를 걸었고 고맙게도 상대는 일찍 받아주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30분 내로 가겠다며 어쩌면 도어락 자체를 바꿀수도 있다는 말을 했고 대략의 금액을 알려주었다. 돈이야 얼마가 들던 문만 열어달라고 나는 통사정을했다.
그리고는 30분도 안돼 열쇠기사는 도착해 안에 체인이 걸려진거 외에 보조락도 잠겨있다며 도어락을 떼내고 문을 뜯는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고 이어서 아파트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문뜯기'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갈 정도가 되었을때 난 '엄마'를 소리치며 신발도 벗지 않고 엄마방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등을 보이고 모로 누워계셨고 옆에는 휴대폰이 놓여있었다. 나는 울먹이면서 엄마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엄마 엄마...그러고있는데 엄마가 눈을 뜨시더니 어리둥절해 하셨다. 그리고는 '자는데 왜 깨우냐'며 신경질을 내셨다. 그 순간의 안도감과 고마움이란....엄마, 왜 전화했는데 안받아, 라고 나무랐더니, 수면제 한알로 안돼서 두알을 드셨다고한다.
그말을 듣자 예전에 처음 수면제를 복용하고 잔 다음 섬망상태를 보여 나를 놀래킨 기억이 났다. 엄마는 거실로 나오면서 '여기가 어디냐. 시계가 왜 저렇게 더럽냐'며 낯설어하셨다. 빈티지 플라워 패턴의 시계가 엄마 눈에는 더럽게 보인것이었다. 해서 나는 언니에게 전화했고 언니는 당장 병원에 가라고 해서 그길로 응급실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치매여부는 정밀 검사를 요하지만, 자기들이 봐서는, 수면제에 의한 섬망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말대로 두어시간 후에 엄마는 제 정신이 돌아와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고 집에 와서도 전과같이 자연스레 생활했고 더이상 빈티지 시계가 더럽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문을 따고 들어가 엄마가 안전한걸 확인하고 언니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려주자 언니는 '야,난 무슨 일 난 줄 알고 애들 샤워부터 시켰잖아'라는 것이었다. 상이 나서 며칠 씻기 힘든 상황을 고려한 얘기였으리라. 그리고는 엄마를 바꿔달라고 하더니 속사포처럼 원망하는 소리가 전화너머로 들려왔다.
지금도 잠을 설쳐가며 한밤에 문을 열어주러 온 그 기사에게 감사한다 . 돈은 좀 들었지만 그게 대수랴...
그리고는 엄마가 지방 요양병원에서 진짜 임종을 맞고나서 집에 들어서는데, 이젠 문도 잠겨있지 않고, 설령 안에서 잠겨있다 해도 엄마가 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울컥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그리고는 몇년후,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데 전과같이 문이 열리질 않았다. 이젠 안에서 체인이나 보조락을 걸 사람도 없는데 왜 이러지? 하고는 몇번 비번을 눌러보다 포기하고 s전자 기사를 불렀다. 기사는 거의 한시간 후에 도착해서는 내게 비번을 여러번 확인하고 거실 풍경을 묻기도하였다. 내가, 내 집 맞다고 하자, 한참만에 믿는 눈치를 보이며, 간혹 남의집 문을 열려는 시도가 있어서 그랬노라, 말했다.
그리고는 도어락 해체를 하고나서 살펴보더니 배터리 단자가 노후에서 작동을 못한거라며 통으로 갈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그러라,하고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서는데 문득 '엄마의 부재'가 와닿았다. 그리고는 내게 이야기했다. 이제 엄마는 없다고. 그리고는 조용히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날은 마침 내 생일이어서, 생일이면 엄마가 해주던 동그랑땡 생각이 나면서 더욱 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