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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해 유럽에서>

감미롭고 따스하던 로마의 야경

by 박순영

난 딱 한번 해외여행을 해봤고 그게 서유럽이었다. 어느날 신문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저렴한 가격에 거의 보름간 서유럽을 돌수 있다는 말에 난 지인에게 통보하듯, '우리 유럽가' 하고는 계약금을 덜컥 걸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첫 해외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 가기 일주일전, 여행사에 모여 사전 고지사항을 듣고 이런저런 준비물도 전달받았다.



그리고는 출발 당일,우리는 영등포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탔던거 같다. 반은 설레임, 반은 두려움을 안은채. 지인도 적잖아 긴장을 했는지 얼굴이 굳어있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인원체크를 하고 두어시간을 기다리다 드디어 프랑스국적기에 올랐다. 이제야 불어좀 써보겠군, 하며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웬걸,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내방송은 영어와 한국어로 나왔다. 잠시후 스튜어디스들이 돌면서 마실것좀 줄까,를 영어로 묻는게 아닌가. 이번이 아니면 불어를 쓸 기회가 없겠다 싶어. 난 불어로 '쥐 도랑주'라고 말했다. 오렌지 쥬스를 불어로 말한것이다. 그리고는 스튜어디스의 반응을 살폈지만 그러려니 하는 무감한 얼굴이어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렇게 12시간의 기내여행은 시작되었는데 이코노미를 결제해 겨우 다리만 들어가는 간격이라 한시간쯤 지나자 몸이 뒤틀렸고 긴장한 탓에 아침에 먹고 온게 체해 나는 약을 달라고 스튜어디스에게 말했다. 그들은 상냥하게 '예스'라고 대답했지만 몇번을 말해도 대답만 할뿐 가져오질 않았다. 해서 나는 체기가 있는채로 기내식을 또 먹어야했고 잠도 오지 않는 상태에서 12시간 비행을 했다.


그렇게 파김치가 다 돼 드골공항에 도착, 체기는 여태 가시지 않았고 난 내 소원대로 파리에서 죽나보다 ,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옮겨탄다는 안내가 나왔다. 해서 , 아 로마에 가서 죽는구나, 했는데 , 환승을 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기내 안내방송이 영어와 일어로 나오고 승무원들의 서비스가 눈에 띄게 달라진걸 느꼈다... 알고보니 반 이상이 일본인 승객이었고 그제서야 해외에서 우리와 일본의 국격 차이를 실감했다. 난 별 기대도 않고 소화제를 요청했더니 약에 물까지 갖다주고 잠시후 "아유 오케이?"하고 확인까지 하는게 아닌가.



요즘 또다시 일본과의 굴욕외교 얘기가 나오고 있어 가끔 뉴스를 읽다보면 내 상상은 엉뚱하게도 이 유럽여행으로 널뛰기를 한다. 그런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독일과 달리 진심어린 사과도 제대로 안한다고 우리가 그리도 비난하는 일본이 해외, 특히 자존심 세고 콧대높은 유럽에서조차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본 나로서는 국격을 높이는건 힘부터 기르는것임을 새삼 느낀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눈부신 야경의 다빈치 공항은 로마에 대한 내 첫인상을 너무나 감미롭고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음날부터 투어는 시작되었고 파리, 암스텔담, 그외 서유럽 내로라 하는 도시를 거의 돌았지만, 지금도 내 기억에 뚜렷이 각인돼있는건 음울한 테베강이 흐르고 올리브나무가 줄지어 서있던 로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들이 제국주의 시절 확장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곳곳에 만든 식민지며 그곳에서 자행한 차별과 만행을 생각하면 유럽 예찬은 말도 안된다는걸 알지만 정서는, 감정은, 가끔은 역사나 팩트를 초월하지 않는가. 로마에서 비로소 체기없는 나날을 보낼수 있었고 좁고 적막감이 요요히 흐르던 그 골목들을 잊을수가 없다. 딱 하나 아쉬운건 스페인 계단을 못 보고 온건데 그건 다시 가면 제일 먼저 보리라 다짐한다. 그리고나서는 그 골목에 방 하나정도 세를 얻어 최소한 두세달은 체류해보고 싶다. 인심좋은 주인에게 이탈리아어도 좀 배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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