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틀에박혀 기계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을 매너리즘 mannerism이라 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자주 네거티브한 의미로 쓰인다. 새로운 시도나 창조력이 결여된 루틴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을 어떻게 창조적creative으로 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가고 그리 하지도 못한다. 일단은 삶이라는게 그럴 가치 deserve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에너지를 탕진하고 나면 그 긴 생을 어떻게 이어나가는가.
그리고 이 매너리즘도 이런저런 시도끝에 나온 가장 편리하고 무난한 틀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느정도 '장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보니 집안일밖에는 예로 들게 없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설거지 통에 그릇을 처박고 스트레칭을 하고나서 커피 한잔과 노트북을 들고 침실로 들어와 아침 일과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힘이 든다거나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은 조금도 없다 . 그저 자율주행 하는 자동차처럼 내 몸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매너리즘의 총화'인 것이고 에너지를 쏟는 일은 조금도 없으며 이에 대해 나는 조금도 거북함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나서는 글을쓰거나 써둔걸 손보고 그리고 나서는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외국어를 공부하고 읽다만소설이나 보다만 영화들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걸으러 나간다. 이렇게 보면 나의 일상이야말로 '틀에 박힌' 매너리즘의 전형인것이다. 이 속에서 안정감, 평온함도 느껴진다. 물론 가끔은 이런 루틴함 속에서도 자잘한 시행착오나 뜻밖의 복병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난 이런 나의 매너리즘을 사랑한다. 살아온 세월의 덕인지는 몰라도 이제 기적이나 뜻밖의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일도 줄어들고 크게 나쁜일만 없이 지나가면 그날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예전엔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가 등을 돌리면 죽을것처럼 아파하고 미련을 가져서 다시 관계를 이으려고도 해보고 별 시도를 다 해봤지만 이제는 사람도 바다처럼 들고난다는걸 알아선지 '갈 때'가 됐구나, 하고는 제법 의연해졌다 . 사람도 재물도 세상 모든 이치도 자기 나름의 순환과 루틴함, 매너리즘을 갖고 있음을 알고나면 크게 기뻐하거나 반대로 크게 낙담하는 일도 줄어들게 된다.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나 할까.
별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자판을 두드려댔는데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올때가 있는가 하면 사전에 몇시간씩 며칠씩 골머리를 앓고 프레임을 짜고 구성plot을 하고 해서 써대는데 좀처럼 안 풀릴때가 있다. 그런 글들은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할밖에 없다. 즉 매너리즘이 통하지 않는 순간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 그럴땐 체념할밖에. 이것도 내 매너리즘의 한 방식이고 난 안풀리는 걸붙들고 애면글면 하지 않는다. 정 안되면 나와 연이 없는거라고 생각한다.
이 고단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이라는 쳇바퀴에서 어떻게 순간순간을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 하는가. 때로는 루틴함속에서 안정을 찾고 그러다 무언가 좀 심심하다 싶으면 가끔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건 어떨까? 예로 장편 소설을 쓸때 챕터chapter마다 새로움을 시도하려 하다보면 그 소설을 끝맺는 일은 불가하리라 에너지의 고갈로.
흐르는 물을 보면 저것들도 역류하고픈 마음이 왜 없을까 싶을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물은 항상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여름날 집앞 개천이 물로 불어나면 그 장관을 보러 달려가곤 한다. 그때 고막이 터질정도로 세차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저 흐름속에 휩쓸려 나도 같이 흘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 거대한 질서, 그것도 어찌보면 자연의 매너리즘이란 생각이 든다. 매너리즘은 자기방어라는 기제를 동반해서 관계의 얼그러짐 후의 아픔을 빠르게 치유해주기도 하고 내 생에 집중하게 해서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는 일도 막아준다. 즉, 매너리즘은 내 삶에 안정감과 평온, 약간의 위엄 dignity를 부여하기도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