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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해무海霧의 추억>

그리운 협궤열차

by 박순영

난 신혼생활을 바다가 가까운 b시에서 시작했다. 당시 남편의 사원아파트가 그곳에 들어섰고 남편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30평대를 계약, 그렇게 우리는 바다가 가까운 도시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신혼집이 뭐 이리 크냐며 친구들의 애정어린 질투를 끌어내기도 했다. 지금은 다문화인들이 포진해있는 거대도시가 되었고 바다의 일부도 메꿨지만 그때만 해도 횟집이 즐비한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파도가 밀려와 발을 적시는 경우가 흔했다.



아침에 남편을 배웅하느라 현관을 열면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해무가 밀려들었고 그때의 벅찬감동은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회사가 여의도였고 차가 없던 남편은 카풀하는 동료의 차를 타기로 돼있어 부랴부랴 넥타이를 두르며 집을 나섰고 난 엘리베이터앞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긴 복도를 가득 채운 해무를 헤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나는 평생을 운 좋겠도 바다, 아님 산, 이런 식으로 자연친화적 삶을 살아온 셈이다. 지금은 문만 열면 산이니...

그 아파트단지에는 예술가들도 많이 살아 지금도 가끔 읽는 소설가 j씨를 언젠가 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다. 그때야 내가 작가 지망생이었으니 아는척 할수도 없는 처지라 그저 경외의 눈으로 훔쳐볼수밖에 없었다. 그는 중국설화를 차용해 아름답고 슬픈 연애이야기를 곧잘 쓰곤 하는 작가였다. 늘 얼굴이 벌건게 술을 좋아하는 모양새였고 한쪽 겨드랑이밑엔 두툼한 원고봉투가 끼어 있었다.

그와 함께 버스에 올라 서울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작가를 지척에서 봤다는 설레임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나 선생님 소설 좋아해요,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로맨스의 고전이라 여기는 영화 <falling in love>를 본 곳도 그곳에서였다. 어느 눈이 펑펑 쏟아지던날 난 건너편 상가건물에서 장을 봐오다 입구에 있는 비디오샵에 들어가서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랐다니 주인은 망설이지도않고 이 영화를 내밀었다. 그렇게 해서 난 비로소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이란 배우들과 조우한 셈이다.



또한 집에서 한 20분 차로 가면 있던 협궤열차의 기억도 아련히 남아있다. 위에서 언급한 j씨는 협궤열차를 소재로 자주 글을 쓰기도 했고 명물이라고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도 찾아올 정도니 우리도 한번 가보자, 하고는 이따금 찾곤 했다. 그 자그마한 기차에 올라 바다를 건널때의 감흥은 짜릿하고 신기했고 내가 진짜 예술의 도시에 사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주었다.



이후 남편 회사가 가까운 서울 대단지 아파으로 옮겨오자 아침이면 문열어도 달려드는 해무도 없었고 협궤열차도 없고 원고뭉치를 옆에 낀 소설가도 없어지고, 난 많은 걸 잃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와함께 남편과 내가 안맞아도 지독히 안 맞는다는걸 절감하고 우리엔 갈라서기로 하고 결국 '이혼에 성공했다' (이말은 작가 김한길이 >눈뜨면 없어라>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그는 이후 곧바로 재혼해 지금 잘 살고 있고 가끔 볼라치면 우린 b시의 이야기를 할때가 있다. 그러면 그는 하하 웃으며, 거기 교통 참 그랬어. 그래서 퇴근하면 영등포에서 총알택시 타고 집에 가고 그랬는데,라곤 한다.

우리의 헤어짐엔 일말의 후회도 없지만, 아침이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무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던 바다, 밀려들던 파도, 그리고 즐비한 횟집들의 기억은 이제 그리움이 돼서 내게 향수nostalgia를 일으킨다. 소설가 b씨도 아마 지금쯤은 그곳을 떠나 서울 어딘가 와있을 거 같은 느낌이다. 그가 즐겨 소재로 삼던 협궤열차가 아직 거기 있는지 가끔은 , 아주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그밑에 펼쳐지던 바다는 여전히 햇살아래 빛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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