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월 이탈리아 오스티아 인근에서 끔직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 피해자는 유명 영화감독이자 작가였던 파솔리니로 밝혀진다.
파솔리니는 이탈리아 현대문학의 대표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고 , 기성 엘리트문학에 반발, 지배담론에 저항했다. 전후 196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 <폭력적인 삶 >이다.
그는 첫 번째 소설 <거리의 아이들>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그려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하고, 두 번째 작품인 이 <폭력적인 삶> 역시 어두운 사회모습과 폭력, 동성애, 절도 등 기득권이 싫어하는 이야기들이 종합세트처럼 그리고 있다. 파솔리니는 빈민층의 폭력성을 도덕적 잣대없이 그 자체로 그려냄으로서 그 안에 내포된 순수성을 한층 더 극명하게 표현했다.
파솔리니는 1922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시인으로 먼저 데뷔하나 자신의 동성애 성향이 알려져 공산당에서 축출되고 쫓기듯 로마로 이주했다.이후 로마 변두리의 도둑, 동성애자 ,창녀, 살인자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적나라한 성묘사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삶>으로 문학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는 영화시나리오, 연출까지 하게 된다. 문학과 영화를 통해 파시즘과 부르주아를 비난하고 그에 저항했다.
<폭력적인 삶>은 톰마소 푸칠리의 성장소설이다. 소설은 13살 소년에서 20살에 죽기까지 8년에 걸친 기간을 그리고 있다.
톰마소는 로마 변두리 빈민촌 피콜라상하이에 사는 소년이다. 빈민촌은 파시스트가 재개발 결과 생겨 난 공간이다.시내 고적지에 살던 하층민들은 로마 교외로 강제이주 당했고, 전쟁후 여기에 피란민들이 가세하면서 빈민촌은 우범지대로 변해간다.
이탈리아의 1950년대는 2차 대전이후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뤄낸 시기면서 동시에 로마 빈민촌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다.
로마외곽의 빈민촌과 그 밤 풍경은 이렇게 그려진다.
“저녁 6시 혹은 7시쯤 됐다...거리에 일찍 나온 창녀들만 주위를 배회했고 소형 오토바이들이 가리발디 다리에서 카라칼라까지 부르릉거리며 달렸다...마침내 로마가 잠들었다. 명확히 말하자면 야경꾼들은 잠을 자지 않았다.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며 건물들 처마 사이와 광장에 비바람을 퍼부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지만 날씨가 너무 궂었다.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 녀석들은 서로 작별인사를 했다. ”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1922-1975)
이런 로마의 양면성에 분노한 파솔리니는 빈민가 아이들의 순수와 폭력, 선과 악을 그 어떤 개념도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본능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도둑질하고 욕정을 풀기 위한 도구로 성을 갈구할뿐이다. 성행위의 거친 묘사는 파솔리니 문학 전반의 공통된 코드라 할수 있다.
톰마소는 아레네의 육체에 순수한 욕정으로 대응한다.
“톰마소는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정말 흥분해서 난간에 무릎을 대고 의자에 편히 누웠다. 이레네의 가슴이 거의 그의 코앞에 있었다..풍만하고 탱탱하며 아름다운 가슴이...”
빈민촌 아이들과 부자부모를 둔 아이들 사이의 계급 차는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데, 톰마소는 도시 빈민계급에 속해있으면서도 상류층과 우정을 맺고 부잣집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그들 계급으로 신분상승하기를 희망한다. 청순한 이레네와의 만남과 이레네와의 결혼을 갈구하는것 또한 그런 내면이 반영된것이다.
"우리 간소하게 약혼식을 하자!...그는 이레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까이 끌어안았다...톰마소와 이레네는 포옹하듯 꼭 끌어안고 걸었다...두사람은 보통 애인들이 그렇듯 인상을 찌푸린채 목적지를 향해 말없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이레네와 섹스를 하려던 톰마소의 꿈은 산산조각 나는데 발기가 안되는것이다.
“사랑해...뭐야, 나한테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어째서 발기가 안되는거야?”
이렇듯 태생이 빈민가 출신인 톰마소의 육체는 무기력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레네릃 모욕한 우편배달부를 칼로 찔러 2년간 감옥을 갔다온 뒤 그의 삶은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자신의 가족에게 작은 아파트가 배당되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자신이 이제는 어엿한 중산층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몸에 이상을 느끼게 되고 이어서 실시된 징병검사에서 폐결핵 판정을 받는다.
“톰마소는 몸이 좀 이상했다. 저녁에 특히 더했다....구토가 나고 으슬으슬 추워서 잠이 깼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큰소리가 오가면 옷을 입고 빈민촌으로 가서 친구들과 어슬렁거렸다..그 무렵...영장이 배달됐다”
이렇게 해서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정치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자기 '본연의 계급'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다 피콜라 상하이가 홍수에 잠기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저기 판잣집 몇채가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산쪽에서 흘러내려온 진흙이 창턱까지 쌓여서 덧문 두 개를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진흙사태가 현관문을 부쉈고, 집안에 있던 가재도구, 의자 상자, 신발,그릇, 부서진 탁자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이 모든 것이 집앞에 쌓여있었다. 그러다가 곧 진흙이 흘러내려 마을 가운데로 밀려갔고,완전히 부서진 판잣집 다른 잔해들과 섞여 강으로 쓸려갔다”
이렇듯 빈민가는 비 한번에 완전 무의 세계, 폐허의 세계로 변하고 만다.
그때 톰마소는 아픈 몸으로 물에 뛰어들어 노파를 구한다. 그이후 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톰마소는 몸이 덜덜 떨렸고 정신이 혼미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 심한 기침 발작이 그를 뒤흔들며 나가 떨어지게 했다...그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았다.
엄마, 나 아파 , 의사좀 불러줘”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은 친구들에게 말한다.
“어서 가! 내 옆에 있지 말고 나가서 맘껏 즐겨.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그렇게 그는 숨을 거둔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폭력적인삶>민음사,2018
파솔리니 소설에서 빈민촌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비참한 삶에서 빠져나올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거리의 아이들>, <폭력적인 삶>모두 그렇다.
파졸리니에 의하면 '민중은 자신이 보여주는 역사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그들의 의식을 통해서가 아닌 무의식적인 단순성을 통해서 역사를 쇄신하고 민중의 원초적 생명력과 지식인의 지적인 힘이 맞물릴 때 새로운 사회와 역사가 탄생'한다 .
파솔리니는 이성과 합리성, 발전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소외되고 억압받아왔던것들 본연의 성스러움, 민중의 거친 생명력 속에 숨어있는 순수함을 드러내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