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을 떠올리면

내 나이가 아무렇지도 않다.

by 그레이스웬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이를 낳은 동창들이 몇 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서른 살이 다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결혼을 일찍 했다면 아이도 낳았을 테고, 그렇게 되면 내 동창생은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오 맙소사.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된 나이는 48세였다.

나의 철없는 남동생이 사고를 쳐서? 그 아이 나이 25살에 아빠가 되었다.

지금 엄마의 손주는 군대를 갔고 22살이 된다.


지난 글에도 내 나이가 너무도 마음에 안 든다면서 툴툴댔는데, 요즘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기를 하고 있는 드라마가 <디어 마이 프렌즈>이다.

그 드라마엔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우리 엄마의 나이를 가진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주연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었음에도 자기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걸 보면서 내 나이는 그들에게 딸의 나이일 뿐이고 내가 그 나이가 되면 나는 어떨까.

나도 내 삶을 찾겠다고 나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마르지가 않는데, 그래도 자꾸 보고 싶어 지는 것이 나이라는 것을 무작정 회피해서만은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할머니가 젊으면 좋은 것 같은데 나는 이미 젊은 할머니는 글렀다.

어느 하늘에 내 동창생의 손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내 나이와 나 사이의 그 괴리가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나는 아직 여덟 살 난 아이의 엄마인데, 손주가 생긴 동창생들이라니...

모른 체 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세대보다 나는 훨씬 젊은 세대를 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옛날에 비하면 가부장적인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고, 나를 위해 쓰는 것은 생각도 못할만한 구석기시대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위해 잘 쓰고, 갖고 싶은 건 갖고, 아이와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가끔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취미도 배울 수 있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아마도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할머니가 되기를 소망할 것 같다.


그렇다 치면, 옛날 할머니들을 보며 드는 안쓰러움과 짠함이 내가 할머니가 된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 그러니 기꺼이 멋진 할머니가 되어보자고 생각해 본다.


요즘 할머니들은 매우 곱상하기도 하고 멋쟁이기도 하다. 관리를 어찌 나들 하시는지. ㅎㅎ

나는 친정엄마 외에는 할머니들과 어울릴 일들이 없이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의 자매분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언니들과 동생은 여전히 우애가 좋아서 때마다 여행을 함께 다니고, 누구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 치면 모든 일을 집어치우고 그 집으로 우르르 모이는데, 모여서 하는 거라곤 고스톱 치는 것과 맛있는 것을 해 드시는 게 전부이다.


나는 그분들 모두의 며느리이다.

나를 참 좋아하시는데 그중 둘째 이모님이 나를 제일 좋아하신다. 그 이모님은 70이 넘으셨는데 5센티 구두를 신으신다. 늘 멋쟁이에 귀걸이 목걸이는 언제나 빠지지 않고, 젤 큰 이모님이신 80대부터 막내 이모님이신 60 중반까지 그분들의 손톱은 언제나 네일아트로 곱디곱다.

내가 살아오면서 할머니들을 많이 접할 일이 없었음에도 시어머니의 친자매분들은 확실히 멋진 할머니들이 맞다.

한 번은 그분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피고 체면이고 다 없으시다.


맏언니 이모님과 둘째 이모님이 막내이모님 때문에 싸움이 났는데, 누가 봐도 40대 아줌마들처럼 싸우시는 거다. "야 이 x아, 이 싸가지 없는 x아. 니가 어떻게 언니한테 이렇게 대들어?"

"언니도 이제 그만 작작 좀 해. 피차 같이 늙어가는 판에 그놈의 싸가지는 오질 나게도 좋아해 하여간."

그렇게 말싸움이 오가다가 큰 이모님이 둘째 이모 머리채를 잡았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했는데, 한편으로 참 다행이다 싶은 것이었다.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는다는 건 아직 마음이 늙지 않았다는 거니까. 또 나이가 들었어도 자매들 간의 싸움은 늘 그러하지 않은가.

부랴부랴 둘째 이모님을 모시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냥 딱히 할 말은 없고 옆에 있어드렸다. 이모님은 "늙어서 주책이다 그렇지?" 하셨다.


할머니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좋은 일부터 성가신 일까지 전부 내 일이 되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싫지가 않았다.

그분들은 그런 분들이었다. 나는 시어머님의 자매 이모님들이 모두 오래오래 머무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면 죽을 날 받아놓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무관한 듯 보인다.

그러니 오늘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 나이가 서글퍼지면 나보다 더 나이 많은 할머니들을 떠올리기로 했다.

세상 곱디고운 할머니들은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생을 한껏 살아내고 웃는 웃음에 잔뜩 낀 주름이란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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