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한 클래식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정말 라떼 이즈 홀스지만 나는 이문세 오라버니의 별밤을 들으며 녹음을 하던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아 옛날이여~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제법 고전음악들을 좋아했다.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보다 올드클래식 팝송을 더 좋아했었고, 재즈를 듣곤 했다. 대개 조용하고 글루미 한 음악들이었는데, 그래서 내 안에 조금 우울한 감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의 감성이 그런 음악들을 끌어당겼는지도 모르겠고. 중학생이 뭐 우울할 일이 있을까마는 사춘기라고 해두자.
테이프 세대에서 CD 시대를 거쳐 각종 온라인 스트리밍의 시대가 된 지금, 나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때는 노래하나 녹음하려고 그 성가시고 귀찮은 것들을 기꺼이 해내면서까지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청춘이었는데, 언제부터 음악을 안 듣기 시작했나 생각해 보았더니 역시나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하루 종일 애를 봐야 하는 정신에 음악을 틀어놓고 우아를 떨 새가 없었다. 음악이란 항상 아들을 위한 '반짝반짝 작은 별'같은 동요로 시작해서 노부영 마더구스를 지나... 그리고 5살 때부터는 온종일 영어동요를 틀어놓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들을 수 없었다.
음악도 습관인지 결혼 전까지도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던 일이 CD플레이어를 재생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들려줄 음악만 틀어놓다 보니 아이가 어린이집을 갔는데도 나는 음악을 틀 생각을 못하더라. 아이가 돌아오면 다시 영어노래를 틀어놓고 그러면서 가끔은 내가 좋아하던 팝송을 슬쩍 끼워 듣기도 했다..
잘 때는 항상 영어그림책 음원 중에서도 자장가가 될 만한 노래를 잔잔하게 틀어놓고 잤다.
내가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아들이 피아노를 배우면서부터였다.
피아노를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는데 아들은 피아노를 정말 좋아한다. 그때부터 리사이클이나 연주회 등을 아들과 다니기 시작했다. 자주는 못 가더라도 시간이 맞으면 항상 티켓부터 구하곤 했는데, 그 기억들이 아들은 좋았던지 언제 또 연주회가 있는지 종종 물어보기도 한다.
아들이 피아노를 치면서부터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클래식의 ㅋ도 모른다. 그냥 많이 들어본 노래네? 어디 광고에서 나온 음악이네? 이 정도가 전부이다. 쇼팽, 베토벤, 심지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이게 모차르트인지 베토벤인지 구분 못하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그런 내가 클래식을 매일 밤 자장가로 틀어두고 아들이랑 잠자리 독서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다.
안 듣던 음악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들이기에 이질감은 없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면 처음 듣는 음악도 많고 뭐가 뭔지 잘 모르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지난 히사이시 조 음악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가 히사이시 조를 설명하면서 드뷔시이야기를 해주는데 어찌나 머릿속에 쏙쏙 박히던지, 아~ 저 음악이 드뷔시 작품이었구나 하면서 나도 이제부터 드뷔시를 좋아해 보련다 싶었다. 피아니스트가 드뷔시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에 '달빛'을 연주하는데, 아~ 이 노래했지만 그날 나에겐 전혀 새로운 노래로 다가왔다.
박웅현 작가님은 <여덟 단어>에서 클래식음악을 들으라고 강조하는데, 뭘 알아야 듣지라고 생각했던 게 조금은 달라졌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알고 들으면 더 좋겠지만, 몰라도 들을 수 있다. 듣고 또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을 하고 그 느낌을 느껴보려 하고 상상을 하게 된다. 마치 명화를 감상할 때와 같이.
요즘 드뷔시가 나에게 그렇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 인상주의라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감성적인 것이다. 구름, 바다, 바람의 섬세하고 미묘한 음색을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기도 하는 분위기에 집중하는 인상주의의 창시자 드뷔시의 음악은 그래서 자유롭다. 히사이시 조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 OST에 제법 어울릴만한 작품들이 많은 이유일지도.
그 연주회 이후로 아들과 나의 공통된 자장가 선곡은 드뷔시 아니면 히사이시 조의 음악들이다. 지브리가 사랑한 클래식 드뷔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만한 나이의 아들이기에 드뷔시와 하사이시 조의 음악은 더 친밀하게 아들에게 다가가는 듯했고, 나는 옆에서 숟가락만 얹는다.
참 삶은 살아봐야 안다. 내가 클래식을 찾아들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작은 도전이 늘 즐겁다.
나의 보통의 하루는 자꾸만 보통스럽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지난날들보다 굉장히 특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