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나의 인간관계론

by 그레이스웬디

언젠가 나는 인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내 사주에도 인복은 없다고 나온다는 글을 쓴 적이 있을 만큼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인복이라고 할 만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꽤나 씁쓸했다. 그것은 20대에나 30대에나 마찬가지였다. 뭐가 문제인가를 생각하다가 지쳐 그냥 그간 하던 쓸데없는 노력들을 안 하기 시작했다. 책 제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여하튼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할 순 없다는 것을 인지하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잘해줘도 충분하다". 뭐든 놓치는 게 싫었던 나는 그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속에서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나를 조금만 안 좋아하는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원인을 찾으려 했고, 해결해내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부질없었다.


마음은 놓았지만 관계를 놓을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속에서 산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관계에 전투적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열정이라고 한다면 아쉽게도 인간에 대한 열정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몇 십 년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놓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기대감을 제대로 놓은 건 불과 1년이 채 안됐다.

입으로는 고맙다. 최고다. 은인이다. 진짜로 좋아한다 떠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돌아선다는 것을 또 느꼈던 작년. 그들은 나에게 기대감이 컸던 걸까? 실망하면 바로 돌아서는 것도 이상한 관계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아~~ 인간들 진짜 지긋지긋하다" 싶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차분히 나를 돌아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온 마음을 다 주는 편인데 그게 상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좋은 건 좋은 거지 부담은 또 뭐야 이런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거리 두기를 못하는 내 성격 탓에 너무 격 없이 지내던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앞으로는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고 ~답게 행동하고 말하려 무진장 애를 썼다. 마음이 확실히 단단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관계가 있으면, 고맙고 좋은 관계도 존재하는 법이다. 여전히 내 곁엔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고, 나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성과를 내며 감사인사를 전하는 그들이 고맙다. 하나를 받으면 3개는 주어야 속이 편한 성격인데 그 마음을 또 다 표현했다가는 부담스러워할까 봐 못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아있곤 했다. 그런데 1개를 받아도 아무것도 주지 않거나, 1개를 받고 1개를 줘도 너무너무 괜찮아하는 것이 사람들이었다.

늘 더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제법 잘 받고 안 주기도 한다. 이것도 성장인가? ㅎㅎ


오늘은 수강생 중 한 명이 개인톡을 해왔다. 자기는 여행블로거인데 도서리뷰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료를 말해달라고 하는데 자신은 처음이라 얼마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메시지였다. 나에게 배운 대로 블로그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고 인플루언서에 도전 중인 블로그라 노출과 조회수가 나오는 편이었다. 그런 전후 사정을 말하면서 10만 원을 얘기하라고 했다. 덧붙여 10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조율가능하니 먼저 고료를 제시해 주셔도 좋다는 말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고료 10만 원에 책리뷰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행블로거지만 내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고 있다. 모임 미션이 블로그에 책서평을 올리는 것이기에 서평이 제법 쌓여있는 상태였다. 본인은 얼떨떨해서 이게 맞는 거냐고 재차 물어왔다. 귀여웠다. 충분히 가능한 부분을 설득시키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고 독려했다.

자기 인생에 나를 만나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나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시어머님이 광주이모네 댁에 놀러 오셨다고 카톡이 왔다. 시어머님 자매들은 자주 뭉치기에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했다. 어머님은 광주로 오셔도 우리 집에 머물거나 우릴 불러내지 않으신다. 그냥 당신 혼자 언니들이랑 놀다가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 하신다.

퀵으로 이것저것 보내셨다고 카톡이 왔다. 저번에 만났을 때 전주 동태탕이 먹고 싶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잊지 않고 사들고 오셨나 보다. 동태탕에 갓 뽑은 쑥가래떡에 손주 먹이라고 박태 한 상자에 찰밥에 조선간장 직접 만드신 것까지 바리바리 퀵으로 보내셨다. 퀵비는 내가 냈으니 그냥 받기만 하면 된단다 하시면서.

언제나 고마운 시어머니다.


늘 인복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가만히 둘러보면 인복이 천지다.

왜 예전엔 몰랐을까? 나 또한 사람들에게 기대감만 컸던 걸까?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는 기대감보다는 그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몰랐다.

나에게 무엇을 주지 않아도, 해주지 않아도 그저 만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하고, 이야기든 뭐든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복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아주 보통의 하루에는 조용한 관계가 필수이다.

싸우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계속 연결되는 사람들이 나의 보통의 하루를 빛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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