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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어서야 해보는 스노클링

지금 여긴 보홀입니다

by 그레이스웬디

진짜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공황장애가 찾아왔던 게 벌써 5년 전이라지만, 그리고는 다시 오지 않고 있지만 그 5년 사이에 비행기 타기를 주저했던 건 사실이다. 정말 혹시 몰라서... 일상생활에서는 괜찮지만 비행기를 탄다면 혹시 찾아올까 싶어서...

그래서 5년 동안 해외여행은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공황을 벗어난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번에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공황을 만나기 전 일본에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인데, 솔직히 설레는 마음보단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예약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공황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고, 그렇게 비행기를 타는 당일이 되어 이것저것 준비물들을 검색하다 보니 가습마스크가 나오는 거다.

당연히 건조한 기내 안에서 꽤 쓸모 있어 보였는데, 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어떤 사진 하나를 보다가 갑자기 이걸 쓰면 숨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이 엄습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아... 만약 숨이 막혀오기라도 하면 어떤 대처법이 있나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나는 그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내 머릿속에 그 이미지는 숨 막힐 듯한 느낌을 심어놓아 버렸다.


그리고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괜찮을 거야. 이륙하고 나서 죽을 것 같으면 어쩌지... 이러다가 아니야, 괜찮을 거야. 만약 숨이 막힐 것 같으면 호흡을 하면 돼. 그냥 지금부터 계속 호흡을 하고 있자.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사전 준비와 노력들이 완전히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닌가.

비행기 안에서 아무렇지 않았고, 이착륙은 물론 불안정한 기류에 사정없이 흔들림에도 나는 정말 괜찮았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비로소 "그래, 나는 이제 비행기도 탈 수 있어. 공황은 5년 전에 정말 끝나버린 게 맞다고" 하며 마음껏 부푼 마음을 내버려 둘 수 있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사이에 미리 시도해 볼걸, 뭘 5년씩이나 미루고 미루었던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공황을 두려워하면서도 한번 시험해보자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이번 여행의 테마는 호핑투어이다.

그냥 투어보다 물에 대한 공포는 나에게 트라우마도 없건만 괜히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수영은 워낙 못하는 데다, 트라우마라고 하기엔 20년 전 세부에서 바나나보트를 탄 것이 전부이다.

왠지 그 후로 나는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빠져 죽을뻔한 경험도 아니었는데.

여름마다 바다던 계곡이던 워터파크던 갈 때마다 항상 남편과 아들만 물속에 들여보내고 나는 늘 밖에 있었다.

물에 들어가는 게 재미있지도 않았고, 되려 귀찮기만 할 뿐이고, 안전하게 밖에 있는 것이 속 편했다.

비행기를 이겨낸 후라면 물도 이겨내보자 싶어 진짜 큰 마음먹고 떠난 호핑투어.

휴양지를 참 많이도 다녔지만 호핑투어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사실 이번 여행도 못하겠다 싶음 아들과 남편만 들여보냄 되지 않겠나 싶어 마음을 먹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생애 첫 호핑투어로 보홀의 나팔링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글을 쓰는 중이다.

인생 첫 스노클링으로 나팔링이 찰떡이었던 이유는 물의 깊이가 낮아서 발이 안 닿는 곳을 만나면 금방 발이 닿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팔링 투어는 보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어리 와칭투어'인데 와~~ 진심으로 놀라웠다.

바닷속 세상은 이런 거구나, 처음으로 경험해 보면서 두려움 앞에선 이렇게 아름다운 것도 모르고 사는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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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젊은 날부터 진즉에 해볼걸,

그랬더라면 이 나이가 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바다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지나온 세월이 갑자기 막 아까워지기도 한다.

스스로도 너무 대견하고 놀라워서 혼자 감탄을 연신 내뱉으면서, 그 여운이 남아 영상을 보고 또 본다.

잠시잠깐 느꼈던 대자연 앞에서의 두려움도 고스란히 간직하기로 했다. 그런 색깔을, 코발트블루도 아니고 딥블루도 아닌 그런 색깔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과 그 색 앞에서 순간 나를 집어삼키고도 남겠구나 싶은 바다의 위용 앞에서 얼마나 내가 작은 존재로 느껴졌는지.


용기를 내어 본 이번 여행은 나에게 아주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다.

철없는 아이처럼 내내 용기를 내지 못하던 내가 중년이 되어 시도해 보는 용기.

이것만으로도 나는 스무 살은 또 어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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