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반딧불처럼 반짝일 거야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는데 벌레였더라 하는 황가람의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별이 될 거라고, 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다가 지치고 넘어지는 나날들이 반복되고 길어질수록 정말 나는 별이 될 수 없는가 하고 회의한다. 그리고는 이내 역시 나는 벌레였을 뿐이라며 좌절한다.
하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벌레가 있으니 바로 반딧불이다.
그 조그마한 몸 중에서도 꽁무니부분에서만 빛을 발하는데 그 빛이 얼마나 밝은지 온몸이 다 빛으로 물든다.
결국 나는 벌레라는 것을 알았을지라도 카프카가 그린 그런 벌레가 아니라 가장 예쁘고, 가장 밝게 빛나는 반딧불이라면 이건 제법 생을 살만한 일이다.
로복강에서 만난 반딧불이들은 내 생애 가장 화려하고 가장 밝게 빛나는 한 장면을 연출해주었다.
작은 빛 하나도 밝은데, 모여 있으니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것처럼 사위를 환하게 밝혔다.
아주 깨끗한 맹그로브 숲에서 살고 있는 반딧불이는 자신이 벌레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하다. 너무 예쁜 빛을 발산한다는 것을 반딧불이 자신은 알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무 한 그루가 한 가족의 집이다. 대식구가 모여있는 한 그루 나무는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주변 나무들보다 더 자신을 가장 환하고 예쁜 나무로 빛나게 한다. 서로의 빛을 뽐내기라도 하듯 일제히 뿜어내는 그 빛은 그야말로 황홀경을 만든다.
어쩌면 식구가 많은 자기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나무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달이 없는 밤을 선택해야만 반딧불이의 광채를 온전히 만날 수 있으니, 투어일정을 잡는 것은 행운의 여신이 도와주어야만 한다. 나는 행운의 여신의 힘을 받아 달이 보이지 않는 밤, 별빛만 가득 수놓은 밤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로복강은 마치 아마존강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늘의 별은 어찌나 무수하고 맑은지 칠흑 같은 로복강을 반짝 반짝이는 건 오직 자연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인공조명이 하나도 없는, 그래서 별도 반딧불이도 더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곳.
이렇듯 어두워야만 그들의 빛이 더 찬란하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어둠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로복강의 반짝임들은 오히려 어둠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숲 속에 유난히 밝은 빛으로 구멍이 뚫린 듯한 곳을 보면 반딧불이들이 모여있다. 나무의 꼭대기와 하늘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별인지 반딧불이의 빛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면서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주 작지만 거대한 빛을 내뿜는 반딧불이처럼 살고 싶다. 혼자의 빛보다 무리를 지어 내는 빛은 더욱 웅장한 것처럼 나도 무리를 지어 발광을 하고 싶다. 향기 나는 맹그로브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그저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탄과 행복과 치유와 힐링을 전해준다.
본디 그들의 빛은 이렇듯 특별한 것이다. 나도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인데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감탄과 치유와 힐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본디 나는 이렇듯 특별한 것을 지녔을까 의심을 하기도 하지만, 분명 있을 거라고, 본디 나만이 지닌 그 어떤 특별한, 반딧불이의 빛과 같은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또 한없이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성에 대하여, 자연의 경이로움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로서의 예의에 대하여 한참을 생각해 본다.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예전의 답과는 전혀 다른 답을 찾아낸다.
내가 생각하는 반짝임이란 따뜻한 사람이라고.
작은 말 하나, 작은 관심, 작은 배려 하나, 작은 감사함 하나, 이 작은 하나하나에 따뜻한 마음을 넣는다면 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성공하는 삶이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과거 돈에 미쳐본 적도 있고, 오직 돈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에 갇혀 살아본 적도 있는 나로서는 조금 의외일 수도 있으나, 지금의 나는 성공하는 삶이란 이타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타심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며, 우월성을 가지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기에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성공했다고 말할 것이다.
로복강 맹그로브 숲에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LED조명을 설치한 것 같은 이 장관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자주 사는 것이 짜증스러워질 때는 오늘의 이 반딧불이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또 반짝 반짝이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또 나아가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