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는 사랑빈
철없다고 치부하기엔 인생에서 또 다른 경험인 듯하고, 덕질을 하는 데에 나이를 묻는 건 맞지 않는 듯하니 오늘 나눌 우리 엄마의 입덕이야기는 그저 인생에서의 작은 챕터라고 해야겠다.
이제 72세인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요즘 최대 행복은 바로 김용빈 쫓아다니기이다.
지난여름, 아이가 방학을 해서 늘 그렇듯 친정엘 갔다가 엄마의 입덕스토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에이~설마~했다. 어르신들이 '미스터트롯'을 좋아하는 건 이상할 게 없고, 어르신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서도 팬덤이 형성되어 있으니 뭐, 엄마가 임영웅, 장민호, 이찬원, 영탁 등등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나도 트롯을 좋아하지만 노래를 좋아할 뿐 트롯가수를 좋아하진 않는데, 울 엄마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다.
임영웅 등등의 그들이 한참 미스터트롯을 이끌어갈 때에도 그들에 대한 정보와 엄마의 감정등을 소녀처럼 쉴 새 없이 나에게 털어놓던 엄마가 이번에도 역시 임영웅 다음 주자인 김용빈, 손빈아 등등을 계속 이야기하는 탓에 나도 계속 미스터트롯 애청자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가 된다.
누가 어디 출신이고, 성장스토리, 가족사이야기. 이름도 처음 들어본 그들의 개인사를 내가 꿰고 있다니, 모두 다 엄마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김용빈에게 아주 푹 빠지셨는데 그동안 좋아했던 장민호나 박서진과는 레벨이 다른 팬심이었다. 친정에 머물기로 한 기간 내에 대천해수욕장에 '그들'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빛의 속도로 알아낸 엄마는 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너가 조금 더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왜?"
"대천 가서 용빈이 볼라고, 너 집에 내려가는 길에 나 대천에 내려주고 가"
헐....
여름휴가 성수기에 갑자기 숙소예약도 없이 무턱대고 용빈이를 보러 대천까지 가시겠단다.
"아니, 진즉 이야길 해야 숙소도 알아보고 하지, 엄마도 참"
콘서트가 밤 9시인데 어떻게 다시 인천으로 오겠다는지... 엄마는 그리할 터이니 나머진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무튼 그렇게 엄마는 그날 대천에서 김용빈과 손빈아 등등의 콘서트를 직관했다.
나는 물론 뜻하지 않게도 효녀가 되었고.
그리고 이번 추석. 연휴가 긴 만큼 엄마는 이번엔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전라도 구경 제대로 시켜주겠다고 전남투어를 하기로 계획이 다 되어 있었고 엄마도 좋다고 했다.
어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나 추석 때 너네 집에 못 가. 용빈이 보러 가야 해. 연휴 동안 콘서트가 2개나 있어."
헐......
이럴 때는 내가 서운해야 하나, 엄마가 행복해하니 다행이다 생각해야 하나....
그러면서 눈치 백 단 우리 엄마는 내가 서운해할까 봐 넌즈시 말을 던진다.
"엄마가 느지막이 즐거움을 찾은 게 너도 좋지않아?"
"어? 어...."
김용빈에게 땡큐다. 용빈이 덕에 내가 편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싶기도 하는 것이다. 글쎄, 나는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는데 그 나이의 덕질은 정말 손자 보는 느낌뿐인 걸까?
아니 왜, 10대나 20대의 덕질은 간혹 가슴앓이도 하지 않던가? 70대엔 그런 건 없으려나?
반면 용빈이 덕에 내가 더 성가신 것도 있다.
용빈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데 세팅은 내가 다 한다.
"용빈이 팬카페에 가입해 줘"
"용빈이 팬미팅 티켓 좀 끊어줘"
온라인으로 하는 모든 활동은 내가 도맡아 해야 한다. 뭐 그것도 당연지사.
엄마는 인천에, 나는 전라도 광주에 사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툭하면 뭐가 안된다며 전화가 온다.
속이 터진다.
"아니~ 그 파란색 영어로 막 써져 있는 거 있지? 그 부분을 꾹 눌러서 복사하기를 하라고~~"
"아~~ 꾹 누르라고? 잠깐만 있어봐 "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기다린다.
"안돼, 안돼"
"아휴 답답해. 그게 왜 안돼, 세상 간단한 건데. 엄마 전화는 뭐가 그렇게 다 안 되는 거 투성이야"
툴툴대다 보면 시무룩해져서
"어쩔 수 없지... 그냥 놔둬" 한다
그럼 나는 그게 그냥 놔둬지냐고. 이 찜찜함은 어쩔 거냐고.
이쯤 되면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내 딸이 된다.
꼭 딸 키우면 이렇겠구나 싶은 것이다.
하긴, 그간 나 키우느라 이런 맛도 모르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내가 엄마 해줄 마음은 충분히 있는데
그렇지만 진짜 딸이라면 온라인 활동은 나보다 더 알아서 혼자 잘할 것 아닌가. ㅜㅜㅜ
옆에 있음 바로 가능한 것이 이렇게 멀리 살아서 답답하게 되는 게 왜 나는 또 멀리 사는 불효녀가 되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엄마가 너무 신나 하고 좋아하니 참나... 하면서 피식 웃다가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인다.
내가 엄마에게 삶의 즐거움을 이렇게 못주었나, 그래서 엄마가 용빈이에게로 눈을 돌렸나... 하는 생각도 들고, 미안해지기도 하면서, 그냥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래저래 땡큐인데 말이다.
복잡하지 않게 진짜 단순하게만 생각하기로 한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 아니라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단지 용빈이 좋으니 가까이서 보고 싶고, 그의 노래를 눈앞에서 듣고 싶고 그런 것이리라.
그러니 엄마의 늦바람을 응원한다.
나도 안 해본 덕질을 울 엄마가 하고 있다는 게 한편으론 참 재미있지 않은가.
엄마가 용빈이를 만나러 팬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체력이 있는 것에, 용빈이를 쫓아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사실에 유난히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김용빈은 엄마를 모를 테지만 그를 만나는 자리에는 옷매무새도 우아해야 한다며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엄마가 나는 좀 멋있더라.
"엄마!! 용빈이 팬미팅 티켓예매 링크 내가 어떻게 서든 찾아서 구해줄게. 딱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