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나이가 들어도 힘들어
8월 1일 친정에 갔을 때 밤바람을 쏘이겠다며 월미도에 나갔다.
맥주도 한 캔 하고 이것저것 군것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광장 한편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다.
나와 내 아들은 남편보다 빠른 걸음으로 가보니 미니피그 다섯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는 순간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이 떠오르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진짜로 너무 귀여웠다.
나는 당장 쭈그리고 앉아 돼지들을 만져보면서 분양하러 나온 젊은 판매자에게 질문폭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유독 관심을 보여하니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도 내가 묻는 질문과 그분의 답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궁금했을 터였다.
이미 그 돼지들을 보면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나던 중, 초딩아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엄마 우리 키우자, 우리 한 마리 데려가자, 응?"
"잠깐만 있어봐~"
마음은 벌써 그 돼지를 데려가고 있는데 몸은 섣불리 따라오지 않는다. 진짜 키울 수 있을까.... 가 제일 고민이었다.
생명체를 데려가서 책임을 못지는 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판매자는 나를 자꾸 부추긴다. 어쩜 내가 의문스럽게 물어보는 질문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다 IT'S Okay 밖에 없단 말인가.
"애 냄새 안 날까요?"
"네 진짜 하나도 안 나요, 오히려 고양이나 강아지보다 깨끗한걸요."
"얘, 배변은 가릴 수 있나요?"
"그럼요, 돼지가 엄청 똑똑해요. 자기가 화장실 정하고 그곳에서만 해요."
"애, 물지는 않나요?"
"아직 아기라 이빨이 간지러울 수 있는데, 사람을 물거나 하진 않아요. 되게 온순한 동물이에요"
"그럼 얘 목욕은요?, 접종은요? 먹이는 어떤 걸.."
끊이질 않는 질문에 바로바로 답해주는 그분은 폰을 보여주며 돼지들이 산책하는 사진, 엄마돼지가 이 아이들을 농장에서 직접 낳은 것을 데려와 분양한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증명한다.
남편은 극구 반대하고 나섰고, 나는 이미 키우기로 작정했고 아들은 신나서 방방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친정으로 돼지를 들고 들어가니 엄마는 신기함과 그 귀여움에 바로 빠져들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집안이라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돼지는 우리가 붙여준 '미도' (월미도에서 데려왔다고 미도라고 초딩이가 지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신기하게 미도야 하면 내게로 달려왔다.
판매자의 말대로 진짜로 자기 화장실을 정하더니 그곳에서만 배변을 하고, 잠자리도 딱 정해진 곳으로 들어가 자는 거였다.
데려오자마자 20년 애견인의 솜씨로 목욕을 시키고, 돼지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탐색하고 사료를 돼지용으로 주문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미니피그만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키우고 있는 푸들 구월이랑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다만 알람시계가 필요 없이 아침 7시면 일어나서 밥 달라고 꽥꽥댄다.
돼지 울음소리가 꿀꿀이 아니라 꽥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평소엔 꿀꿀이 아니라 골골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항상 소리를 내며 지내는 습성, 호기심과 겁이 많은 습성.
그 짧은 다리로 점프실력이 도베르만 못지않은 습성. 신기하고 귀여운 맛에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여행 가는 일주일 동안 다시 친정집에 미도를 맡기고 여행에서 돌아오니 정확히 두 배로 커져있었다 ㅠㅠ
엄마가 밥을 너무 많이 준 것과 나처럼 계획적으로 먹을만한 것들을 입이 닿지 않은 곳에 올려놓고 깔끔하게 치우지 못해 토마토 5개를 해 먹고, 고구마를 있는 대로 먹어치웠다는 미도.
그래도 아직 푸들보다 작으니 괜찮았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집의 벽지며, 장판이며 죄다 물어뜯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얘가 갑자기 이불이며 인형이며 쿠션이며, 심지어 내 다리를 잡고도 붕가붕가를 하는데
물이 뚝뚝 떨어지고 젤리가 나온다 ㅠㅠ
하악.....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주방으로 자꾸 들어오려고 해서 쳐둔 안전문을 죄다 코로 부수어버리고 들어온다.
또 어찌나 빠른지 잡으려면 후다닥 뛰어가는데 도저히 손에 잡을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두 달 만에 미도를 시골에 보내기로 했다.
남편 친구네 본가가 시골이라 어머님이 키우고 싶다고 마당도 있으니 흙도 파고 미도에게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이라고 달라고 하신다.
남편은 누가 달라고 할 때 보내는 게 맞다고 하고, 내 마음도 그게 맞다고 하는데... 선뜻 내어줄 수가 없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보냈는데.. 미도 때문에 샀던 미도 집과 미도가 물고 뜯고 하던 미도 이불. 실컷 혼자 저지리를 하고 나서 제 집으로 들어가 아무 일 없단 듯 눈만 끔뻑거리며 누워있던 미도 얼굴..
고개를 쳐들고 밥 달라고 꽥꽥대며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자꾸만 생각나고 너무도 허전해서 초딩아들이랑 둘이 껴안고 폭풍눈물을 흘렸다.
미도야 잘 지내지?
엄마가 곧 보러 갈게.
돼지는 자기 이름과 주인 얼굴을 귀신같이 기억한다던데, 너도 기억하겠지?
나를 원망이나 하고 있지는 않을는지. 또 얼마나 컸을지. 할머니랑 친해졌을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남편을 득달한다. 전화 좀 해보라고. 잘 있는 거 확실하냐고....
50이 되어도 두 달 만에 정이 들어버린다.
이내 그리워서 펑펑 울어도 본다.
남편은 나보고 '쯧쯧, 나이를 거꾸로 먹네' 하는데, 니가 이상한 거 아니니?!!
초딩보다 더 설레어 미니피그를 데려오고, 다시 보내고는 질질 짜고 있다.
정이 많은 마음은 나이랑 상관없는 거다. 물론 조금 더 현실적이고 냉정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귀여운 아이들 앞에서는 언제나 나도 어린애 같다.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