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도 나는 나를 추앙한다

추앙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by 그레이스웬디

추앙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지속을 위한 기술이다.


'추앙'의 사전적 의미를 본다면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라고 되어 있다. 존경보다 우위에 있는 추앙은 숭배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추앙은 대개 타인을 향하는 말이지만 나는 나를 추앙하기를 원한다. 타인이 아닌 바로 나를 타인이 아닌 바로 내가.


추앙이라는 말은 사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유행처럼 번졌다. 나 또한 그전에는 추앙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솔직히 추앙할 만한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덕분에 추앙이라는 말이 고급스럽고 성스럽고 고귀하게 느껴진 탓에 이 단어를 쓰고 싶어 졌는데 여전히 추앙할 만한 그 무엇은 찾지 못했고, 물론 헤르만 헤세는 빼고, 그래서 나를 추앙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스스로에게도 추앙받을 만큼 위대한 존재인가.

놉.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런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서 미리 부여하는 월계관이라고 해두어야겠다.

추앙에 걸맞기 위해 정말로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내거나, 예수나 부처급의 영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거나 뭐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추앙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를 스스로 존경하고 경이롭게 생각하고 고귀하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그런 뜻이었다고 나는 해석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 존재만으로도 고귀하다고 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고귀한 존재로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해 한 발짝씩 걸음을 떼는 데에 끊이지 않는 노력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추앙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추앙은 매일 더 나아가기 위한 발자국을 떼는 일이다.

그것은 곧 지속하는 힘이 필요한 일이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매일 지속할 수 있다면 나는 곧 추앙받는 존재로서 그 역할을 다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미루게 되는 일은 수 천 가지다.

분명히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만 오늘만 미루게 되고, 급하지 않아 내일 해도 돼 라는 생각은 하루 일과 중 수많은 일에 부여를 한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다이어리 쓰기였다.

정말 꼬박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플래닝을 했는데 한 두 달 전부터인가.... 너무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쓰던 것이 2-3일에 한 번, 그러다가 일주일을 통으로 쉰 적도 허다하고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쓸 컬렉션을 세팅해 둔 페이지들이 휑뎅그렁하다.

그 빈 페이지를 보는 내내 마음은 또 불편한 것이다.

그러다가 9월엔 아예 통째로 쉬어버렸다. 컬렉션 셋업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다이어리에서 1년 중 어느 한 달이 통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쓰지 않았더니 시간은 생겼을지 모르겠으나 무얼 했는지 머릿속도 비어버렸다.

9월에 나는 무엇을 했더라?

음.... 늘 하던 대로 일하고, 여행 다녀오고, 뭐 특별할 거 있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8월의 기록을 들추어보니 확실하게 내가 한 일들이 고대로 남아있으니 내가 뭘 했는지 단박에 알겠더라.

특별한 일상은 웬만해선 찾아오지 않는 게 우리의 삶이다.

매일 그날이 그날 같다고 여겨지는 건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이 되었고 나는 다시 10월 컬렉션을 셋업 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다시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긴다면, 11월 초에 내가 10월에 무엇을 했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지 않다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 이건 놓지 않는 마음이다.

나는 나를 추앙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추앙은 나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고,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추앙하기로 한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 그것만큼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마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곧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마음이기도 하니까.

keyword
이전 13화돼지를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