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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May 13. 2024

오늘도 CPR

콜레스테롤이 높지도 않았고, 혈압도 없었다. 혈당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고 평소 배드민턴, 볼링 등 운동도 즐기시던 직원이었다.


언니 A님이 현장에서 쓰러졌어요

어 알았어.


휴대전화를 끊자마다 혈당기, 혈압계를 챙겨 들고 현장으로 뛰었다.

근무 전 느긋하게 커피타임을 가지기 위해 드리퍼에 여과지를 끼우려던 순간 이 상황이 벌어졌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다급함과 당황함이 잔뜩 묻어났다. 평소에도 마음이 여린 동료인데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뛰어가던 중 다시 같은 번호로 휴대전화가 울렸다.


OO아 이 전화 끊고 바로 119부터 전화해. 다 왔어.

알았어요. 언니.


전화가 2통이나 연거푸 왔다. 현재 상황이 급박하다는 반증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상태를 확인하고 119에 전화를 하는 것보다 내가 뛰어가는 도중이라도 누군가 먼저 119로 전화하는 게 옳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직원이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AED도 환자 옆에 있었지만, 환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그 누구도 먼저 150J의 전류를 흘려보내는 이 위험한 물건을 직원가슴에 붙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달려가 AED전원을 켜고 환자 가슴을 오픈시킨 후 AED패드를 부착시켰다.

몇 추후 바로 제세동 불빛이 깜빡였다.


다! 비켜!


일전에 항공기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사고대처 시뮬레이션을 하는 장면을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도 항공사 직원들은 소리쳤다.

이쪽으로 가!  뛰어내려! 안전바를 잡아!

위급상황에서는 예의를 지키며 다소곳한 목소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확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포효하듯 샤우팅을 해야 한다.

일시에 직원들이 흩어진 것을 확인하고 제세동버튼을 누르자 환자의 가슴은 튀어 오르듯 튕겨진 후 깊은 호흡을 내뱉었다. 


호흡은 시작되었지만 규칙적이지도 균일하지도 않았다. 어깨를 치며 환자 의식을 확인하려 애썼으나 환자는 다시 무호흡 상태로 돌아갔다. 그때 제세동 버튼은 다시 깜빡였다.

2번의 제세동과 심장 마사지가 있은 후 119가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하고 5분 만이었다.


산소포화도는 98%, 혈당 86, 맥박 120회


아직 의식은 완벽하지 않지만, 119가 도착하면서 환자는 조금씩 활력징후를 되찾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심정지가 온 직원은 지병이 없었다. 다만, 체중은 90kg대로 많이 나갔고, 흡연을 즐기며 간간히 동료들과 술자리도 가졌다. 


술도 안 먹고, 담배도 못 피고 맛있는 것도 참아가며 줄곧 운동만 하면 무슨 낙으로 살아요? 


직원들과 상담하면 직원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맞다. 피곤할 때 마음 맞는 동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 하는 것은 삶의 낙이다. 그리고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혈압이 좀 높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그렇게 지금 당장 행복을 바라보고만 살면, 나중엔 그 행복을 전혀 누릴 수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리고, 나는 꼭 상담 끝에 이 말을 더한다.


당신의 몸은 당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조금씩 노력해 봅시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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