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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23. 2024

고기 사주까? 소주 사주까? 골라바요.

7일 만에 회사 선배가 출근을 했다.

처음 계획은 저번주 수요일부터 휴가를 내서 이번 주 월요일엔 출근을 한다였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어서도 선배는 출근하지 못했다. 이건 또 무슨 사건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지금 있는 일에 더 뭔가가 보태졌다는 불길한 시그널. 아니, 월요일부터 감사시작인데 예산담당인 선배가 출근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건 거의 확정적인 증거다. 9시 팀 체조 시간에 선배가 서있던 자리에서 선배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어쩐지 어두운 표정으로 힘이 없다. 무슨 일 있냐며 가볍게 안부를 물을 전화도 엄두가 나지 않아 휴대전화만 만지작 거린다.  가볍게 라는 단어는 늘 선배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선배는 출근을 했다.  


-계장님? 어제 출근한다고 안 했어요?

-어.. 어.. 일이 좀 생겨서.


두 사람 몫의 드립커피를 내리면서 나는 슬쩍 운을 띄워 본다. 그렇지, 일이 생겼으니 출근을 못하지. 확답을 듣기도 전에 찡그린 미간은 벌써 대답을 들은 듯하다. 또 무슨 일일까?


-그렇지 감산데. 출근을 못하는 거면 일이 생긴 거지~ 둘째가 항암 받으면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아니. 입안이 헐어서 매운 거 새큼한 거 이런 건 못 먹어도 그런대로 밥은 잘 먹고, 구토도 심하지는 않았는데... 정형외과 협진을 좀 받느라고.

-정형외과? 정형외과는 또 왜?


선배의 둘째는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병원 종양내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를 다니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으로 갑상선 질환에 무월경까지 생겼고, 아직 어린 나이라 난자보호를 위해 산부인과도 협진하며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정형외과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급하고 놀란 마음에 반말이 앞섰다.

11살이나 나이가 많은 선배인데도, 이선배한테 만큼은 반말도 존댓말도 물 흐르 듯 자연스럽다. 그냥, 큰언니 같고, 옆집 아줌마 같고, 인심 좋은 단골 식당 사장님 같고, 때론. 엄마 같다. 그래서 이 사람 앞에선 조심해야 할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다. 실수하면 어쩌나, 상처 주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고 말하게 되고, 꼬이거나 뒤틀린 것 없이 사실 그대로 들린다.


-스테로이드를 많이 써서 그런가 봐. 대퇴골 무혈성 괴사래. 그것 때문에 MRI 찍고, 의사 만나고 하느라고 출근이 하루 더 늦춰졌네. 헤헤.


괴로워서 웃는 사람 앞에서 눈물이 핑그르르 돌면, 웃던 사람은 더 이상 웃지 못한다. 겨우겨우 버텨왔던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힘들어진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고 싶어 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 그렇게 눈물이 날 만큼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자괴감의 늪에 빠져버린다. 자신의 인생이 한스러워지고, 자신에게만 가혹한 이 세상이 넌더리가 난다.

어설픈 위로나, 그 마음 알 것 같다는 가잖은 공감은 위선이다. 나는 선배를 공감할 수 없다. 소녀가장이 되어본 적도, 아버지를 어릴 때 잃어 본 적도 없다. 어머니의 항암을 보살피고, 동생의 혈액 투석 끝에 어머니와 한해에 같이 하늘로 보내드려 본 적도 없다. 또 자녀가 암에 걸려 항암을 받고, 추가로 대퇴골 괴사를 진단받아 본 적도 더더욱 없다. 그렇지만, 동감은 할 수 있다.


선배와 마주 앉아 있던 나는 커피잔을 들고 벌떡 일어나 등을 돌리며 드립 한 커피에 뜨거운 물을 추가해 본다.  울컥 솟아 오른 눈물을 꾹꾹 누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열심히 말려본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다. 그것은 눈물보다 더 슬픈 대화가 되어버린다. 겨우 잠재운 나는 계장님 앞으로 획 돌아서며 잠긴 목소리가 들키지 않게 빽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고기 사주까! 소주 사주까? 골라바요.

-응? 뭐라고?


뜬금포에 계장님이 놀란 토끼눈이 됐다.


-그러니까. 고기 먹을 거야? 소주를 먹을 거야? 내가 계장님을 좀 먹여야겠어.

-갑자기 무슨 고기랑 소주야?

-오늘 퇴근할 때까지 숙제! 참고로 고기랑 소주 같이도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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