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by 발돋움

'스물다섯스물하나'의 주제음악이 아이 학원을 데려다주고 오는 차 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순간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눈물이 주체 없이 흘러 넘쳐 입을 틀어막았다. 급히 차를 세우고 다음 곡이, 또 그 다음다음 곡이 흘러나올 때까지 핸들을 부여잡고 엉엉 울어댔다. 억눌린 무언가가 노래에 한 구절에 무너져 내린 느낌. 의식하지 않고 있던, 아니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왔던 곪은 상처가 터져버렸다.

'네 생각으로... 힘이 나네..., 넌 날 빛나게 해... 존재만으로... '

자꾸만 깎여져 내려가는 나의 존재감과 너무나 상반된 그 노랫말은 나의 현재 위치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이 무슨 마흔세 살의 분리 불안인지...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모두 부모와 가족에게 독립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도 사랑받기를 원하는 한 아이의 마음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가슴 저 밑바닥에 있던 묵직함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다음날 신랑과 등 산하기 위한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대화를 나눴다.

"내가 복수의 대상인가바 동생 카톡 프사가 복수에 관한 내용이야"

신랑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을 했다.

"그게 꼭 너라는 보장도 없고... 이제 각자 인생을 살아야지. 그쪽이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우리끼리 잘살면 돼. 우리 신경 쓰지 말자 이제."

나는 내심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동생이 먼저 잘못했다고 연락이 오면 받아줘야지. 그래도 반성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 내 착각이었고, 그런 기대가 오히려 나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신랑 말처럼 이제 내려놔야 할 것 같다. 내 주위에 나를 원치 않는 관계들을. 미련들을. 기대를.

조용히 카톡에 들어가 나를 원치 않는 상대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나의 마음이 그전보다 오히려 조금 더 가지런해진 느낌이다.


이제 정말, 개념치 않으련다. 힘들고 싶지가 않다.


살고 싶은 인생을 선택하여 사는 이는 없다. 나치 정권하에서 살겠다 선택한 유대인도 없었고,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도 모두 그 참혹한 현실을 선택한 적이 없다. 부모도, 형재도, 내 주위 환경도 다 랜덤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뀌는 조그만 그 무언가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프레임이 인생인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힘듦은 이겨내기 위해 기를 쓰고, 어찌할 수 없는 상처는 털어내려 애써야 살아진다.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충분한 사람인 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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