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수 1

by 발돋움

부검을 마치고 휴게실로 들어선 김교수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커피포트 스위치를 켰다. 다른 부검의들은 3~4시간이면 마무리 짓는 부검을 김교수는 6시간 이상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부검을 마치고 나면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다리, 허리, 어깨 어디 하나 뻐근하고, 결리지 않는 곳이 없다.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 쉰이 넘었으니. 온 신경이 곤두선 부검을 마치고 나면 김교수는 늘 이 휴게실을 찾곤 한다. 원래 교수전용으로 넓고, 쾌적한 데다 간이침대까지 비치되어 있는 휴게 공간이 있었지만, 김교수는 자투리 공간에 추가로 마련한 이 공간을 특히 선호했다. 그래서 외지고 좁은 이 휴게실은 김교수의 개인 휴게공간이나 다름없었다. 3인용 다크브라운 가죽소파, 저상형 직사각형 원목 테이블, 남쪽으로 난 창틀과 높이를 맞춘 원목 수납장 위에 놓인 커피포트, 드리퍼, 커피필터, 틈틈이 갈아둔 원두 가루가 담긴 스테인리스통, 블랙 텀블러컵. 김교수는 익숙한 듯 창과 가까운 소파의 가장자리에 등을 깊숙이 기대 물이 끓는 동안 눈을 감았다. 가죽소파 프레임과 테이블, 수납장 컬러가 내추럴원목이라 3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 단조롭다기보단 조화로운 이곳을 찾을 때마다 김교수는 이 아늑하고 적당하며, 온전한 이 장소에서 자신만 이질적이란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공간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공간에 녹아드는 평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띠띠띠]

95도로 맞춰둔 포트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김교수는 소파 등으로 머리를 기댄 채 스르르 눈을 뜬다. 휴게실 천장에 4개의 작은 LED 매립등 사이 석고보드가 눈에 들어온다. 직사각형 네 개의 모서리와 횡으로 긴 허리춤에 하나씩 더 박힌 6개의 못, 그리고 보드에 그려진 이집트 상형문자 같은 문양이 선명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흐릿하다. 부검을 진행할 때도 시야가 여러번 흐릿해졌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김교수는 몇 번 더 눈을 껌뻑이다 이내 허리에 반동을 주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꼭 안과를 방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느리지만 능숙하게 컵 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페이퍼를 끼우고 갈아 놓은 원두는 2 숟갈퍼 넣었다. 95도 물을 처음은 조금만, 살짝 부풀어 오르고 나서는 조금 더 많이 3~4번에 걸쳐 물을 부어 가며 김교수는 창너머 희붐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350ml 텀블러 컵이 채워지자 드리퍼를 내리고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아빠는 또 아침부터 커피 마시지 속 버린다니까]

10년 전 엔 딸에게 늘 듣던 말이었고, 그 이후엔 한 번만 더 들어 봤으면 하는 그 말을 김교수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쓰디쓰게 떠올린다.

집사람은 참 선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순한 나머지 자신에게 걸린 병도 순할 거라 착각했던 것인지 혈색소가 3이 될 때까지 하혈을 하면서도 그것이 자궁을 집어삼킨 암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것이 집사람의 문제 이겠는가. 갓돌이 지난 지민을 안고 있던 집사람이 불현듯 맥없이 쓰러지고 나서야 아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린 김교수의 불찰이 더 크다고 김교수는 늘 자책했다. 남편이 의사이지 않은가. 김교수는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린 아내를 대신해 최선을 다해 지민이를 키웠다. 예방접종, 영유아 발육 곡선, 시기별 영양식단까지 꼼꼼하게 챙겨가며 철저하게 케어했다. 그러나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학원을 다녀오던 지민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아이는 달려오는 SUV에 정면으로 부딪혔고, 5미터 사선으로 날아가 건너편 도로에 머리부터 추락했다.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간 김교수가 아이상태를 확인했을 때 아이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두개골과 경추, 오른쪽 대퇴골,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갈비뼈 분쇄 골절과 골반골절.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몸에 매달수 있는 모든 줄을 달고 있던 지민이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3년을 버티다 결국 엄마의 곁으로 떠났다. 김교수는 지민이 식물인간 진단을 받은 날 소주를 사들고 병원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살 이유도 없었다.

달빛도 들지 않는 옥상 모퉁이 컴컴한 대형 에어컨 실외기 옆에 주저앉은 김교수는 소주 한 병을 따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이 알코올로 타는 듯 따가웠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그는 곧 죽을 테니까. 김교수는 빈병을 어둠 속으로 내던졌다. 무심히 바라본 하늘엔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아빠 서울엔 별이 없어. 다 어디 갔을까 그 많던 별이?]

[글쎄. 다 어디 갔을까? 별은 희천이 참 많았지. 그렇지? ]

[응. 별 보러 희천으로 한 번씩 가야 할까 봐. 엄마도 보고.]

서울로 발령 나던 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민이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날이 김교수의 눈앞에 눈물로 젖어들었다. 김교수가 서울 소재대학 교수자리를 거절했다면 지민이는 지금 괜찮지 않았을까? 내가 영미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써 건강검진을 받게 했더라면 우리 가족은 지금 온전하지 않았을까? 옥죄어 오는 지독한 자책에 김교수는 몸을 가눌 수 없어 바닥에 쓰러졌다. 나에게 대체 하늘은 왜 이리도 가혹한 것일까? 부모님도 일찍 여의어 특히나 외로웠던 김교수였다. 그런 그에게 아내도, 마지막 남은 지민이 까지도 곧 영미 곁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제껏 입술을 깨물며 참고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왜! 흐윽... 왜!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왜! 아~~~ 악...]

김교수는 하늘을 데고 발악을 하며 괴성을 질러댔지만 하늘의 별은 고요히 반짝일 뿐이다.

고암을 질러대던 김교수의 목울대에서 쇠맛이 배어 나왔다. 이제는 소리 지를 힘도 의지도 사라졌다.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여전히 무심히 반짝이는 별들을 노려보며 김교수는 왼손을 더듬어 들고 온 검은 봉지를 찾았다. 손가락 끝에 걸리는 검은 봉지를 당겨와 그 안에 든 소주 하나의 뚜껑을 땄다. 그리고 재킷 안 주머니에서 수면제 통을 꺼내 왼손 손바닥에 들이부었다. 왼손에 한 움큼 쥔 그것을 김교수는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소주를 들이켰다. 목구멍 안에서 알약들이 소주가 터준 길을 따라 김교수의 몸속으로 한 뭉치씩 배달되어 갔다. 입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알약이 사라지자 김교수는 소주병을 자신의 허리춤에 내려놓았다. 이제 다 되었다. 나도 우리 가족이 모여 있을 그곳으로 갈 준비가 되었다. 지민이는 이미 엄마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짝이던 별들이 점점 흐릿해졌다. 눈꺼풀을 여닫는 흐름도 느려진다. 옥상 조경수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멀어져 간다. 김교수도 김교수에게서 점점 떠나간다.


어둡다. 깜깜하다. 적막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이지만 김교수는 정지하고 있지 않다.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힘을 주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손에 무언가가 잡히는 느낌이다.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김교수는 도구로 무언가를 힘주어 자르는 듯하다. 서걱서걱. 그러나 그 무엇은 잘 잘리지 않는다. 김교수는 도구를 팽개치고 일어나 다시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이번엔 제법 묵직하다. 그 묵직한 것을 들고 김교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콘센트에 코드를 꼽고 묵직한 것의 끄트머리에 달린 끈을 잡아당긴다. 웽~ 기계에서 괭음이 난다. 전기톱이다. 김교수는 그것을 들고 자르려던 그것 앞에 선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깜깜하던 시야가 밝아지고 흐릿하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김교수 눈앞에 누워 있는 그것은 김교수가 늘 보던 시체다. 그러나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다르다. 지금 김교수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시체를 부검하는 게 아니라 김교수가 죽인 주검을 조각조각 토막 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인지한 김교수는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도 미친 듯이 날뛰며 이 상황을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김교수의 몸은 평소 부검의 손길처럼 차분하고 세밀하며 정교하다. 괭음을 내는 전기톱은 척추를 이등분하고 대퇴뼈를 깔끔하게 절단했다. 시체 주변과 사방의 벽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퍼즐처럼 늘어선 시체의 조각을 내려다보며 김교수의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 살인마의 몸속에서 박제된 듯 버둥거리고 있는 김교수의 귀 언저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한 게 없다고? 진짜? 확신할 수 있어요? 흐흐흐흐. 아하하하.]


목소리가 들려왔던 그때 김교수는 목구멍에 걸려 있던 수면제 알을 뱉어 내며 건물옥상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건물 옥상에서 24시간 잠들어 있었다. 외진 곳이라 옥상에 오간 환자나 의사, 보호자의 눈에도 뜨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교수의 귓전에 마지막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엔 어릴 적 지민이 목소리인가 했다가 차갑고 소름 끼치지는 웃음소리에 지민이가 아닌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상태로 마음을 추스르며 학과사무실에 왔을 때 박형사의 첫 부검의뢰를 받았고, 그때부터였다. 살인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















수요일 연재
이전 03화박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