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사 1

by 발돋움

경찰이라....

두툼한 검은색 패딩, 무릎이 튀어나온 굵은 코듀로이 갈색 팬츠. 두상이 훤이 드려다 보이는 듬성한 머리카락, 밑으로 살짝 처진 눈매. 50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박형사 미간이 오늘은 한껏 구겨져 있다.

사건 해결에만 집중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살인자가 경찰이라니. 한솥밥 먹는 사람들끼리 한마음 한뜻으로 나쁜 놈을 잡아 족쳐도 시원찮을 판에 경찰 내부에 그 자식이 있다니. 사건 내용을 누구와 어디까지 공유하고, 해결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박형사는 손바닥을 비비다 연신 마른세수를 해댔다.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박형사는 가슴이 아린다. 10년 전 악몽을 꾸기 시작한 이래 느껴지는 감정이다. 마치 형사가 사건의 당사자인 것처럼. 그들이 겪었을 절박했던 상황, 목숨이 위태로웠던 모든 순간의 공포. 사건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온몸을 타고 전해지는 소름이 사건 배당이 되는 순간부터 가해자 손모가지에 수갑을 체우는 순간까지 짙은 어둠 속 형형이는 섬뜩한 번민으로 박형사의 가슴에 전해졌다.

"띠링띠링"

마른세수를 하다 깍지 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책상으로 욱여넣던 박형사가 발신자를 확인하고 부리나케 통화 버튼을 긋는다.

[어, 숙아.]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마흔의 늦은 결혼 후 기념일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희숙이었다. 서로 살가운 표현은 못하지만 모든 행동과 말에서 뭉근하게 걱정과 애정이 묻어나는 희숙의 마음을 박형사는 잘 알고 있다.

[응 먹지 잘 먹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숙아 너도 나 없어도 잘 챙겨 먹어야 돼]

[나도 잘 먹어... 오늘 민이 발달센터 정기검진 있는 날이야. 자기는 시간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으라고]

[아. 어. 그래. 숙아 네가 우리 민이 좀 잘 챙겨줘.]

[흠.... 그래. 알았어. 바쁜데 일해.]

[응]

유난히 말이 없는 아이인 줄 알았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서 일 거라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혼자 하는 놀이가 재미있어서라고 편하게 해석했다. 그러던 민이가 박형사와 아내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똑같이 따라만. 이 또한 귀엽게만 보였던 박형사였다. 민이가 3살이 되던 해 감기기운이 있던 민이를 데리고 늘 다니던 동네 소아과를 찾았을 때 소아과 의사가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냐고. 소아우울증, 자폐, 발달지연... 모든 가능성들이 열거되고 있었던 그 순간에도 정말 별생각이 없었다. 의사는 늘 최악의 상황을 말하는 직업군이니까. 1프로의 가능성만 있어도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 꼭 잡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형사와는 다른 사람들이니까. 박형사는 왜 자신에게만은 최악의 상황이 비켜갈 거라고 확신했던 걸까?

[자폐스펙스럼 장애라도 들어보셨습니까?]

박형사가 어떠한 반응도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희숙이 울음을 터트렸다. 믿기 힘들었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의사도 환자를 상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였다. 그도 사람이니까 닭장 같은 진료실에서 늘 넘쳐 나는 환자들을 보며 오늘따라 엄청나게 장난이 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 중에도 의사의 표정은 진중했고, 진중한 그 의사가 검사 결과서가 떠있는 진료실 모니터를 보호자 방향으로 획 돌렸다. 화면엔 여러 해설과 그래프, 정돈된 문구가 있었고, 가장 위 상단 진단명에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제야 박형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밑바닥부터 화가 슬슬 치밀기 시작했다. 큰 욕심 한 번 부린 적 없이 죽어라 밤잠 설쳐가며 범죄자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온몸이 긁히고, 찍히고, 베여가며 나쁜 놈들 잡아 족친 것 말고 내가 대체 잘못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와 집사람과, 우리 민이. 민이가 왜? 왜? 이런 벌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인가? 애처로운 우리 민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까? 자폐진단을 받고 울분을 삼키던 그날. 그날 저녁부터였다. 3년 전부터 꾸기 시작한 악몽에 목소리가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


박형사는 누군가를 바삐 찾아다니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박형사와 비슷한 체구의 남성 둘이 더 있다. 그들의 팔 엔 문신이 세겨져 있다. 규칙적인 배열로 늘어선 비늘과 굽이친 허리모양이 용인 것 같다. 시퍼렇고 생동감 넘치는 굵은 용. 박형사의 시선 오른쪽에 선 남자는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다. 오른쪽 뺨부터 귀밑까지 길게 푹 페인 칼자국. 두 놈 모두 눈빛에 살기가 번뜩이고, 행동이 몹시 거칠다. 두 사내를 바라보는 박형사의 행동도 사내 둘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좀 더 과한듯했고, 더불어 박형사가 모든 행동에 늘 선두에 서있다. 박형사와 두 사내는 누군가의 남루한 대문을 발로 걷어 차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주위 장독과 화분들을 빠루를 휘둘러 부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집주인은 방금 짐을 싸 부리나케 도망간 듯 열린 서랍장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옷들. 싱크대며, 수납장에서 튀어나온 듯한 세간들이 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려 있다. 이불과 세간살이를 구둣발로 밟고 방마다 누군가를 찾아다니던 박형사는 찾는 이의 부재를 확인하자 사내 둘과 함께 분노에 못 이겨 거실창을 부수고 포효한다.


박형사는 민이가 태어나던 해부터 악몽에 시달리며 땀에 흠뻑 젖은 채 깨곤 했다. 꿈속에서 박형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찾아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형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박형사의 관점으로 재생되고 있는 이 무성 증강현실을 경험하는 악몽으로 끝이 나나 했던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한 게 없다고? 욕심 한 번 부린 적도 없다고?. 정말? 정말... 확신할 수 있어요?]


그리곤, 자지러지는 웃어 댔다. 섬뜩하리만치 차분하고, 냉기가 서릴 듯 차가운 그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짓궂은 꼬마 여자 아이 목소리.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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