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다.

by 발돋움

빛이 어른거린다.

깜깜하던 주위가 점점 밝아지더니 빛이 들기 시작했다. 뜨겁고, 강렬하고,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는 빛이 아니라 그것은 태양의 것이 아니구나라고 짐작한다. 태양이 아니면 저것은 무슨 빛일까? 그것을 나는 더 자세히 드려다 본다. 그 빛은 다시 어른거린다. 빛이 요동치자 주황과 노란빛에 빗금이 쳐졌다 휘몰아진 원형을 만들며 흔든 흔들 움직였다. 잠시 뒤 빛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다시 생겼다. 아. 나는 그때야 그것이 태양이 맞다고 결론 내린다. 하늘 위로 구름이 흐르고, 새가 날아갈 때 밑에서 태양을 향해 눈을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올려다보고 있지 않다. 내려다보고 있다. 주황과 노란색이 섞인 태양빛이 다시 바닥을 비추며 흔들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황홀해 넋을 잃고 한참 바라보았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는 빛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주위로 시선을 돌려본다. 바닥에 파묻힌 캔이 보인다. 나는 지루함에 못 이겨 그 캔이 무슨 캔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몸통이 붉은색이다. 콜라일까? 체리맛 음료일까? 아니면 녹이 슬어 붉게 보이는 것일까? 손을 벗어 묻혀 있는 그것을 빼내 확인하고 싶지만 도무지 팔이 움직여지지 않아 이내 포기했다. 또 무엇이 있을까? 돌멩이. 주먹만 한 것, 작은 모래알보다 큰 것, 벽을 이룬 커다란 바위. 벽처럼. 그 커다란 바위는 무엇 때문인지 윗부분이 깨끗이 잘려있다. 마치 자를 데고 그어 댕강 날아간 듯. 바위벽 위로 은빛 하늘이 일렁인다. 하늘이 수은색이었던가?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다. 그만둔다.

바위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빛이 잦아들었다. 바라보던 바위가 돌멩이가 빨간색 녹슨 캔이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나도 점점 색을 잃고, 형태를 잃고, 흐지부지 몽롱해진다. 그때 저만치 왼쪽 끝 무채색이 일렁이더니 회오리치며 물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른쪽 끝도 무채색으로 일렁이다 회오리 쳤다. 회오리가 점점 가까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회오리가 친다. 처음 시작된 왼쪽 회오리가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오른쪽 회오리도 나에게로 다가와 멈춰 섰다. 회오리는 기다란 나무토막 2개가 만들었던 모양이다. 양옆으로 나무토막 둘이 다가와 끙 소리를 내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어른 거리는 불빛, 녹슨 캔, 돌멩이가 점점 멀어지더니 휙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맞다. 태양빛이 아직 얼마간 남은 주황색 노란색 하늘. 일렁이던 그것이 이제는 색이 바랜 채 하늘 위 원래 있던 그곳에 있었다.

눈꺼풀 위로 머리카락이 물에 푹 젖은 미역줄기처럼 들러붙어 있는데 나는 왜 하늘이 또렷이 잘 보이는 걸까? 그런데, 내 얼굴 위에 물에 젖은 머리카락은 왜 붙어 있을까? 내 얼굴은 왜 저렇게 얼룩덜룩하고 팅팅 부어있는 걸까? 옷은 왜 아랫도리는 입지도 않고, 웃옷만 걸친 체 저토록 흉하게... 누워 있는 걸까? 그런데 저것이 나이긴 한 걸까?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천 뚝 위로 번쩍이는 경찰차도 몇 대 보인다. 모두들 입을 가졌으니 뭐라고 벙끗거리고, 손짓 발짓을 격렬하게 해대지만, 음소거된 화면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찰들은 경찰복 겨울점퍼를 입고 있다. 모여든 사람들은 두툼한 패딩을 입었다. 그러나 나는 춥지 않다. 몸의 어느 곳 하나 아픈 곳도 없다. 헐벗고 있음에도 부끄럽지 않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배고프지 않다. 나에게서 살아남은 것은 단 하나 궁금함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자가 왜 이곳에서 버젓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경찰복은 원래 본인의 것일까?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내가 저 자를 나와 같은 방법으로 죽일 수 있을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