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김교수는 법의학과 사무실에서 연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논문을 손보던 중 박형사의 전화를 받고 학과 사무실을 나섰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워낙 급해서요. 어린 아이라 개인적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이번에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시죠. A동 401호 부검실이 비어 있을 겁니다.]
[아 예. 안 그래도 미리 사무실에 전화 넣어보니 그쪽이 비었다고 안내를 받아서 운구는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서울로 발령 난 이후 박형사를 알고 지낸 지 10여 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부검의뢰를 하며 급하지 않다고 한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어려서, 사연이 기구해서, 훼손이 심해서, 의심 가는 가해자가 48시간 구금에 걸려서. 늘 다양한 이유로 급했다. 그러나 한 번도 김교수는 이유나 핑계를 대며 부검을 미루거나 거절한 적이 없었다. 박형사에게 김교수는 예스맨이었고, 워커홀릭이었으며, 뛰어난... 해결사였다.
자동차로 10여분 거리 부검실 건물 앞 텅 빈 주차공간에 무심히 주차를 하고 김교수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401호 문을 열고 들어가 익숙한 듯 여러 개의 스위치 중 2개를 눌러 부검실 등을 켰다. 스테인리스 부검대 위와 김교수 케비넷 앞쪽의 부분 조명이 탁 소리와 함께 켜졌다. 어두운 무대에 주인공 둘을 향해 비추는 스포트 라이트처럼 빛은 고스란히 한 방향을 비추며 어둠 속 빛으로 두 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고요한 부검실은 윙하는 냉장고 소리만 어둠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김교수는 익숙한 듯 컴컴한 부검실을 성큼성큼 걸어 구석진 모퉁이에 웅크려 있던 6칸 철제 케비넷으로 향했다. '김석관' 이름이 적힌 철제 케비넷이 끼익 기괴한 울음을 토하며 입을 벌렸다. 블랙사피아노 서류가방은 캐비닛 아래 왼쪽벽으로 기대어 두고 베이지 롱코트는 정장용 옷걸이에 걸어 캐비닛 오른쪽 벽에서 3cm 정도 띄운 자리에 차분히 걸어 놓았다. 신발도 벗어 캐비닛 맨 아래 신발용 바구니를 꺼내 넣어둔 후 케비넷을 닫았다. 그리고 방수복, 장화, 니트릴장갑, 보안경, 의료용 마스크, 일회용 캡을 쓴 후 스테인리스 검안대로 향했다. 당직의가 미리 받아둔 시체검안의뢰서가 검안대 앞 보조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당직의는 신입레지던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에겐 첫 부검이니 어디선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리라.
시체검안의뢰서
-성명 : 최미나
-성별 : 여성
-생년월일 : 2005년 1월 16일 (만 17세)
-주소 : 경상북도 수남군 수남면 아카시아 맨션 301호
발견 장소 : 도동구 중앙교 인근 하천
발견 일시 : 2026년 12월 29일 오후 5시
발견 당시 상황 요약 :
- 하천에 운동하러 나온 50대 여성 인근 주민이 하천에 엎드린 상태의 마네킹이 떠 있다고 경찰에 제보해 발견.
- 119와 경찰 도착 당시 사망한 상태(DOA).
목에 가로로 끈자국이 있고, 대상자는 바지 및 팬티는 미착용 상태였음.
검안의뢰서를 쓱 흙은 김교수는 검안대 우측 벽면을 가득 매운 시신용 냉장고 중 붉은 등이 들어와 있는 왼쪽 2번째 냉장고 칸으로 스테인리스 부검대를 밀며 다가갔다. 철컥 냉장고 문을 열고 시체 부검대로 시체를 받치고 있던 거치대를 당겨 시체를 부검대 위로 옮겼다. 부검대가 가볍게 원래 자리로 돌아와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자리 잡았다.
하얀 포를 걷어 얼굴을 먼저 확인했다. 눈가와 뺨이 멍으로 얼룩덜룩하고, 상처 부분이 물속에 방치된 탓에 부풀어 오르 긴 했지만, 앳된 소녀의 얼굴이 그 속에 남아 있었다.
김교수는 부검대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당신의 죽음에 한 점의 의문도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얀 포를 모두 걷어 내고 김교수는 눈으로 먼저 시신을 살피며 외표검사를 시작했다.
[시반이 엉덩이 아래 허벅지 뒤쪽이 또렷하게 잡혀 있군. 발견 당시 엎드려 있었다고 했는데... ]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엎드린 상태로 하천에서 사망을 했다면 시반은 얼굴과 배, 다리의 앞쪽에서 발견되었을 텐데. 아마도 앉아 있는 상태로 7시간 이상 방치된 이후에 하천에 유기한 모양입니다. 삭흔... 목이 끈으로 졸린 흔적도 있어요.]
[누군가가 목을 먼저 졸랐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면서 목에 끈을 어떻게든 풀려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손톱밑에 피가 고여있고, 목에도 손톱자국이 많이 나 있는 거예요. 발뒤꿈치 피부도 벗겨져 있네요. 음. 눈꺼풀, 결막에 출혈반도 보여요. 경부압박 질식사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사후경직이 풀려 있어요. 이건 최소 사망시점에서 48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틀 전에... 사망했다는 얘기네요]
[네. 아래 옷이 속옷까지 모두 벗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허벅지 안쪽과 다리 곳곳에 멍도 많아요. 오래된 멍과 생긴 지 얼만 안된 멍이 함께 있어요... 정액반응 검사를 실시해야겠군]
[성폭행 후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김교수는 목에 난 상처. 시반. 전신 멍자국을 찾아 꼼꼼하게 사진촬영을 하며 기록했다.
기록하다 뒷장에 수록된 흉부 CT결과서를 발견했다. 새로 온 신입 레지던트가 똘똘한 녀석인 듯했다.
흉부 CT결과를 들어다 보던 김교수가 미간을 좁혔다.
[폐 조직이 많이 위축되어 있어요.]
[폐가 위축됐다는 건 무슨 의미죠?]
[가해자가 피해자를 목을 졸라 의식을 잃게 한 후 피해자가 완전히 목숨을 잃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하... 전 왜 이런 상태로 죽었을까요?]
[글쎄요... 지금 경찰이 원인을 찾고 있어요. 저는 당신의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모든 망자들은 숨이 끊어진 당시의 일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망 전 상황은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최미나 씨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
[억울해요.... 분해요...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은데... ]
[많이 힘들고 당황스럽고, 화도 나시죠? 최미나씨에게 범죄를 저지른 그 놈을 잡을 수 있도록 제가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할 텐데 그 질문에 대해서 떠오르는 데로 이야기해 주세요. 그것이 최미나 씨를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최미나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놈을 찾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거예요. 그놈을 잡게 되면 아마도 최미나씨의 그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지 않을까요? 최미나가 망자가 된 이후 처음 보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
[처음 보았던 것... 빛이요, 어른거리는 빛. ]
[빛이라.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니면 실내조명?]
[아니요. 어스름하게 투과된 빛. 어른 거린 걸 보면 물에 비친 빛 같아요]
[네. 그리고 또 무엇이 있나요? 생각나는 데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하.... 그리고. 다음엔 붉은색 캔.]
[붉은색 캔이라면 콜라를 말하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붉은색 캔이 보였어요. 글씨는 보이지 않았어요...]
[좋아요. 그다음 또 무언가 보인게 있을까요?]
[바위. 커다란 바위요. 윗부분이 잘려나간 바위.]
[알겠습니다. 그런 다음 처음 이곳에 올 때까지 특별히 강렬하게 느낀 감정이 있나요? ]
[...... 궁금증. 궁금했어요. 궁금해지면서 눈에서 불이 나듯 화끈거렸어요. 분노가 끓고, 온몸이 떨렸어요 ]
[언제 그런 느낌이 생기던가요?]
[그레이색. 카라에 털이 달린. 점퍼. P. O. L. I. C. E... 나를 내려다봤어요. ]
갑자기 부검을 하던 김교수가 망자에게서 휘몰아치는 섬뜩함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이 오그라들어 그만 카메라를 놓칠 뻔했다. 붉고, 어둡고, 깊고, 거세게 휘몰아치는 어두운 기운.
[무심하게. 아무런 표정도 없이. 길가에서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내려다보듯. 그 경찰을... 죽이고 싶었어요. ]
그때 부검실 문이 빼꼼히 열리며 멀쑥하게 키가 큰 터벅 머리 청년이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후다닥 부검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흉부 CT도 다 찍어 놓고 부검준비를 마쳤는데, 교수님 오시기 전에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죄송합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레지던트를 보며 김교수는 놓치려던 카메라를 다시 바짝 움켜쥐었다.
[괜찮네. 한참 잠이 올 나이가 아닌가. 어서 옷부터 갈아입게]
레지던트와 함께 내부검사와 장기관찰, 검체채취까지 마친 김교수는 검안 결과서를 작성한 후 노란색 포스트잇을 검안서 아래 부착했다.
[박형사 님 부검 끝났습니다. 결과표는 오늘도 직접 찾아가실 거죠? ]
[아유 물론입니다. 교수님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네 담당 레지던트에게 맡겨 두겠습니다.]
이른 새벽시간임에도 30분 만에 부리나케 달려온 박형사는 하품을 하며 뒷머리를 긁어대는 레지던트에게 검안서를 굽실거리며 받아 들고는 곧 자신의 자동차를 향해 달렸다. 자동차 시동을 켜기 전 봉투의 내용물을 꺼내든 박형사는 검안서의 페이지를 넘기기 전 종이를 획 뒤집었다. 역시 오늘도 노란색 포스트잇은 부착되어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물에 비친 빛, 붉은색 캔음료, 머리가 잘린 거대한 바위. 경찰.]